辛酉迫害 당시 僞裝寡婦의 존재와 그 사회적 의미
- 주제(키워드) 신유박해 , 사학징의 , 여성신자 , 과부 , 가부장제
- 발행기관 서강대학교 일반대학원
- 지도교수 계승범
- 발행년도 2018
- 학위수여년월 2018. 8
- 학위명 석사
- 학과 및 전공 일반대학원 사학과
- 실제URI http://www.dcollection.net/handler/sogang/000000063483
- UCI I804:11029-000000063483
- 본문언어 한국어
- 저작권 서강대학교 논문은 저작권보호를 받습니다.
초록/요약
辛酉迫害 당시 僞裝寡婦의 존재와 그 사회적 의미 본 논문은 신유박해 당시 천주교 여성신자 중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거짓으로 머리를 올리고 ‘과부’로 위장한 사례를 분석하고, 그들의 사회적 의미를 검토하였다. 남성 가부장을 정점으로 한 성리학 질서가 안정 궤도에 진입한 18세기 말, 천주교 여성신자는 충격과 함께 조선사회에 새로이 등장하였다. 오랫동안 이름 없는 존재로 자리하였던 여성은 새로이 號를 가졌으며, 남성 신자와 같은 공간에서 새로운 세계를 꿈꾸었다. 이들에 대한 탄압은 1801년 신유박해로 본격화되었다. 신유박해에 처형된 여성신자의 면모는 邪學懲義를 통해 추적할 수 있다. 1801년을 전후하여 처형되거나 유배형에 처해진 여성신자는 60여명에 이른다. 이들 중 ‘許哥·吳哥의 처’ 등으로 자신의 혼인 이력을 날조한 여성신자는 6명이다. 아울러 혼인 이력을 속인 여성신자는 대부분 한미할지라도 양반출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에서 혼인의 갖는 사회적 의미와 경중이 각자가 처한 신분에 따라 달랐던 상황을 고려하면, 양반인 여성신자의 과부 위장은 새로운 의미를 가진다. 또한 이들의 위장은 조정에서 ‘상투적이다’라고 할 만큼 보편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위장과부의 존재와 그들의 의도를 탐구하고자 하였다. 위장과부의 의도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하여, 실제 과부 신자의 교회 내 역할을 먼저 살펴보았다. 당시 조선교회에는 과부 신자가 상당했으며, 이들은 과부가 가지는 활동성과 기동력을 기반으로 교회활동에 적극적이었다. 또한 집안이 한미한 양반이나 상민의 경우 과부의 경제활동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이는 초기 교회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 과부 신자의 역할은 천주교 탄압이 심해주고 주변의 감시가 삼엄해지는 상황 속에서 더욱 요긴하였다. 이에 몇몇의 여성신자는 거짓으로 머리를 올리며 종교활동을 계속해 나갔다. 무엇보다도 처녀인 여성신자가 과부로 위장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동정을 지키고자 하는 데 있었다. 일부 여성신자는 신앙생활의 한 형태로 천주에 대한 동정을 봉헌하였다. 이를 위해 처녀의 행적을 감추고 머리에 쪽을 지며 거짓으로 과부라 칭하였던 것이다. 여성신자의 위장은, 처녀에게는 결혼을 통해 남성중심의 가부장 질서로 편입될 것을 요구하고, 과부에게는 재가하지 않고 수절하는 것을 권하는 조선의 부녀 규범을 적극 활용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여성신자의 과부 위장은 결혼하지 않은 여성에게 향하는 조선의 인식과 관련 있다. 조선은 오랫동안 혼인장려책을 전개하면서, 혼인을 통해 여성을 가부장 질서 속에 포섭하고자 하였다. 특히 천주교 여성신자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위정자들이 이들을 ‘불온한’ 존재로 상정하는 데에 효과적이었다. 조선이 이들이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문제 삼자 몇몇의 여성신자는 자신의 혼인 이력을 속이며 과부로 위장한 것이다. 1801년 신유박해에 드러난 여성신자의 모습은, 이들이 조선사회가 사활을 걸고 이루고자 하였던 성리학적 가부장 질서의 사각지대를 찾아, 그 지점을 적극 활용하여 새로운 공간을 마련한 것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조선에서 남편과 사별하였지만 재혼하지 않은 채 수절하는 과부가 단지 외롭고 딱한 처지가 아니라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결국 몇몇의 여성신자는 ‘과부’라는 위장을 통해 기존 질서와 충돌하지 않으면서도 자신들이 추구하는 새로운 질서를 구축해 나갔다. 신유박해에 나타난 여성신자의 모습은 한편으로 파격적이지만, 그들 역시 ‘조선’의 시공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음을 시사한다.
more초록/요약
The Existence of False Widows Appeared in the Catholic Persecution of 1801 and their Social Meaning This paper examined the existence of false widows, or female Catholic devotees who fabricated their marriage record, emerged through the Catholic Persecution of 1801 and their social meaning. The details on female devotees who were punished during the 1801 Catholic Persecution can be found in Sahakjingui(邪學懲義, Records on Persecuted RomanCatholics in 1801), and those who were executed or exiled amounted to as many as 60, and six of them lied about their marital status. Some female Catholic believers put their hair up as a married woman and called themselves a widow even though there had not been married. Their strategy, calling themselves as someone’s wife and disguised themselves as a widow, were quite common that the royal court determined it to be “conventional.” This research aims to reveal the intentions of false widows, within the understanding of the status of a widow within Joseon’s patriarchal order. More detailed comprehension of the intention of the false widows necessitates further inquiry of the role of the actual widows within the church. There were significant number of widowed church believers in Joseon Dynasty, and they played an active role in church activities on the basis of their vitality and mobility. As for those from lower-class or poor yangban family, the ruling class of Joseon, economically active widowed women were common, which made a significant contribution to the early church in Joseon. Those widowed believers became more essential as oppression and monitoring on Catholic church intensified. Consequently, some female believers put their hair up to disguise themselves as a married woman and continued their religious activities. In addition, the fundamental reason for Catholic Female Virgins to disguise themselves as a widow was to protect their virginity. Female devotees dedicated their virginity to the church as a form commitment to their religious life. To this end, they put up their hair to conceal their trace of virgin, falsely calling themselves as a widow. Such camouflage by female devotees seemed to actively utilize the norms of Joseon period, which forced unmarried women to be included in male-oriented patriarchal order through marriage while demanding widowed women not to remarry and remain faithful to their deceased husband. Lastly, the camouflage by female devotees was related to the perception toward unmarried women during the Joseon period. The Joseon Dynasty had long implemented marriage encouragement policies, aiming at bringing women into the patriarchal order through marriage. Especially unmarried female catholic believers were often deemed to be a rebellious person. As the Joseon society made an issue of those unmarried female believers, some of them lied about their marital status and disguised themselves as a widow. Female believers emerged through the 1801 Catholic Persecution resulted from their attempt to seek for the blind spot of the patriarchal system established with the Neo-Confucianism, an order the Joseon society was desperate to built and maintain, and to actively utilize that spot to secure a new space for themselves. They comprehended the nature of the order they lived in and made a best of that order. Those female believers disguised as a widow were aware of the fact that they were not simply in a lonely and pathetic situation, as widows in Joseon refused to remarry after they had lost their husband and decided to remain faithful to their passed spouse. Those female believers of the 1801 Catholic Persecution must not have been able to be completely free from the time and space of Joseon they had lived in, but in the end, some female devotees attempted to avoid possible collisions with the conventional order through camouflage, while at the same time establish a new order they purs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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