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

新羅 文武王의 대외 활동과 그 의미

External Activities and Meaning of King Munmu of Silla

초록

본고는 신라 제 30대 왕인 문무왕의 왕이 된 이후의 대외 활동에 대해 살펴보고 왜 문무왕이 직접 왕경 밖을 벗어나 활동하였는지에 대해 알아본 것이다. 이와 관련된 사료와 기존 연구를 검토한 결과, 문무왕의 대외 활동으로 세 번으로 나누어 그 의미를 살펴볼 수 있었다. 먼저 661년 문무왕은 당의 요청으로 고구려 원정에 출병했다. 문무왕은 당나라와의 합동작전에서 신라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직접 군사를 이끌고 출병하였다. 그러나 문무왕은 백제부흥군을 진압하는데 군사력을 집중했고, 백제 고토를 신라의 영역으로 확충하고자 했다. 따라서 문무왕은 부흥군 진압을 통해 백제 고토에 대한 신라의 영향력을 높이고, 당시 즉위 초 불안했던 왕권을 강화하고자 했다. 백제부흥군을 진압하고 돌아온 문무왕은 이후 665년 8월에 취리산에서 부여융과 회맹을 맺기 위해 다시 한번 왕경을 나선다. 당나라는 신라를 배제하고 백제 고토를 지배하기 위해 부여융과 문무왕의 회맹을 진행했다. 처음에는 김인문을 대신 보내 웅령회맹을 맺었으나 이후 영토 문제로 문무왕은 직접 나가 취리산에서 다시 회맹을 했다. 비록 당의 압력으로 패전국의 태자와 회맹을 맺을 수 밖에 없었지만 문무왕은 대군을 이끌고 참석해 신라왕으로서의 위상을 드러냈다. 이러한 문무왕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백제 고토에 대한 신라의 영역이 서쪽으로 좀 더 확장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문무왕은 667년과 668년에 고구려 원정을 준비했다. 고구려의 내분을 기회 삼아 당과 군사적 연합을 통해 고구려를 원정하러 나섰다. 이때도 문무왕은 직접 군사를 이끌고 한산정으로 가 군사들을 통솔했다. 문무왕은 군사를 세 방면으로 나눠 진군시켜 고구려를 압박함과 동시에 고구려 멸망 후 당의 군사적 공격을 대비했다. 그리고 평양성 공격에 신라군을 참여시키고 본인이 한산정에서 직접 지휘하며 평양 이남의 영역에 대해 통제력을 확보해나갔다. 고구려 멸망 후, 문무왕은 약 7천 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신라로 돌아와 그의 위상을 높이고 왕권을 강화할 수 있었다. 이처럼 문무왕의 대외 활동은 당나라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당나라와 합동 작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이기 때문에 문무왕이 직접 출전하였고, 이는 한반도에 대당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직접 군사를 이끌고 출병해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당시 즉위 초 불안했던 왕권도 높일 수 있는 기회로 삼았다. 이후 문무왕은 나당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더 이상 직접 왕경 밖을 나서지 않아도 되었으며, 이를 발판으로 대내적인 정치개혁도 진행할 수 있었다.

more

초록

This article was intended to investigate external activities of King Munmu, the 30th king of Silla, and examines why King Munmu was directly outside the royal palace. By means of review of related historical sources and existing studies, it was possible to classify the meaning of King Munmu's external activities into three time-frames. First, in 661, King Munmu went on an expedition to Goguryeo at the request of the Tang. King Munmu directly led his soldiers and dispatched them to increase Silla's influence in joint operations with the Tang Dynasty. However, King Munmu focused his military power on suppressing the Baekje Revival Army and attempted to expand the ancient capital of Baekje into Silla's territory. Therefore, King Munmu sought to increase Silla's influence over the ancient capital of Baekje through the suppression of the Revival Army and strengthen the royal authority that was unstable at the beginning of his throne. King Munmu, who returned after suppressing the Baekje Revival Army, once again went to the royal palace in August 665 to form a league with Buyeo Yong on Mountain Chiri. The Tang Dynasty proceeded with the leage of Buyeo Yong and King Munmu to rule the ancient capital of Baekje with the exclusion of Silla. At first, Kim In-moon was sent instead to form an Unryeong League, but later due to territorial issues, King Munmu went out and formed a league again at Mount Churi. Although thepressure of the Tang forced him to form a league with the defeated country's crown prince, King Munmu led a huge army and attended it, revealing his status as King of Silla. With the active efforts of King Munmu, Silla's domain over the ancient capital of Baekje could be further expanded to the west. Finally, King Munmu prepared for an expedition to Goguryeo in 667 and 668. Taking advantage of Goguryeo's internal strife, King Munmu went out to conquer Goguryeo through a military alliance with the Tang. Even at this time, King Munmu led the troops directly to Hansanjeong to lead the soldiers. King Munmu pressed Goguryeo by dividing the troops into three directions and prepared for a military attack by the Tang after the collapse of Goguryeo. He then participated in the attack on Pyongyang and led the Silla army himself in Hansanjeong to secure control over areas south of Pyongyang. King Munmu was able to return to Silla with about 7,000 people to enhance his status and strengthen his royal authority after the collapse of Goguryeo.

more

목차

Ⅰ. 서론 1
Ⅱ. 백제부흥군 진압과 백제 고토 지배 7
Ⅲ. 취리산회맹과 신라 위상 확립 15
Ⅳ. 고구려 원정과 왕권의 고양 22
Ⅴ. 결론 29
참고문헌 32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