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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의 초월적 경험론에서 예술의 위상

초록/요약

본 논문은 질 들뢰즈의 주저 『차이와 반복』(1968)에서 피력되고 있는 그의 철학적 기획을 ‘초월적 경험론(empirisme transcendental)’이라는 명칭과 더불어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들뢰즈가 예술에 부여하는 위상을 규명하는 데 목표를 둔다. 들뢰즈의 철학은 표상의 논리를 따르는 기존의 철학에서는 결코 사유될 수 없는 것으로 남아 있는 ‘차이 자체’를 사유하고자 한다. 그는 동일성에 앞서 오히려 그것을 발생시키는 근본 원리로서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동일성과 차이를 사유하는 상이한 두 세계가 있다. 첫 번째 세계는 ‘오직 유사한 것만이 다른’ 세계이다. 이는 동일성에서 출발해 유사성의 편차로부터 복사물들의 위계를 나누는 세계이며, 정확히 표상들(재현들)의 세계를 정의한다. 이 때 차이는 오로지 동일성에 매개된 것으로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 ‘오직 차이들만이 서로 유사한’ 세계가 있다. 이것이 들뢰즈가 새롭게 정초하고자 하는 시뮬라크르의 세계이다. 이 세계에서는 원본과 사본이라는 구분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오로지 차이나는 것들만이 유희와 발산만이 존재한다. 이 두 세계의 구분에 의거하여 들뢰즈 철학의 목표를 요약한다면 바로 전자 즉 표상들의 세계를 시뮬라크르들의 탈유사성 아래 복속시키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들뢰즈에 따르면 표상주의는 철학을 어떤 독단적인 사유의 이미지에 잠식되도록 할 뿐 아니라 예술에 대한 몰이해를 낳는다. 재현의 모델 아래에서 예술은 타락한 모상이라는 가치 폄훼를 당하며 철학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취급받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표상주의는 철학 뿐 아니라 예술이 탈피해야하는 공동의 적이 된다. 철학과 예술에 대한 들뢰즈 식의 이러한 관계 설정은 예술을 모방의 혐의로부터 구하는 일과 철학을 재현으로부터 구하는 일을 전혀 다른 과제로 만들지 않는다. 이를 염두에 둘 때 들뢰즈에게서 왜 그토록 예술이 중요성을 가지고 등장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예술이 표상주의를 적수로 삼는 철학과 길을 함께 가는 동시에 철학에 표상을 해체할 단초를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계열들의 분산, 원환들의 탈중심화, 혼돈을 긍정하는 카오스모스’로 특징지어지는 현대 예술이야말로 재현의 세계에 반하는 시뮬라크르들의 세계를 근거지으며, 차이를 결코 동일성으로 수렴시키는 법 없이 ‘차이가 차이지으면서 나아가는 차이’임을 우리 앞에 드러내 보여준다. 예술은 일상적인 감각을 비틀고 새로운 감각을 창조함으로써 우리의 천편일률적인 감각으로는 경험될 수 없는 차이를 드러내게 한다는 점에서 ‘감각의 교육학’으로서 새로운 위상을 부여받는다. 그런데 이렇듯 예술이 감각의 교육학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갖는 것은 바로 들뢰즈의 초월적 경험론이 가진 고유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따라서 본문의 첫 장에서는 ‘초월적 경험론’이라는 말로 요약되는 들뢰즈의 철학적 기획을 전반적으로 이해하고 그 기획의 고유성으로 말미암아 그의 철학에서 예술과의 만남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지 살펴본다. 초월적 경험으로서 차이는 지극히 표준화된 일상의 세계에서는 소멸되는 경향을 가지므로 무엇보다 감각의 교육학으로서 예술이 필수적이다. 들뢰즈 철학에서 예술이 가진 중요성을 확인한 이후에 본문의 두 번째 장에서는 본격적으로 예술이 결코 현실 세계를 재현하거나 모방하는 일이 아님을 들뢰즈의 회화 연구와 더불어 입증한다. 『프란시스 베이컨 : 감각의 논리』(1981)와 『철학이란 무엇인가』(1991)의 논의를 통해 들뢰즈는 회화가 결코 모방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그것이 작가, 세계, 재료에도 귀속되지 않는 순수한 감각을 그리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듯 예술을 감각 존재로 설명하는 그의 시도는 화가의 작업을 우연적인 터치들과 돌발적인 표시들에 맡기면서 지성의 논리와는 상반되는 감각의 논리를 증언하는 일로 주장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그러나 철학과 예술의 상하관계를 전복시키려는 들뢰즈의 생각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예술이 진리를 창조한다는 주장으로까지 확장된다. 철학에만 특권적이라고 여겨졌던 진리를 예술에 결부시키는 작업은 들뢰즈가 영화에 관해 남긴 방대한 두 권의 연구서인 『시네마Ⅰ』(1983), 『시네마Ⅱ』(1985)를 통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본문의 세 번째 장에서는 들뢰즈의 시네마 연구와 더불어 예술과 진리의 문제를 살펴본다. 들뢰즈는 자신만의 독특한 시간이해와 더불어 진리 개념을 쇄신하고 영화가 창조하는 거짓의 상이한 변형들로 하여금 종래의 무시간적인 진리를 대체하게 한다. 들뢰즈적인 의미에서 진리는 매번 새롭게 창조되는 생성과 관련이 있으며, 이때 생성은 곧 예술이 가진 거짓의 역량이다. 이렇듯 들뢰즈의 초월적 경험론에서 예술은 감각의 교육학, 감각의 논리학, 진리의 생성으로 역할하며, 이에 그 중요한 위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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