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카르미데스편 일관성 문제 : 영혼의 돌봄을 중심으로
On the coherence problem in Plato’s Charmides : Focused on Caring for Soul
- 주제(키워드) 절제 , 인물 , 자신을 아는 것 , 영혼의 돌봄 , 무지에 대한 인식 , sōphrosynē , Character , To know oneself , The care of the soul , Knowledge of ignorence
- 발행기관 서강대학교 일반대학원
- 지도교수 전헌상
- 발행년도 2021
- 학위수여년월 2021. 2
- 학위명 석사
- 학과 및 전공 일반대학원 철학과
- UCI I804:11029-000000065779
- 본문언어 한국어
- 저작권 서강대학교 논문은 저작권보호를 받습니다.
초록/요약
『카르미데스』라는 플라톤의 대화편은 표면상 절제(sōphrosynē)가 무엇인지 를 논의하는 대화편으로 보인다. 실제로 인물들 간에 오가는 대화 안에는 많은 절 제의 정의가 등장한다. 이러한 많은 정의들 중에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라는 절 제의정의가등장하는대목을우리는주목하게된다. 차분함이나염치,제할일 을 하는 것 등의 구체적인 삶과 밀접하게 관련하는 절제의 정의가 등장하는 전반 부와는 달리 후반부에는 자기 자신을 아는 것, 다른 지식과 그 자체에 대한 지식 등 지적인 성격의 절제의 정의들이 등장한다. 이 글은 이렇게 변화된 것처럼 보이 는 논의의 흐름을 여전히 영혼의 돌봄이라는 주제 안에서 이해할 수 있음을 보인 다. 이러한 이해를 가능하도록 하는 것은 논의 자체에 놓여있는 초점을 인물들에 게 돌리는 것이다. 논의 안에서 카르미데스, 크리티아스 그리고 소크라테스라는 인물이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를 살펴보는 작업을 통해 일관적으로 대화편을 이해 할 수 있게 된다. 소크라테스의 관심은 카르미데스가 절제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검토하고자하 는 대화편 초두에서의 그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 영혼의 돌봄에 놓여있다. 영혼을 돌본다는 것은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참된 지식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런 점에서 카르미데스가 절제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검토하는 것은 그가 참된 지식을 가져 영혼을 돌볼 필요가 없는지 아니면 무지하여 참된 지식을 추구해야하 는지를 판가름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영혼의 돌봄에 대한 관심은 크리티아스가 제 시하는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라는 절제의 정의가 제시된 이후부터는 마치 절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지적인 관심으로 옮겨가는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여전히 크리티아스의 영혼에 대한 돌봄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영혼의 돌봄이라는 주제가 일관적으로 이어져가고 있을 뿐 아니라 카르미데스와 크리티아스에 대한 영혼의 돌봄은 긴밀하게 관련된다. 소크라테스와 크리티아스의 논의에서 크리티아스는 줄곧 자신을 아는 자로 드러내길 원하는 사람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절제 에 대해서도 아는 자이고 이에 따라 그는 스스로를 절제 있는 사람으로 여긴다. 이 런 크리티아스이기에 대화편 서두에서 그가 카르미데스가 절제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절제 있는 사람은 절제를 아는 사람이고, 절제를 아는 사 람만이 절제 있는 누군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크리티 아스가 절제에 대해 무지하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이는 곧 카르미데스 또한 절제 있지 않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절제에 대해 무지한 사람은 누군가가 절제가 있 는지 없는지를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카르미데스의 절제의 유무에 대한 검토와 크리티아스의 절제의 유무에 대한 검토의 긴밀한 관계는 크리티아스가 카르미데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 을 보여준다. 이러한 구성을 통해 30 인 과두정을 이끄는 크리티아스의 영향이 카 르미데스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되는 원인임을 확인하게 된다. 이런 구성을 받 아들인다면 소크라테스가 크리티아스의 절제의 정의가 논박되어 논리적으로 받아 들일만 하지 않음에도 그의 주장을 인정하며 논의를 이끌어가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마지막까지 크리티아스가 자신의 무지를 인정함으로 참 된 지식을 추구하도록, 즉 영혼을 돌보도록 그를 이끌고자 했지만 크리티아스는 자신을 아는 자로 드러나기만을 원하는 자였기에 끝끝내 소크라테스를 따르지 않 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크라테스와 크리티아스의 엇갈림의 핵심에는 무지에 대 한 인식이라는 개념이 자리한다.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라는 절제의 정의가 지식 의 지식으로 변형되었을 때 소크라테스는 그 정의에 무지에 대한 지식이라는 요소 를 추가한다. 소크라테스가 무지에 대한 지식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것은 무지를 인식하는 것이 참된 지식을 추구하는 데에 중요하다는 그의 의도를 드러내는 것이 다. 스스로의 무지를 인정한 사람만이 비로소 자신의 영혼을 돌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지를 인식하는 소크라테스가 영혼의 돌봄에 관심을 갖는데 반해 무지를 인식 하지 못하는 크리티아스의 관심은 자기 자신에 놓여있다. 그는 자신이 아는 자로 드러나길 원하는, 자신의 지식을 뽐내고자 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절 제가 무엇인지를 논의하는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절제가 무엇인지를 검토하는 것이 아닌 이미 자신이 절제에 대해 아는 자이고, 자신이 아는 것을 소크 라테스에게 설명해주는 방식의 태도를 취한다. 이에 따라 그는 이미 절제를 아는 자, 즉 절제 있는 사람이다. 그의 관심은 철저히 자기 자신, 곧 개인에 놓여있다. 반 면 영혼의 돌봄을 통해 참된 지식을 추구하는 소크라테스의 관심은 공동체에 놓여 있다. 참된 지식을 밝히는 것은 좋은 것인데, 밝히는 사람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좋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좋지 않다면 그것은 참된 지식이라고 할 수 없다. 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 참된 지 식은 언제나 그리고 누구에게나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소크라테스에 게 있어서 참된 지식을 밝히는 것과 이를 통해 모든 사람이 유익을 얻는 것은 직결 된다. 이러한 유익은 곧 행복(eudaimonia)임이 밝혀지게 된다. 플라톤은 『카르미데스』에서 카르미데스와 크리티아스 그리고 소크라테스 사 이에 오고가는 대화를 통해 그들의 인물됨을 드러낸다. 이를 통해 소크라테스에게 씌워진 젊은이를 호도했다는 죄명은 오해이며, 오히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강조해 마지않던 행복을 가능케하는 영혼의 돌봄에 온 힘을 쏟았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more초록/요약
Plato's Carmides appears to be a dialogue discussing what temperance is. In fact, many definitions of moderation(sōphrosynē) appear in the dialogue between the characters. Among these many definitions, we draw attention to the point in which the definition of temperance, “to know oneself” appears. Unlike the first half, where the definition of temperance, which is closely related to a specific life such as calmness, shame, and doing one's job, appears, in the second half, the intellectual temperance of knowing oneself, knowledge of other knowledge and itself, etc. of definitions appear. This thesis shows that the flow of discussion that seems to have changed in this way can still be understood within the subject of the care of the soul. What makes this understanding possible is to turn the focus on the discussion itself to the characters. Through the work of examining the personality of the characters Carmides, Critias, and Socrates in the discussion, we can consistently understand the dialogue. Socrates' interest lies in the care of the soul, as can be seen from his appearance at the beginning of the dialogue to examine whether or not Carmides is a moderate person. Caring for the soul means acknowledging your ignorance and pursuing true knowledge. In this respect, examining whether or not Carmides is a moderate person is the work of determining whether he has true knowledge and does not need to take care of his soul or whether he should pursue true knowledge with ignorance. This interest in the care of the soul seems to shift to an intellectual interest in what temperance is after the definition of temperance, which is to know oneself as Critias suggests, is presented. However, since this change can still be understood as Critias' care for the soul, not only the theme of the care of the soul continues, but also the care of the soul for Carmides and Critias is closely related. In the discussion between Socrates and Critias, Critias is a person who always wants to reveal himself as a known person. In this respect, he knows temperance as well, and accordingly he considers himself to be tempered. Being such a critias, it seems natural for him to judge that Carmides is modest at the beginning of the dialogue. This is because a person with moderation is a person who knows moderation, and only those who know moderation will be able to judge someone with moderation. In this regard, if it turns out that Critias is ignorant of temperance, it leads to the conclusion that Carmides is also not tempered. This is because a person who is ignorant of temperance cannot judge whether someone has temperance or not. In this way, the close relationship between the examination of whether or not Carmides is a moderate person and the examination of whether or not Critias is a moderate person shows that Critias has a great influence on Carmides. Through this composition, it is confirmed that the influence of Critias, who leads the oligarchy of 30, is the cause of Carmides going on the wrong path. If we accept this composition, we can understand why Socrates accepts his arguments and leads the discussion, even though Critias's definition of temperance is refuted and is not logically acceptable. Socrates wanted to lead him to seek true knowledge by acknowledging his ignorance, that is, to take care of his soul until the end. At the core of this gap between Socrates and Critias lies the concept of ignorance. When the definition of temperance of knowing oneself is transformed into knowledge of knowledge, Socrates adds an element of knowledge of ignorance to that definition. Socrates' concrete specification of knowledge of ignorance reveals his intention that recognizing ignorance is important to the pursuit of true knowledge. This is because only those who acknowledge his own ignorance can take care of his soul. While Socrates, who recognizes ignorance, is interested in the care of the soul, Critias, who does not recognize ignorance, is interested in himself. He is a person who wants to be revealed as someone he knows and who wants to show off his knowledge. His attitude is evident in the process of discussing what temperance is. He does not examine what temperance is, but he already knows about temperance, and he takes the attitude of explaining what he knows to Socrates. Accordingly, he is one who already knows temperance, that is, a man who has temperance. His interest lies completely in himself, the individual. On the other hand, Socrates' interest in pursuing true knowledge through the care of the soul lies in the community. It is good to reveal true knowledge, because it is good for everyone, not just for those who reveal it. It is not true knowledge if it is good for some and not good for another. For Socrates, true knowledge is always good for everyone and for everyone. In this regard, for Socrates, revealing true knowledge is directly connected to the benefit of everyone. This benefit soon turns out to be happiness (eudaimonia). In Carmides, Plato reveals their character through dialogue between Carmides, Critias, and Socrates. Through this, it is a misunderstanding that the crime of misrepresenting the young man accused of Socrates, rather, reveals that Socrates devoted all his energy to the care of the soul that enables the happiness that he had emphasiz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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