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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약한 몸들의 이야기하기와 미디어 실천 연구 : 유튜브 질병·장애인 브이로그를 중심으로

Storytelling and Media Practice of Vulnerable Bodies on YouTube Vlogs about Illness and Disability Experiences

초록

본 연구는 질병인과 장애인이 몸의 경험과 일상을 브이로그로 남기는 현상에 주목해, 아프고 취약한 몸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며 스스로 미디어를 생산하는 실천이 갖는 의미를 분석한다. 구체적으로, 질병·장애인들이 브이로그에서 펼치는 개인적인 이야기가 자기 이해와 정체성 탐색으로 연동될 뿐만 아니라 일상 정치적 발화의 성격을 띠며, 또 다른 아프고 취약한 타자들과 연대를 가능케 하는 기반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논한다. 본 연구는 ‘이야기하기(storytelling)’가 가진 함의를 이론적으로 규명하고, 그것이 가진 실천적 가치를 탐색하는 작업을 선행한다. 자기 정체성 형성과 이야기 행위의 관계를 고찰한 폴 리쾨르(Paul Ricoeur)의 논의를 시작으로, ‘이야기하기’의 일상적 경험을 정치적 행위로 연결하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논의를 다각도로 조명한다. 또한 비언어적 차원의 정치적 발화력을 갖는 ‘몸’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의 논의를 교차시킨다. 동시에, 세 철학자의 논의와 관련된 비판적 해석과 쟁점들을 정리하여 일상적인 담화일 뿐 학문의 대상으로 쉽게 인식되지 않았던 ‘이야기하기’가 가진 함의를 재조명한다. 끝으로 이들의 통찰이 질병·장애인 브이로그를 둘러싼 ‘이야기하기’ 실천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보고, 본 연구에서 다룰 주요 개념과 분석틀을 제시한다. 본 연구가 던지는 질문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브이로거들은 질병·장애 경험을 어떻게 의미화하며, ‘이야기하기’를 통해 정체성을 구현하는 방식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둘째, 브이로거들의 질병·장애 경험 발화는 정치 담론의 측면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 셋째, 브이로거와 시청공동체(viewing community) 사이에서 어떤 성격의 연대와 관계 맺기가 발생하는가? 이 같은 연구 문제에 대한 논증과 더불어 브이로거들이 언어화하기 힘든 질병·장애 경험과 감정을 몸으로 표현하는 방식과 그 의미를 분석한다. 질병·장애 브이로거의 살아있는 몸 경험과 일상을 드러내고 이들의 미디어 실천이 갖는 의미를 분석하기 위해, 본 연구는 ‘인터넷 민속지학(Internet Ethnography)’과 브이로그 영상에 대한 ‘멀티모달리티 분석(Multimodality Analysis)’, 브이로거들의 ‘초점집단인터뷰(Focus Group Interview)’를 병행한다. 질병·장애인들은 브이로그를 통해 일상을 기록하며 삶의 의미와 방향을 만들어나간다. 이들의 이야기는 선형적이거나 구조적이지 않다. 예측할 수 없는 통증과 계속되는 몸과의 불화로 이야기는 종종 중단되고, 내용은 파편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이야기를 매개로 자신의 몸 경험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지속한다. 브이로거들은 질병·장애로 인한 변화된/변화 중인 신체와 삶을 응시하며, 그 경험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비유의 언어를 발굴해나간다. 또한 브이로거들은 몸의 일부이자 확장으로서 보조기기(휠체어, 보청기, 흰 지팡이, 의족 등)와 새롭게 관계 맺으며 삶 과정을 재편하고, 정상 사회에서 비가시화되었던 질병·장애 경험을 시청각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 보인다. 이들은 영상 기획과 촬영, 편집 등을 직접 수행하며 브이로그를 자기표현의 공간으로 의미화 한다. 시청자들에게 질병·장애와 살아가는 보통의 일상과 삶의 지향을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에 대해 책임지려는 노력을 통해 자기 존중감을 획득해나간다. 본 연구는 이러한 과정을 브이로거들이 아프고 취약한 몸과 공생하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능동적으로 구성하는 수행적 실천으로 분석한다. 질병·장애인들에게 브이로그는 몸 경험을 이해하고 자기 정체성을 구축하기 위한 자전적 기록으로 출발하지만, 결코 자기만족적 미디어 실천으로 그치지 않는다. 질병·장애 브이로거들은 고정불변의 사회 규범과 인습에 대항하는 정치적 발화를 이어간다. 이들은 질병·장애의 몸을 치료와 극복의 대상으로 접근하는 의료 권력의 작동방식을 비판하고, 의료 담론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체현의 증언들을 길어낸다. 건강중심사회, 비장애중심주의, 질병인과 장애인을 무능력한 존재로 표상하는 사람들의 차별적 태도와 미디어 재현에도 문제를 제기한다. 이들의 저항은 언술 형태의 이야기하기를 넘어 낙인찍힌 몸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질병·장애에 들러붙는 부정적 표식(항암 치료로 인한 민머리, 장애를 부각하는 보조기기 등)을 감추지 않고 기꺼이 노출시킴으로써 낙인 효과를 전복하거나 비장애인들의 시선 폭력과 모욕적인 발언을 패러디하는 것이 그 예이다. 이들은 질병·장애인을 대표해 조직적 투쟁을 전개하지 않는다. 보통 사람의 일상처럼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기록할 뿐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들의 작은 일상의 기록 속에서 사회적 억압과 모순이 폭로된다. 브이로그를 매개한 이들의 미디어 실천은 질병·장애인의 차별과 배제 문제가 추상적이고 규범적인 차원에서만 논의되거나 일회적 공적 담론으로 소진되는 것을 거부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내 주변의 누군가가 겪을 수 있는 문제임을 느낄 수 있도록 말을 거는 것, 그리하여 느슨하지만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연대를 적극적으로 구하는 정치적 행위로 확장된다. 브이로그는 질병·장애 브이로거와 시청공동체가 서로의 취약함을 공유하며 돌봄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이야기판이기도 하다. 브이로그는 신체적 제약과 물리적 한계 때문에 서로에게 닿을 수 없었던 아프고 취약한 몸들을 연결시키는 장으로 전화한다. 정상성으로부터 소외된 이야기꾼들은 브이로그로 연결돼 아픔을 공유하며 공동의 이야기를 쌓아올린다. 이 이야기꾼들은 질병(인), 장애(인)이라는 동질감 뿐 아니라 동질감 내부의 다양한 위치와 차이를 확인하며 다름에 숨어있는 연대의 소실점을 발견해나간다. 한편 이 이야기판에는 ‘아직’ 건강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모여든다. 이들은 자신을 ‘예비 암 환자’, ‘잠재적 장애인’으로 부르며 취약성을 인간 공통의 삶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돌봄’이라는 긍정적 정동을 일궈나가며 이야기판의 외연을 확장한다. 질병·장애인 브이로그는 취약한 자들의 생활세계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텍스트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지닌다. 최근 장애의 원인을 개인의 생물학적 손상이 아닌 사회구조로부터 유래하는 활동의 제약과 불이익으로 보는 ‘사회적 모델(social model of disability)’이 정론으로 대두되고 있으나, 이 모델은 개별 질병·장애인의 질적 차이를 소거하고, 이들의 살아있는 경험을 구조로 환원하는 한계가 있다. 본 연구는 질병(인)·장애(인)의 이해를 구조적 차원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닌 각기 다른 질병·장애인의 이야기 경험으로부터 취약성의 일상 정치를 규명하는 시도로서 그 의의가 있다. 또한 본 연구는 장애·질병 브이로거가 영상을 통해 몸 경험을 표현하는 방식과 그 의미를 분석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질병·장애는 몸 내부의 경험이자 몸을 매개로 세계를 만나는 경험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다루는 기존의 연구들은 몸에 대한 논의를 간과해왔다. 이에 연구자는 장애·질병인의 몸 경험이 전면화되는 순간을 ‘몸말’로 개념화하여 몸의 해석적 실천과 의미를 살폈다. 브이로거들이 언어화되기 힘든 질병·장애 경험과 감정들을 영상과 소리, 자막 등 다양한 시청각적 요소를 활용해 표출하는 과정을 좇아 이들의 몸말을 다층적으로 해석하고자 했다. 끝으로, 본 연구는 질병·장애인의 자율적 미디어 실천을 드러낸 시도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기존의 언론학과 문화연구에서 수행된 연구들은 질병·장애를 대상화하는 미디어 재현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질병·장애인을 수동적인 수용자 또는 사회적 약자로 위치지우고, 이들의 미디어 접근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연구가 주를 이룬다. 그러나 본 연구는 질병·장애인들이 능동적인 미디어 생산자로 나서는 현상을 분석해 이들의 위치를 새로이 쓰고자 했다. 주류 미디어의 정형화된 방식과는 다른 의미를 생산하는 이들의 미디어 실천을 탐색한 본 연구는 미디어 연구 지평을 넓히는데 작게나마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유튜브는 확증편향과 필터버블,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영상과 허위 정보의 온상지로 해석되어 왔다. 그러나 질병·장애 브이로거들은 플랫폼 자본주의 질서에 일방적으로 끌려가기보다 그 기술 명령들을 전유하는데 능통하다. 이들은 그간 언어화되지 못했던 취약한 삶‘들’과 몸의 경험을 플랫폼 공중에 확산시키며 스스로 존엄성을 획득해나간다. 나아가 시청공동체로 연결된 아프고 취약한 몸들과 연대하며 서로를 돌보고, 소수자를 향한 억압적인 사회 규범들에 경종을 울리기도 한다. 상업화된 미디어 공간에 작은 틈새를 벌리며 대항적 이야기판을 확대하고자 하는 이들의 시도로부터, 약자들이 플랫폼 기술을 새롭게 전유하는 미디어 실천과 문화 정치적 변환 가능성을 타진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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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This study analyzes the meaning of media practices that people document their experiences of illness and disability on YouTube vlogs; it addresses three questions. First, how do vloggers in illness and disability establish their identities and express themselves by storytelling their embodied experiences in daily life? Second, how do they perform political activities against normative violence and dominant discourse through vlogs? Third, how is solidarity built between vloggers and viewers? This study argues that ill and disabled people’s vlogs expand from individual's autobiographical video texts to the field of political discourse, and functions as a community linking isolated vulnerable bodies. Before commencing an in-depth analysis, this study identifies the theoretical implications of ‘Storytelling’ and its practical value drawing on philosophical insights from Paul Ricoeur, Hannah Arendt and Judith Butler. Ricoeur who developed the concept of ‘narrative identity’ argues that the capacity of storytelling supports the permanence of selfhood throughout the various changes of a lifetime. Human beings are not born with a certain identity; they develop their own identity throughout their lives and the process of developing identity is rather flexible. Even if personal identity is not fully stable, human beings constantly ask questions such as ‘Who am I, and what kind of person do I want to be?’ and refigure their identity. Arendt further expands on the political implication of storytelling. Storytelling is a political action for people excluded from the mainstream, called ‘pariahs’ who enable themselves to show their presence in public space. Revising the claims of Arendt’s political action, Butler broadens the theory of performativity beyond speech acts to include the concerted actions of the body. Assemblies of vulnerable bodies have an expressive dimension that cannot be limited to words. The gathering of vulnerable bodies itself has a significant message, and this is her ‘new plural and embodied body politics’. This study explores the theoretical works of the three aforementioned philosophers and the critical interpretations related to them, then develops an analytical framework to interpret the meaning of media practice by ill and disabled people who tell their vulnerable body’s experience and show their lives on YouTube vlogs. The analysis results are composed of three parts. Ill and disabled people find the meaning and direction of life by storytelling about their experiences through daily vlogs. They strive to document their embodied experiences in order to integrate the pains and changes caused by vulnerable bodies as part of their lives although restricted body function and unpredictable pain interrupt their storytelling for self-understanding. They use various metaphors and audio-visual elements to express illness and disability experiences that are invisible and difficult to explain. They also accept assistive devices(wheelchairs, hearing aids, white canes, artificial legs, etc.) as their extended body, and they actively find what they can do in a relationship with the assistive devices. Furthermore, they build self-efficacy and self-esteem by creating vlogs themselves, sharing their lives with the viewers and making an effort to take responsibility for every word they say on vlogs. All of these mentioned above in this paragraph are performative practices that vloggers accept failures and small achievements to coexist with vulnerable bodies, and constantly (re)construct their identity. Ill and disabled people produce vlogs as an individual’s autobiographical video text; however, their vlogging is not only a self-satisfied media practice but also a political action forming resistant discourses about small repression of their daily lives. Vloggers share their experience of being alienated from the medical field, and they tell their viewers about their own experiences hidden by medical discourse. They reject the medical model of illness and disability which is viewed as a defect that the field of medicine and healthcare professionals must fix and completely overcome. They also speak out against discriminatory attitudes towards illness, disability, and media representation which has reinforced negative stereotypes and social prejudice about ill and disabled people. They willingly expose marks of shame such as hair loss after radiation therapy or assistive devices representing disability to countervail effects of bodily stigma. They do not engage in organizational struggles on behalf of the ill and disabled. They just document their lived experiences on vlogs, however, the prevalence of normative violence and structural problems related to disability and illness in our society is revealed in their daily lives. That is why their media practices are well worth enough as micro-political tactics in everyday life. Their personal vlogs open up ‘collective story champ’ linking individuals with ill and vulnerable bodies. Wounded storytellers who were socially isolated due to physical limitations, pain or ingrained prejudices against illness and disability build empathetic connections by exchanging comments in the champ. Vloggers in illness and disability produce video texts together by complementing each other’s physical difficulties, then they feel empowerment and strong solidarity. Meanwhile, people who have not ‘yet’ experienced illness and disability gather in the champ. They call themselves ‘potentially’ ill and disabled people in order to evoke an awareness of human primary vulnerability and fundamental interdependency with or without illness or disability; in other words, since all humans are vulnerable, we are interdependent beings who should be living together and caring for each other. Networked people develop weak but continuous ties, and practice the ‘political ethics of care’ by sharing the vulnerability of each other via vlo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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