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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羅 上古期 제사의 정치화

The Politicization of Rituals in the Early Silla Period

초록 (요약문)

이 논문은 신라 상고기 제사의 정치적 기능과 행정의 발달 과정을 아울러 고찰했다. 상고기는 제사·정치의 경계가 모호하고, 행정이 미비한 시대였다. 이런 조건 아래, 제사로 분류되는 영역의 활동 및 인물이 국가 운영 및 사회 통합에 크게 이바지했다. 하지만 행정이 점차 발달하면서, 새로운 조직·직위가 제사의 행정적 기능을 대체했다. 그 결과, 신라 고유 제도에서 그 원형인 의례·관습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상고기 정치사는 제사와 주술적 사유에 기반한 정치를 합리적인 행정으로 대체하는 과정이다. 상고기는 王姓의 대세에 따라 朴氏 尼師今期·昔氏 이사금기·金氏 麻立干期로 분류할 수 있다. 각 집권 세력은 다른 배경과 지향을 지녔으며, 이런 차이는 국가 제사와 국정 운영에서 드러난다. 특히 왕권의 정당화 및 사회 통합의 주요 수단인 국가 제사는 집권 세력의 이해관계와 가치관을 담은 정수이다. 각 시대의 제사가 지닌 특징을 바탕으로 주요한 정치·제도적 변화를 검토하면, 그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박씨 이사금기는 시조묘 제사가 왕실의 재정권 강화를 뒷받침하던 시대였다. 박씨 이사금기에 설치한 始祖廟는 시조 赫居世에게 제사하는 祭場이었다. 혁거세는 제정이 밀접하던 居西干期를 대표하는 인물이며, 혁거세 신화는 정 치적 결정과 성취를 주술적 능력[德]과 결부한다. 농경 의례의 성격이 강한 시조묘 제사는 혁거세라는 이상적인 군주상과 신화에 담긴 가치관을 재생산했다. 시조묘 제사를 주관한 왕실 여성 阿老는 제사장으로서 정치에 참여했다. 시조묘로 사시의 농경 의례를 장악한 왕실은 嘉俳·兜率歌 등 祭樂을 활용해 왕실의 수취·분배를 정당화·강화했다. 하지만 철기·군사 기술이 뛰어난 석씨의 합류 후, 점차 군사 활동과 확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군주의 역할에 대한 관념 변화와 군사적 전문성 추구는 月城 이주와 政事堂 설치 등 공간적 변화로 이어졌다. 하지만 당시의 역할 분배는 전문성보다 위계질서나 관할 구역에 역점을 두었으며, 의례 행위가 정당성을 지탱했다. 석씨 이사금기는 석씨 시조 脫解 제사의 중요성이 상승하고, 군정이 발달한 시대였다. 석씨 왕실은 석씨만의 시조 탈해를 위한 제사를 강화하고자 노력했다. 탈해는 석씨만의 시조이며, 탈해 신화는 유능하고 호승심 강한 영웅의 이야기다. 탈해 제사는 석씨 시조의 연원과 신성함을 강조하는 본풀이, 시조·왕의 능력을 증명하는 入巫 의례의 성격이 강하다. 석씨 이사금들은 왕 자신의 주술적 능력을 과시했고, 왕실 여성의 사제적 위상은 상대적으로 하락했다. 군사를 중시한 석씨 이사금들은 계절의 순환에 따른 時令 질서와 농경보다 군사·토목을 우선시했다. 또한 南堂을 설치하면서 재정을 개혁하여 사제들의 재정적 영향력을 축소했다. 석씨 이사금기에 원거리 정복 활동이 성과를 거두었고, 여러 전쟁 영웅을 배출했다. 하지만 군사적 성취가 지지부진해지자, 탈해를 드높이고 군사를 우선하던 석씨 이사금들의 전략은 호소력을 잃었다. 또한 지배층이 팽창하고 가치관이 변화하면서, 연장자를 우대하는 이사금기 질서에 균열이 발생했다. 하지만 석씨 이사금들은 더 크고 복잡해진 신라를 사상적으 로 통일하고 정치적으로 재조직하지 못했다. 김씨 마립간기는 공간과 업무의 경계가 뚜렷해진 시대로, 새로운 神宮 제사가 김씨 왕실의 우월성을 뒷받침하고, 행정 관부의 전문성이 발전했다. 炤智麻 立干은 天神 혁거세를 모신 신궁을 설치하여 김씨 왕실의 혈통적 정통성의 한계를 극복했다. 또 시조묘의 전통적 권위를 압도하기 위해 외래 문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신궁의 건축이나 의례에서 불교적 요소를 수용했고, 이사금 기 질서에서 벗어나고자 유교적 성군의 모습을 과시하기도 했다. 연장자·우수자 계승 및 연륜을 중시하던 이사금과 달리, 마립간은 孝弟를 강조하며 부자 계승을 추구했다. 또한 김씨 왕실을 높이고 강력한 고위 관등 소지자를 견제 하고자, 葛文王 지위를 이용하여 왕족의 정치 참여를 확대했다. 업무의 전문성에 따른 관부, 관등과 별개로 주어지는 大等 등, 관등제의 한계를 보완하는 조직·직위가 발달했다. 하지만 각 관부의 구성을 세세히 규정한 中古期 이후와 달리 각 관부의 장관에게 높은 독립성을 부여하는 유연한 운영이라는 한계가 있다. 국가 제사의 개조와 세속 행정의 발달로 입지가 좁아진 사제들은 새로운 활로를 모색했다. 왕실 여성은 승려를 후원하는 등, 종교·제사 분야에서 주 술적 능력보다 경제력에 기초한 권력을 행사했다. 남성 사제 일부는 관료로 변화했으며, 공무 수행에서 주술적 능력을 활용하기도 했다. 관직에 진출할 수 없는 여성 사제 일부는 상업에 종사할 기회를 얻었다. 이 연구는 제사의 정치화를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살펴보았다. 첫째, 제사는 미진한 왕권을 뒷받침했고, 왕권의 성장과 집권 세력의 변화에 발맞추어 변화했다. 신라사에서 제사와 왕권의 관계는 활발히 연구된 주제이지만, 상고 기는 집권 세력이 박·석·김으로 거듭 변화했다는 특수성이 있다. 각 세력은 시조와 성격이 서로 다르며, 왕통 계보에서도 다른 위치를 점유했다. 따라서 박· 석·김은 이해관계에 따라 제사를 개조하려 노력했고, 각 세력이 추구하는 가치가 제사에 반영되었다. 제사가 공동체의 믿음과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 할 경우, 집권 세력의 몰락에 가세하기도 했다. 둘째, 더 합리적인 행정이 출현함에 따라 제사의 기능이 축소했다. 행정이 미비하던 시대에 제사가 통치의 효율성을 높이고 사회를 통합하는 데에 크게 이바지했다. 하지만 행정 전문성 강화와 업무 분화에 기반한 조직·직위들이 점차 제사와 사제의 영역을 잠식했다. 군정이 가장 먼저 변화하면서 다른 행정의 개선을 촉진했다. 반면 재정 분야에서 사제의 수취 및 생산 장려 활동이 비교적 유용했고, 일부 사제는 경제 활동에 진출했다. 그 결과, 신라 고유의 제도나 관직에서 의례·관습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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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1
1. 연구 목적 및 연구사 검토 1
2. 연구 방법 및 내용 13
Ⅱ. 朴氏 尼師今期: 始祖廟 제사와 재정 21
1. 赫居世 신화와 始祖廟 제사 22
(1) 赫居世 신화 속 居西干期 역사 22
(2) 始祖廟 설치와 尼師今期 왕권 35
2. 제사와 초기 재정 49
(1) 儒理尼師今代 祭樂과 재정 49
(2) 사제의 재정적 역할과 稟主 57
3. 공간과 위계의 분화 66
(1) 婆娑尼師今의 月城 이주와 확장 정책 66
(2) 上古期 재상과 政事堂 80
Ⅲ. 昔氏 尼師今期: 脫解 제사와 군정 92
1. 脫解 숭배 강화와 실패 94
(1) 脫解 신화와 昔氏 집단의 호전성 94
(2) 脫解 숭배와 즉위 의례의 변화 107
2. 군사 중심 행정 개혁 119
(1) 군정 발달과 時令 질서의 동요 119
(2) 南堂 설치와 재정 개혁 126
3. 왕위 계승 경쟁의 격화 137
(1) 우수자 계승과 영웅담의 발달 137
(2) 尼師今期 질서의 붕괴와 訖解尼師今 145
Ⅳ. 金氏 麻立干期: 神宮 제사와 행정 156
1. 神宮과 麻立干의 공간사상적 전략 157
(1) 麻立干期 즉위 의례와 神宮 157
(2) 寺院의 출현과 佛敎 169
(3) 儒敎 사상의 활용과 神宮 제사 178
2. 金氏 왕실의 집권과 권력 재편 189
(1) 麻立干 왕호의 정착 과정 189
(2) 왕족 우대와 행정 전문화 198
3. 神宮 제사의 정치화 215
(1) 宮主와 焚修僧의 연계 215
(2) 사제의 분화와 성역할 225
Ⅴ. 맺음말 237
참고문헌 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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