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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전후 주성치 영화에 나타난 중국인 이미지의 변화

The changes of Chinese image in Stephen chow's films around 1997

초록/요약

1997년 7월 1일은 홍콩은 반 식민지에서 벗어난 역사상 가장 뜻 깊은 날이었다. 일국양제의 기본 정책은 홍콩을 경제 및 정치적으로 독립하게 만드는 새로운 기원을 열었지만 객관적인 측면에서 정치 및 경제적 신분의 전환은 홍콩인들의 신분에 대한 정체성과는 상반된 궤도로 진행되면서, 일찍이 중국과 영국이 체결한 <연합성명>을 전후로 홍콩인들은 이미 “홍콩반환”에 대해 엄청난 공황상태에 직면했다. 그 원인의 가장 중요한 것은 홍콩인들의 신분 정체성에 대한 두려움과 초조함 이상의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개인 혹은 집단에 상관없이 신분의 확립은 존재에 대한 전제조건이다. 한편으론 영국의 장기적 식민통치를 받았으며 다른 한편으론 중국과 상당 시간 동안 문화적 격리상태에 있었던 홍콩이 받아왔던 영예는 세계에서 매우 보기 드문 수준이었고, 오랜 시간 동안 국민교육은 없이 단지 공민(公民)교육만 받아온 도시였기에 보편적으로 홍콩인들의 국가에 대한 의식은 매우 희미했으며 국민이라는 신분은 항상 모호했다. 중국인들의 눈에 그들은 서양이었지만, 그들과 서양 간에 존재하는 정체성에는 차이가 있었다; 서양인의 눈에 그들은 또 중국인 이었지만, 그들과 중국인과의 문화차이는 매우 뚜렷했다. 그런 까닭에 홍콩은 자신만의 문화적 정체성이 없는 곳으로 여겨진 적도 있었다. 홍콩은 영국 식민통지가 시작하면서부터 계속해서 영국인, 중국인, 홍콩인 이라는 이러한 몇 가지 신분 가운데서 방황하게 된 것이다. 앤더슨은 공동체가 세워지기 시작할 때, 신분에 대한 정체성이 형성되며 공동체의 와해는 정체성 위기의 동기라고 여겼다. 이것은 바로 홍콩 사회가 계속해서 안정적인 공동체로 응집되지 못하고 끊임없이 신분 정체성의 난처한 곤경으로 빠져들게 된 이유이다. 영화는 일종의 문화의 저장장치이며 또한 “공동체”를 일으키는 중요한 수단이다. 의식형태는 의심할 바 없이 영화는 가장 깊숙이 있는 듯 없는 것처럼 정신적 핵심을 감추고 있다. “홍콩인 자화상”으로서의 주성치의 황당하면서도 익살스러운 영화는 그 발전 맥락에서 홍콩이라는 이 도시의 발전과 서로 돕는 상부상조하는 관계이다. 본 논문은 홍콩인의 신분에 대한 정체성이라는 시야에서 출발하여, 주성치 영화 가운데 중국인 이미지 형성의 변천은 홍콩이 새로운 신분 정체성의 표현을 추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주성치 영화 속에서 중국인의 이미지에 대한 형상화는 고정관념이 존재하며, 이러한 고정관념은 홍콩정치제도의 변화 및 시대의 변천에 따라 새로운 특징과 내포함을 나타낸다. 다음으로 주성치 영화에서는 매번 당자의 역사적 맥락과 서로 연관되어 있다. 영화 속에서 중국인을 향해 비웃는 이러한 복잡하면서도 모순된 심리상태의 변화는 홍콩인들이 조국에 홍콩이 반환된 이후 틈새 속에서 성장하는 “중국인이라는 정체성”과 “홍콩인이라는 정체성” 간에 끊임없이 씨름하며 변화하는 독특한 신분적 정체성이라는 것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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