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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포스터를 통해 본 통일 베트남의 “Ba đảm đang(세 가지 담당)” 여성운동 : 1976년부터 1986년 도이 머이(Đổi mới) 이전을 중심으로

Investigating the “Ba đảm đang” Female Movement of United Vietnam through Propaganda posters: Focusing from 1976 to before the 1986 Đổi mới

초록/요약

본 논문은 베트남에서 미국과의 장기간 전쟁이 끝나고 1976년부터 1986년 12월 도이 머이(Đổi mới) 정책을 발표하기 이전을 중심으로 선전포스터 속 여성이미지를 통해 국가와 당이 여성에게 요구한 역할의 특징과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분석했다. 1930년 베트남공산당(당시 인도차이나공산당)이 창설되면서 여성과 남성의 평등을 위한 투쟁이 포함되었고, 호찌민의 “여성들은 사회의 절반을 차지한다. 여성들이 해방되지 않으면 사회는 자유롭지 않다”는 이념은 여성들을 전쟁에 동참하도록 했다. 이처럼 전쟁을 겪는 동안 여성들은 민족해방과 더불어 여성과 남성의 평등을 위한 여성해방운동을 목표로도 혁명에 참여했기에 전후 상황은 베트남 여성들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시발점이었고, 전후 10년이라는 기간은 대내외적으로 경제적 위기의 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여러 조치들이 진행되었고, 통일 체제를 확립하는 중요한 시기였다. 선전포스터는 상대적으로 저렴하며 빠르게 공공 장소에 운송, 배포 및 전시하기 쉬우며, 눈에 띄는 이미지와 대담한 슬로건은 자신들의 의도를 명확하게 대중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20세기에 포스터는 공산 국가의 혁명적 운동과 통치에 있어서 강력한 선전 수단이었고, 사람들의 삶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베트남 선전 포스터는 1945년 8월 혁명으로 시작되어 장기화된 미국과의 전쟁시기에 절정에 달했으며, 현재까지도 선전포스터를 국가 정책과 관련하여 홍보수단으로써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포스터는 베트남 사회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시각 이미지이다. 따라서 이 기간 동안 베트남 여성에게 주어진 과업이 무엇이었는지 선전포스터를 통해 살펴봄으로써 여성들에게 요구된 의무가 특정 시기에만 주어진 것이었는지 아니면 지속적으로 베트남 여성들에게 요구된 고정화 된 의무사항이었는지 파악하고, 젠더의 관점에서 이 시기 베트남 여성의 특수성과 보편성을 살펴보는데 목적이 있다. 포스터에서 자료 선택의 기준은 여성이 등장하며 뚜렷하게 주제가 드러나는 것을 내용에 따라 분류한 후에 제작연도와 작가가 분명한 포스터들을 선별하였다. 이미지의 구체적인 의미와 특징을 살펴보고 베트남 당과 정부가 여성들에게 부과하려 한 의무가 포스터에 표현된 방식과 그 안에 숨겨진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이미지를 해석했다. 이를 위해 도상해석학적 방법론을 사용하여 주제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표어를 해석함과 동시에 포스터 이미지의 구체적인 의미와 특징 등을 읽어냈다. 1976년에서 1986년 까지 여성이 등장하는 포스터를 분류한 결과 68점의 포스터를 본 연구의 구체적인 분석 대상으로 선정했으며, 크게 ‘사회주의 노동자로서 여성’, ‘국가수호를 위한 투쟁과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연대’, ‘여성의 교육과 육아의 책임’ 3 가지 주제로 나누어 분석했다. 주제별로 구분하여 살펴본 여성이 등장하는 선전포스터에서 여성들은 국가가 제시한 일들을 수행함에 있어서 아이와 가족을 보살피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하는 이중, 삼중의 압박을 1976년부터 1986년까지 10년이라는 시기 동안에 감당해야 했다. 그와 동시에 여성과 남성의 평등을 이루기 위한 여성해방운동과 베트남여성연맹에서 제시한 법적인 조치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전포스터에서의 여성들은 남성들과 차별되는 전통적인 젠더의 역할을 수행하는 일도 병행해야 했다. 베트남 정부는 통일을 이룬 후, 농업과 경공업 발전을 토대로 산업 발전을 통해 국가 건설을 완성하고자 함에 따라 사회주의국가 건설에 필요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베트남 여성을 사회주의 건설자로 동원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외부적으로 오랜 전쟁 기간 동안 여성들을 동원하기 위해 사용했던 선전포스터를 이용해 여성 해방과 여성과 남성의 평등이라는 명목 하에 여성들을 노동자로서 사회주의 건설에 참여하게 했다. 베트남여성연맹(Vietnam Women’s Union)은 미국과의 전쟁이 시작되자 여성의 ‘Ba đảm đang(세 가지 담당)’ 운동을 전개하면서 여성의 참여와 희생을 호소했는데 세 가지 담당이란 (1) 전 산업분야에서 생산 수준을 유지하거나 제고할 의무, (2) 가족들을 돌보고 혁명에 참여하도록 격려할 의무, (3) 필요시 군대에 참여할 의무이다. 이전부터 여성들이 담당해온 책임들은 유지된 채 새로운 책임들이 추가되었는데 문제는 이전부터 여성들이 담당해온 책임은 여전히 이어진 채 새로운 의무들이 더해졌다는 점이다. 이처럼 베트남 여성의 이중적 질곡은 베트남 사회주의 이상과 이와는 따로 도는 현실적 요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이 시기에 남성들과 동등하게 교육을 받을 기회를 강조하거나 혁신적인 기술을 이용한 농업, 산업 생산활동과 관련된 포스터들에도 여성이 그려졌으며 이전과는 달리 긍정적인 면이 어느정도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목표이자 명분으로 내세운 여성과 남성의 평등을 비롯한 여성 해방은 전쟁이 끝나고도 이루어지지 못한 것으로 이 시기의 한계라 볼 수 있다. 전쟁이 끝나고 여성 해방과 여성과 남성의 평등을 목표로 여성들에게 과학기술의 응용, 교육의 기회 등으로 사회, 경제 참여를 독려하면서 여성에게 요구된 역할들은 여성을 속박하는 기제로 작용하였다. 따라서 여성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사회주의 건설에 매진하게 함으로써 사회에 진출을 촉진하게 했고, 이후 시련을 극복하고 여성 해방을 실현하기 위한 단계로써 작용했다. 결국 전후 1976년부터 1986년까지 10년이라는 시기는 여성해방을 목표를 이루기 위한 장벽을 넘는 과도기적 시기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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