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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기 ‘영양’의 트랜스내셔널리티 : 트랜스퍼시픽 공간의 식생활 개선과 민족음식 만들기로 본 영양주의 정착과 전용

Entangled History of Cold War Nutrition and Nationalization of Food: On Japan, Korea, and the USA

초록

본 논문는 현대 음식문화의 핵심적인 요소인 ‘영양주의(nutritionism)’가 미국과 일본, 한국을 포함하는 트랜스퍼시픽 공간에서 어떻게 형성, 보급, 전용되었나를 조명한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영양은 학문의 영역을 벗어나 국방이라는 국가적 문제의 영역으로 진입하였다. 1945년 이후 미국은 독일·일본의 군정 통치와 대만·한국의 군사 분쟁 개입을 거치며 냉전의 승리를 위해서는 세계에 영양을 보급해야 한다는 인식을 발전시켜 나갔다. 이러한 각성은 전담 기관의 설치와 그를 통한 현지 영양 조사로 이어졌다. 이 과정을 거치며 식품 선택에 있어 영양을 우선으로 고려하는 태도가 지구적 범위로 확산하였고, 그 결과 세계의 음식문화 또한 빠른 속도로 변모하였다. 동아시아도 예외가 아니었으며 특히 트랜스퍼시픽 공간의 일본과 한국은 식생활의 급변을 겪은 국가였다. 쌀을 주요 식품으로 소비하는 두 국가의 식단은 밀과 육류, 유제품을 주요 식품으로 둔 서양의 영양학과 조우하며 다양한 진통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영양은 식생활의 서양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활용되는 동시에, 기존 식생활을 옹호하는 근거로 전용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하여 본 논문은 세 층위(layer)로 구성되었다. 첫 번 층위는 1945년부터 1960년대까지의 일본과 한국의 식생활 ‘개선’으로, 어떻게 일본과 한국 식생활이 영양이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재편되는가를 확인한다. 1945년 이후 일본과 한국은 국가 주도의 영양 정책을 시행하였으며, 이는 지식인 집단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두 국가의 영양 정책은 명확한 목표를 지니고 있었다. 바로 미국의 식생활을 본받아 미국인의 영양수준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이제 국민의 열량 섭취량 대부분을 차지하는 쌀(백미)의 섭취를 줄이고, 동물단백질과 지방의 섭취를 늘려야 했다. 이와 같은 식습관의 전면적인 개조를 위해 ‘우수한 밀, 열등한 쌀’, ‘우수한 동물단백질, 열등한 식물단백질’과 같은 식품 간 위계화가 시작되었다. 저신장·근육량 부족·저지능 등 신체적 자질의 문제는 물론이고 패전·피지배까지도 그릇된 식습관으로 인한 영양 섭취의 불균형에서 비롯된다는 담론도 등장하였다. 이러한 담론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그에 따라 두 국가의 식생활은 빠르게 변모하였다. 두 번째는 미국이 냉전의 승리를 위한 수단으로 영양을 활용하게 된 과정과 그 구체적인 양상을 한국의 사례를 통해 분석하는 층위다. 냉전 초기 약 10년간 미국은 자유진영의 동맹국 군대의 전투 수행 능력을 훼손하는 영양 문제를 포착하고, 중립국의 기아 및 영양결핍이 공산주의의 이데올로기적 확장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따라 영양을 활용한 소련 봉쇄를 목적으로 하는 ‘국방을 위한 부처 간 영양위원회(이하 ICNND)’가 1955년 창설되었다. ICNND는 1956년부터 1966년까지 총 30개 국가에서 영양 조사를 시행하고, 영양수준 증진을 위한 자문 활동을 수행하며 세계의 영양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였다. 동아시아, 특히 한국은 ICNND가 지속적인 관심을 보인 국가였다. ICNND는 1956년 한국 영양 조사와 수년에 걸친 후속 조사, 자문, 교육활동 등을 통해 한국군의 급식체계를 정비하였으며 한국의 ‘바람직한’ 식단을 만들어내는 데에도 기여하였다. 한편, 동아시아 국가를 대상으로 개최한 극동영양회의(Far East Symposium on Nutrition)는 ICNND가 국방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자유진영의 연대를 강화하는 영양 전략을 구사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세 번째는 영양주의의 전용(appropriation)을 분석하는 층위다. 일본과 한국은 영양주의에서 서양중심적 특징을 배제하고 민족문화의 우수성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미국의 영양 전략은 해외 영양 조사가 중단된 1960년대 중반부터 축소되어 1970년대에는 종료된 것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영양주의는 더욱 강화되었고, 트랜스퍼시픽 공간의 식생활과 음식문화에 깊이 뿌리내렸다. 일본과 한국에서 영양주의의 실천이라 간주했던 식생활의 서양화는 1960년대 후반부터 민족정체성의 구성 요소로 음식문화를 해석하는 시각과 충돌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서양식 식생활에 대한 반감은 미국식 식단을 비판하는 1970년대 의학계의 새로운 경향과 민족문화를 활용한 일본과 한국의 국민국가 만들기로 인해 가속되었다. 그 결과, 영양주의는 전용되어 ‘민족음식’이라는 상상된 담론의 가치를 증명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이상의 분석을 통해 본 논문은 냉전 시기 영양이라는 지식/담론/이데올로기의 뒤얽힌 역사를 조명한다. 트랜스내셔널한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된 미국의 ‘국방을 위한 영양’ 담론은 냉전 전략으로 활용되어 트랜스퍼시픽 공간의 새로운 상호작용을 촉발하였다. 일본과 한국은 미국의 영양 전략을 통해 확산된 영양주의를 활용하여 국민 영양수준의 향상과 민족음식 만들기라는 국가적 기획을 수행할 수 있었다. 이는‘건강한 국민’, ‘우수한 민족’을 창출하는 데 기여함으로써 국민국가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강화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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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This paper examines how "nutritionism," a fundamental aspect of modern food culture, has been shaped, disseminated, and appropriated in a transpacific space encompassing the United States, Japan, and South Korea. Throughout the two world wars, nutrition was transformed from an academic subject to a matter of national defense. After 1945, influenced by its military rule in Germany and Japan and interventions in Taiwan and South Korea, the United States recognized the importance of global nutrition to winning the Cold War. This awakening led to the creation of specialized agencies and their overseas nutrition surveys. In the process, the attitude of prioritizing nutrition in food choices spread across the globe, and as a result, the world's food culture was rapidly transformed. Japan and South Korea, two countries in transpacific space, experienced dramatic dietary changes. The transition was challenging for these two traditionally rice-consuming countries as they adapted to a Western diet based on wheat, meat, and dairy products. In this process, nutrition has been used as a rationale to pursue Westernization of diets while at the same time defending indigenous diets. Based on this narrative, this paper is organized into three layers. The first layer is "Dietary Improvement" from 1945 to the 1960s, which describes the reorganization of Japanese and Korean diets around the value of nutrition. After 1945, Japan and South Korea implemented state-led nutrition policies that intellectual groups strongly supported. Their goal was to emulate the American diet and achieve similar nutritional levels. This meant reducing the consumption of (white) rice, which accounted for most caloric intake in Japan and South Korea, and increasing the consumption of animal proteins and fats. The nutritional discourse was mobilized as a rationale for dietary change. A hierarchy of foods was created to achieve this complete overhaul of dietary habits, such as "superior wheat, inferior rice," "superior animal protein, inferior vegetable protein. In addition, nutritional discourses emerged suggesting that physical characteristics such as short stature, lack of muscle mass, low intelligence, defeat, and domination were caused by an imbalance in nutrient intake due to poor dietary habits. This discourse was highly influential, and dietary habits in both countries changed rapidly. The second layer analyzes, with the specific example of South Korea, how the United States came to use nutrition to win the Cold War. During the first decade of the Cold War, the United States identified nutritional problems undermining the combat effectiveness of its allies' armies. It also recognized that hunger and malnutrition in neutral countries contributed to the ideological spread of communism. In response to the communist threat, the Interdepartmental Committee on Nutrition for National Defense (ICNND) was created in 1955 to use nutrition to contain the Soviet Union. From 1956 to 1966, the ICNND was actively involved in global nutrition, conducting nutrition surveys and advising on ways to improve nutrition levels in 30 countries. East Asia, particularly South Korea, was a region of continuing interest to the ICNND. ICNND's 1956 South Korean Nutrition Survey and subsequent surveys and advisory activities led to a revision of the military's feeding system and helped shape a "desirable" diet. In addition, the Far East Symposium on Nutrition, which ICNND hosted for East Asian countries in the 1960s, shows that the United States used nutrition strategies to strengthen national defense while building solidarity among the free world. The third layer that results from the spread of nutritionism is the creation of Japanese and South Korean national food as examples of appropriation. U.S. nutrition strategy was scaled back in the mid-1960s when overseas nutrition surveys were discontinued and ended in the 1970s. However, nutritionism intensified and became deeply embedded in the diets and food cultures of the transpacific space. In Japan and South Korea, the Westernization of diets, seen as a practice of nutritionism, began to clash with the new interpretation of food culture as a component of national identity in the late 1960s. This backlash against Western diets was accelerated by new trends in the medical community in the 1970s that criticized the American diet and by nation-states building in Japan and South Korea that exploited national culture. As a result, nutritionism was appropriated and used to prove the value of an imagined discourse of "national food." This paper illuminates the entangled history of knowledge/discourse/ideology of nutrition during the Cold War through the above analysis. The U.S. discourse of "nutrition for national defense," shaped by transnational interactions, was used as a Cold War strategy, triggering new interactions in the transpacific space. Through nutritional discourses, Japan and South Korea were able to implement national initiatives to improve national nutrition levels and invent national foods. This contributed to the creation of a "healthy people" and a "superior nation" and thus played a crucial role in strengthening the imagined community of the nation-st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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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1
1. 연구의 목적 1
2. 기존 연구 현황 3
3. 연구의 범위와 방법 11
Ⅱ. 1945년 이후 일본과 한국의 영양주의 정착 과정 17
1. 일본의 영양 정책과 영양 담론 17
1.1. GHQ/SCAP의 영양 정책 19
1.2. 쌀 의존적 식습관이라는 문제 33
1.3. 주권 회복 이후의 영양 정책: 대용미 보급 사업을 중심으로 41
2. 한국의 영양 및 식생활 개선 운동 60
2.1. “영양보다 식량을”: 해방 후부터 한국전쟁까지 한국의 영양 60
2.2. 한국전쟁 이후 영양에 관한 인식 변화 79
2.3. 조리사 자격제도: 영양의 일상화를 위한 행위자의 탄생 92
Ⅲ. 영양을 통한 팍스 아메리카나 118
1. 영양의 국민화 118
1.1. 20세기 초 미국 영양학의 발전 118
1.2. 제2차 세계대전과 ‘국방을 위한 영양 125
2. 영양의 지구화와 냉전 131
2.1. 배경: 1945년 이후 달라진 영양 인식 131
2.2. ‘공산주의의 방파제로서 영양 135
3. 자유진영을 위한 ‘영양 우산 137
3.1. ICNND의 설립과 영양 조사의 중요성 137
3.2. 한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본 ICNND의 아시아 활동 146
Ⅳ. 일본과 한국의 민족음식 만들기 162
1. ‘일본형식생활’의 형성과정을 통해 본 민족음식 담론의 공식화 163
1.1. 일본 식단의 “고도화”와 그 반작용 163
1.2. 음식문화에 대한 민족 담론의 개입: 세계식량위기와 포경 논쟁 173
1.3. 영양 담론의 재구성: ‘일본형식생활’의 형성과 이후의 변화 191
2. 조선 왕실 음식과 ‘오천 년 역사’: 한국 민족음식 담론의 형성 및 수렴 과정 206
2.1. 황혜성과 조선왕조 궁중음식 206
2.2. 한국 음식의 민족주의적 해석 213
2.3. 민족 담론과 영양 담론의 결합 226
2.4. 민족음식 서사의 통일과 공식화 238
Ⅴ.결론 252
참고문헌 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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