後三國時期 高麗 太祖와 禪僧 : 四無畏大士와의 결연을 中心으로
Goryeo Taejo and Zenist during the Later Three Kingdoms Period: Focused on the connection with Samuweidaesa(Four big monks who reached a fearless state)
초록/요약
태조 왕건은 고려의 초대 국왕이자 후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군주로서 잘 알려진 인물이다. 특히 태조는 자신의 치세에 불교의 도움을 크게 얻었음을 여러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전국의 사찰에 입석된 선승비가 이를 증명한다. 선승들은 태조와 결연함으로써 그가 후삼국을 통합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태조와 결연한 선승들 중 단연 주목되는 이들로 迥微·慶猷·麗嚴·利嚴을 일컫는 ‘사무외대사’가 있다. 본고에서는 태조의 입장에서 사무외대사를 통해 어떠한 목적을 이루고자 했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왕건은 고려를 건국하기 이전에 사무외대사인 형미·경유와 처음으로 결연하였다. 왕건이 이들과 결연한 데는 당시 그가 지휘하던 서남해 지역에 대한 민심을 모으기 위한 목적이 작용하였다. 왕건은 이를 계기로 선승과의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한 효용성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형미를 통해 궁예와의 갈등 속에서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였다. 왕위에 즉위한 태조 왕건은 개국 초의 혼란을 안정시켜야 했는데 경유를 왕사로 임명하여 이러한 혼란을 효과적으로 대처하였다. 이후 태조는 후삼국 통합에 진력하였으며 여기에도 사무외대사인 여엄과 이엄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고려는 후백제와 경북 지역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였다. 특히 경북 지역으로 진출하기 위해 남한강 수계에 대한 장악이 선결되어야 했는데 이러한 역할을 여엄이 지평의 보리사에 주석하게 되면서 수행하게 되었다. 이엄은 태조 즉위 초부터 측근 선승으로 활약하였으며 그는 이후 광조사를 창건하고 수미산문의 개조가 되었다. 태조는 광조사 창건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는데 여기에는 여러 목적이 함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수미산문의 개창은 태조가 자신이 추인한 산문임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대중국 교역에 대한 선점을 이루기 위한 포석으로 이엄을 광조사에 주지시켰다. 이처럼 태조는 사무외대사를 통해 후삼국 통일기에 그의 의도에 따라 중책들을 수행하였으며 큰 성과를 이루어 내었다. 그리고 이러한 성과들을 통해 이 네 명의 선승들에게 사무외대사라는 칭호가 붙여진 배경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more초록/요약
King Taejo Wang Geon is the first king of Goryeo and a well-known figure who achieved the great work of unification of the Later Three Kingdoms. In particular, various sources confirm that Buddhism much helped Taejo in his reign, which is proved by Zenist monuments standing in temples across the country. Zenists' connection with Taejo played a significant role in unifying the Later Three Kingdoms. Of the Zenists tied with Taejo, “Samuweidaesa” including Hyungmi, Gyeongyu, Yeoum, Yium are those who are definitely attracting. This study examined what purpose Taejo wanted to achieve through Samuweidaesa. Before the founding of Goryeo, Wang Geon first made a relationship with Samuweidaesa, Hyungmi and Gyeongyu. The purpose of Wang Geon's alliance with them was to attract public sentiment in the Southwest Sea region, where he was commanding at the time. This made him recognize the utility of his relationship with Zenist and achieved his political purpose in the conflict with Gungye with the help of Hyungmi.. Taejo, who has crowned the throne, had to stabilize the turmoil at the beginning of the country. Therefore, Gyeongyu was appointed as the king's monk to deal with this confusion effectively. Later, Taejo made great efforts to unify the Later Three Kingdoms, here again, Samuweidaesa, Yeoum and Yium , played a significant role. Goryeo competed vigorously for Post Baekje and Gyeongbuk region. To advance to the Gyeongbuk region, specially, taking over the Namhan river water system was the first. This role was played by Yeoom while staying at the Borisa temple in Jipyeong. Yium has been the closest Zenist since the beginning of Taejo's ascension. Later, he founded the Gwangjo temple and became the originator of Sumisanmun. Taejo played a central role in the founding of the Gwangjo temple, which suggests that several purposes were implied. The opening of Sumisanmun was a proposition for Taejo to show his ratified prose both inside and outside of China, and as a paving stone to achieve preoccupation with China's trade, Yium was appointed as the chief monk of Gwangjo temple. Through the Samuweidaesa, as such, Taejo carried out important mission at his will in the unification of Later Three Kingdoms and achieved great results. And these achievements were the background for the title of Samuweidaesa to these four Zeni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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