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콜레라 유행과 미군정의 방역 정책
1946 Cholera outbreak and the United States Army Military Government in Korea's quarantine policy
- 발행기관 서강대학교 일반대학원
- 지도교수 최기영
- 발행년도 2022
- 학위수여년월 2022. 2
- 학위명 석사
- 학과 및 전공 일반대학원 사학과
- 실제 URI http://www.dcollection.net/handler/sogang/000000066704
- UCI I804:11029-000000066704
- 본문언어 한국어
- 저작권 서강대학교 논문은 저작권 보호를 받습니다.
초록 (요약문)
본 연구는 1946년 콜레라 유행에 대한 미군정의 대응을 살펴보았다. 1946년 여름 한반도 남부를 중심으로 확산된 콜레라는 당시 미군정이 직면한 주요 위기 였다. 일본과의 전쟁을 위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대규모 전개된 미군은 1945년 승전 후 점령군으로서 각지에 주둔해 통치행위에 깊숙이 관여하였다. 특히 미군정이 실시된 한반도는 그 대표 사례였다. 일제의 패망으로 해외 한인들이 대거 귀환하는 과정에서 콜레라 등 전염병이 유입됐다. 콜레라 유행은 당시 한반도의 식량난과 의료 체계를 비롯한 사회 시스템 붕괴라는 환경 속에서 한층 더 심각해졌다. 사실상 통치주체로서 미군정은 콜레라를 포함한 다양한 사회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미군정은 기존 조선총독부 행정기구를 전유하거나 개조하는 방식으로 통치체제를 확립해나갔다. 콜레라 대응도 마찬가지였다. 경찰 활동의 연장선에서 강력한 식민통치의 일환으로 위생 정책을 일관하던 일제와 달리, 미국은 의료인 중심의 보건위생 정책을 추진하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미군정이 신설한 위생국과 그 후신 보건후생부(국)는 콜레라 방역의 중심 조직으로 출범했다. 보건후생국은 산하 조선방역연구소를 중심으로 대량의 콜레라 예방주사액을 생산해 보급했다. 백신은 콜레라 감염률·사망률을 통제하는데 어느 정도 효과를 거뒀으나, 까다로운 접종 방식과 탈수를 방지할 수액 등 보조 의료물자 부족이라는 한계에 봉착했다. 실질적인 의료 조치가 어려운 상황에서 방역의 일환으로 감염자 격리는 물론 도시 단위 봉쇄가 이뤄졌다. 당초 미군정의 의도와 달리 경찰 방역 과정 전반에 깊숙이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의료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경찰은 콜레라 환자가 발생할 경우 현장에 먼저 출동해 1차 방역을 맡기도 했다. 대구 등 일부지역에선 방역 현장에서 의료진과 경찰이 충돌하는 등 갈등도 있었다. 보건후생부의 예산 부족도 문제였다. 콜레라가 창궐한 1946년 보건후생부의 예산은 12개 중앙부처 중 9위에 머물 정도로 제한적이었다. 결국 보건후생부는 방역의 상당 부분을 경찰 인력에 의존하는 가운데, 해충 방지·날 음식 섭취 금지 등 언론을 통한 ‘계몽’ 활동에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 미군정은 한반도 진주 후 방역 체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일본인의 귀환을 위해 일본인 의료진과 적극 협력했다. 경성제대 의학부 소속 일본인 의료진을 중심으로 조직된 이동의료국은 미군정의 협조로 서울→부산→일본으로 이어지는 인양자 의료지원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다. 반면 콜레라 확산 후 일부 미군 관계자는 한국인 의사와 갈등으로 방역 실패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해방 후 남한의 첫 콜레라 확산은 부산항에 들어온 귀환선에서 발생했는데, 당시 의료진의 회고 등에 따르면 이는 한국인 의사의 조언을 무시한 미군 초급장교의 독단이 주된 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같은 시기 일본, 한반도 북부에 비해 한반도 남부에서 보다 많은 콜레라 감염자·사망자가 발생하였다. 1946년 콜레라 유행은 당시 식량난 등 사회문제와 결부되어 미군정 통치의 정당성을 위협한 위기였다. 미군정의 방역 실패는 도시 봉쇄에 대한 모순적 태도에서 잘 드러난다. 방역을 위해 외부와 교통이 차단된 대구에서는 콜레라 창궐이 식량 부족 문제와 결합해 상승 작용을 일으켰다. 효과적인 방역에 실패한 미군정에 대한 불만은 대구 10월 사건이 발생한 주요한 원인 중 하나로 보인다. 반면 주요 곡창지대인 전라북도 지역에서는 식량 반출 명목으로 인구 이동에 대한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미군정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자 미군이 제공한 구호물자가 콜레라 바이러스로 감염됐다는 등 유언비어도 유행했다. 미군정은 이를 ‘공산주의자의 소행’으로 규정해 방첩 활동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콜레라 예방 백신을 접종했음을 증명하는 ‘콜레라 통행증’이 교부되어 ‘합법적 주민’과 ‘간첩’을 구별하는 수단으로 구실하기도 했다. 일제 패망 후 대규모 인구 이동 과정에서 창궐한 콜레라는 해방 직후 한반도에서 맹위를 떨쳤다. 미군정은 의료 전문가 중심의 미국식 방역 체계를 한반도에 이식하려 했으나 의료 인력과 물자 부족이란 현실에 봉착했다. 미군정의 일관되지 못한 방역 대책, 한국인 의료진에 대한 무시 등으로 인해 1946년 한반도 남부의 콜레라 유행은 상당한 피해를 야기했다.
more초록 (요약문)
Cholera, which spread around the southern part of the Korean Peninsula in the summer of 1946, was a major crisis faced by the U.S. military government at the time. The U.S. military, which was deployed on a large scale in the Asia-Pacific region for the war against Japan, was stationed in various places as an occupational force after winning the war in 1945 and was deeply involved in governing. In particular, the Korean Peninsula, where the US military government was implemented, was a representative example Infectious diseases such as cholera flowed in while a large number of overseas Koreans returned due to the defeat of the Japanese colonial rule. The cholera epidemic became even more serious in the environment of food shortages on the Korean Peninsula and the collapse of social systems, including the medical system. In fact, as the governing body, the US military government needed to solve various social problems, including cholera. It is a well-known fact that infectious diseases such as cholera are an international problem. However, when discussing the international nature of the epidemic, existing studies seem to focus only on the cholera inflow stage. It seems necessary to examine why the same epidemic shows different transmission speeds and degrees, infected people, and deaths in each country. Another limitation is that there is no detailed analysis of Gyeongsangnam-do and Gyeongsangbuk-do, where the number of infected and dead was the highest, amid the regional pattern of the cholera epidemic in 1946. Considering that the outbreak of cholera in the region has deepened in the social context of food shortages and left-right wing conflicts, it is necessary to examine it more closely. Therefore, this study attempts to examine the 1946 cholera epidemic in the variables of 'country' and 'region'. Based on the results of existing research on the U.S. military government health care system, we will examine how the organization and system worked in the reality of the cholera epidemic. The main points are as follows. It is an analysis of the social context on the reason why the number of cholera infections and deaths between South Korea and Japan, respectively ruled by the U.S. Army Command Military Government and the Supreme Allied Command, led by the U.S. military. military. In the process, we will refer to media reports at the time, data from health authorities of the U.S. military government, and retrospectives of quarantine offici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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