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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 관료’ 허적의 국정운영과 그 성격

The Operation of State Affairs by ‘Active Government official’ Heo Jeok and the Characteristics

초록/요약

본 연구는 정쟁이 심하던 17세기 중․후반 정쟁에는 적극 개입하지 않고, 제시된 이념의 현실화에 힘쓰던 관료인 허적에 주목하였다.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정치 관료’와는 구분하기 위해 ‘실무 관료’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여기서 ‘실무 관료’는 ‘어떤 분야에서 직접 활동하는 전문가’라고 파악하고 허적을 살펴보았다. 『조선왕조실록』에서 허적을 평가한 사관들의 기록을 보면, 공통적으로 능력이 있다는 점을 꼽고 있다. 본고에서는 그 뛰어난 능력을 구체적으로 찾아보고, 그 분야에서 전문가로 활동한 내용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입관이전 청은 조선에서 대명 전투를 위한 군사와 군량을 요구했다. 조선 조정에서는 평안도 관찰사에게 그 임무를 겸임하게 하였다. 금주위 전투를 전후하여 평안도 관찰사로 정태화가 재임했는데, 당시 허적을 도사로 임명하여 실무를 담당하게 하였다. 이를 통해 조정으로부터 군량 수송 업무에서 실무적인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조선조정은 전란을 수습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하였다. 백성들의 세금 부담을 줄이고 국고를 채우기 위한 정책이 많았다. 이런 방책으로 공납제가 현물수취체제에서 쌀, 포로 수취하는 대동법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그리고 납부하는 방법을 늘리기 위해 상평통보가 주조되었다. 허적은 두 제도에 대해 지속적인 반대 의견을 표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방관으로 있으면서 이런 대동법과 상평통보의 실무를 집행하였다. 내직으로 와서는 호조를 담당하여 두 제도에 관여하게 되었다. 청은 명과 달리 대조선외교에서 매우 강압적인 태도를 보였다. 당시 외교를 담당하던 이들은 실무적인 전문성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대청외교의 전문가로 인정받던 사람은 정태화이다. 허적은 군수를 담당하기 위한 업무부터 외교까지 정태화와 함께 움직이는 모습을 보인다. 현종 대에는 허적도 청인들에 대한 대응을 잘해 대청외교의 전문성을 인정받는다. 하지만 ‘안추원 사건’의 대응으로 외교에 대한 전문가로서의 평가를 상실하였다. 이후 청에 대해서는 정보의 수집과 분석을 통해 방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서인과 남인의 심각한 정쟁이 벌어지던 현종 말 ~ 숙종 초에는 남인의 영수이자 영의정으로서 국정을 운영하게 된다. 그의 국정운영 방식은 정쟁을 주관하는 이들과는 달리, 현실적이고 온건한 입장에서 진행된다. 그래서 주로 사회 정책을 입안했던 윤휴의 정책을 현실성에 맞추어 조정하고, 시행지역을 한정하여 시험해 보는 등의 방법으로 고삐를 잡았다. 위에서 본 허적의 행보는 이론적인 부분보다 실무적인 부분에 맞추어져 있다. 당시 각 정파에서 제반 정책을 입안하는 이론가인 송시열이나 윤휴에 비해 강렬한 인상은 주지 못한다. 그러나 실무가로서 이론가들인 내놓은 정책에 대해 조율하고 시행하는 모습이 보인다. 다만 매우 온건하여 시행의 속도가 느렸다. 그가 행한 정책들을 보면 시행 후에 고쳐나가는 방식을 지양하였다. 그리고 시범운영이나 현실에 맞춘 구상을 통해 큰 이득을 보기보다 폐단이 생기지 않게 하는 방어적인 개혁을 추구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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