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 3세 시기(1824-1851) 방콕 상좌부 불교사원의 博古圖벽화에 관한 연구 : 왕실사원 ‘왓 라차오롯’을 중심으로
- 주제(키워드) 상좌부 불교사원 , 라마 3세 , 왓 라차오롯 , 박고도(博古圖) , 중국풍 벽화 , 다보각(多寶閣) , 역유리그림 , 길상 , 원근법 , 투시법 , 방콕 , 태국 , Theravada Buddhism , Ramma III , Wat Ratcha Orot , Chinese-style murals , Chinese treasure cabinet , reverss-glass painting , auspicious sign , perspective
- 발행기관 서강대학교 일반대학원
- 지도교수 강희정
- 발행년도 2021
- 학위수여년월 2021. 8
- 학위명 석사
- 학과 및 전공 일반대학원 동남아시아학협동과정
- UCI I804:11029-000000066089
- 본문언어 한국어
- 저작권 서강대학교 논문은 저작권보호를 받습니다.
초록/요약
박고도(博古圖)는 박고화훼화(博古花卉畵)의 줄임말로 꽃과 화병, 골동품 등의 각종 기물을 그린 그림을 의미한다. 태국 짜끄리왕조(Chakri, ราชวงศ์จักรี, 1782-현재)의 라마(Rama) 3세(재위 1824-1851) 시기에 방콕의 여러 상좌부 불교사원에 벽, 문, 창문 등에 박고도가 태국식으로 변형되어 독특한 방식으로 그려졌는데, 이 중 벽에 그려진 박고도, 즉 중국풍 벽화를 본 연구에서는 박고도 벽화라고 부른다. 방콕의 상좌부 불교사원에서 가장 신성한 공간인 우보솟(Ubosot, อุโบสถ)의 벽화가 힌두∙상좌부 불교의 전통벽화가 아닌 세속적인 중국의 정물화로 대체된 전례없는 사례가 등장했는데, 그 중 상좌부 불교사원으로서 최초이자 대표적인 사원이 방콕에 위치한 왕실사원 왓 라차오롯(Wat Ratcha Orot, วัดราชโอรส)이다. 왓 라차오롯 등 방콕 상좌부 불교사원들의 박고도 벽화를 다룬 기존의 연구들은 박고도 벽화에 그려진 길상과 소재, 그리고 이 벽화에 영향을 미친 요소를 중심으로 박고도 벽화 그 자체의 특징만을 다루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방콕의 박고도 벽화가 태국 회화사에서 어떤 의의와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를 다루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중화미술을 수용하여 현지 전통미술에 사용된 방식에서 보이는 방콕미술의 개방성을 이해하기도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이 한계를 극복하고자 본 연구에서는 박고도 벽화의 특징을 전통벽화와 비교하여 중요한 차이가 무엇인지를 알아보고, 중화미술이 방콕에서 수용되고 혼합된 특징을 회화를 중심으로 다루고 이러한 양식을 일컫는 용어를 정의할 것이다. 그리고 기존의 연구들이 다루지 않았던 왓 라차오롯 벽화에 적용된 원근법·투시법을 자세하게 다루어 방콕의 박고도 벽화의 특수성을 강조할 것이다. 기존 연구 중에서는 박고도 벽화가 그려지게 된 역사적·사회적 배경을 세부적으로 다룬 연구는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당시 박고도 벽화가 유행하던 시기의 역사적·사회적 배경, 그리고 불교사원의 복원과 장식 작업에 후원한 상류층의 후원활동을 자세하게 다룰 것이다. 박고도 벽화의 등장 배경에는 중국과의 활발한 교류로 방콕에 수입된 수 많은 중국 상품, 상좌부 불교의 탐분문화, 화인문화의 발전 그리고 라마 3세의 독실한 불심(佛心)이 있었다. 국내에서는 태국 전통벽화에 관한 연구가 매우 부족하고, 라마 3세 시기의 태국미술과 태국의 박고도 벽화를 다룬 연구가 아직 발표된 바가 없다. 이에, 본 논문은 그동안 알기 어려웠던 라마 3세 시기의 미술과 문화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길 바란다.
more초록/요약
During the reign of Rama III(1824-1851) of the Chakri Dynasty of Thailand, unique Chinese-style murals were painted on walls, doors, and windows of many Theravada Buddhist temples of Bangkok. An unprecedented case has emerged in which the most sacred space, Ubosot, in Theravada Buddhist temple has been decorated by secular Chinese-style murals, not traditional Buddhist murals, among which the first and most representative temple is Wat Ratcha Orot, a royal temple in Bangkok. Most of precedent research dealing with Chinese-style murals of Theravada Buddhist temples such as Wat Racha Orot tend to deal with only the characteristics, auspicious sign, and materials painted on the murals, and the elements that influenced Chinese-style murals. Not only did this not address the significance and value of Bangkok's Chinese-style murals in Thai painting history, but it is also difficult to understand the openness of Bangkok art. To overcome this limitation, this study compares the features of Chinese-style murals with traditional murals to find out what the significant differences are, focus on the features of Chinese art accepted and mixed in Bangkok traditional art, and define the terms of this style. In addition, highlights the specificity of Bangkok's Chinese-style murals by detailing the perspective applied to Wat Ratcha Orot murals, which have not been covered by previous studies. Among the precedent researches, there is a very lack of research that deals in detail with the historical and social background of the painting of Chinese-style murals. Therefore, this study details the historical and social background of the time when Chinese-style murals were popular, and the support activities of the upper class who sponsored the restoration and decoration of Buddhist temples. Behind the emergence of Chinese-style murals were numerous Chinese goods imported to Bangkok through active exchanges with China, high demand from the upper class, and a culture of accumulate virtuous deeds of Theravada Buddhism. In Korea, there is a great lack of research on traditional Thai murals, and no research has been published on Thai art during the reign of Rama III and Chinese-style murals in Thailand. Therefore, I hope this paper will help understanding the art and culture of the reign of Rama III, which has been difficult to underst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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