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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시의 나르시스적 주체와 자유주의 이데올로기 연구

A study on narcissistic subject and liberalism ideology in Kim Su-young’s poem

초록/요약

본고는 김수영(金洙暎)의 시를 자유주의와 나르시시즘에 관련하여 고찰함으로써 시적 주체의 성격을 총체적으로 규명하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본고에서는 이스토프가 제시한 사회적 판타지의 입장에서 김수영의 시를 분석했는데 텍스트에 드러난 형식적 특성을 추적하여 사회적 이데올로기와 무의식적 판타지가 상호 교섭하는 양상을 고찰하는 방식으로 논의를 전개했다. 본고에서는 김수영의 시를 통시적으로 고찰하기 위해 시형(詩形)의 변화에 따라 초기, 중기, 후기의 3 시기로 구분하고 초기와 후기는 각각 이분(二分)하여 전체 5 시기로 세분하여 분석했다. Ⅱ장에서는 김수영 초기시에 드러난 사회적 판타지를 살펴보았다. 형식적 특성으로는 모더니즘에 기반을 둔 병치 기법이 부각되었다. 이데올로기적 기의는 자유주의에 터한 근대적 주체의 정립과 결부되며 이를 반영하여 김수영이 추구했던 주체는 개인의 자족성과 자율성을 강조하는 성격을 지녔다. 판타지적 기의는 완전하고 자족적인 주체, 곧 초월적 주체를 추구하는 경향이 도드라졌다. 그런데 초월적 주체의 출현은 자유주의와 연관을 맺고 있다. 자유주의의 토대인 개인이 주체의 사유 행위를 통해 자기동일성, 자기중심성을 형성하며 작동되듯 초월적 주체는 타자를 배제하고 절대성을 추구하는 자신에 매료되는 성향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러한 면에서 초월적 주체는 나르시시즘적이다. 그런데 주체는 원래 분열되고 결여된 존재이다. 불안정한 초월적 주체의 판타지는 서구적 근대라는 타자에 자신의 존재근거를 묻는 히스테리증자, 전후의 상실감 속에서 발생한 우울증의 양상으로 그 허약성을 드러냈다. Ⅲ장에서는 김수영의 중기시에 나타난 사회적 판타지를 살펴보았다. 형식적 측면에서는 투명한 문체가 도드라지게 사용되었다. 이데올로기적 기의는 4 ‧ 19 혁명을 무대로 민주주의의 쟁취를 통한 자유주의 구현을 대의로 혁명에 헌신하는 강력한 주체를 드러냈으며 이를 반영하여 판타지적 기의는 초월적 주체의 변이형(變異形)인 오이디푸스적 주체를 투영했다. 혁명은 기존의 상징계를 파괴하고 또 다른 상징계를 구축하는 행위이며 이는 폭력적이고 남성적인 힘의 원리에 의해 작동한다. 따라서 혁명 상황에서 김수영의 시가 보여주는 산문에 가까운 문체적 특징은 그의 자아가 세계를 무대로 본격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단계, 곧 사회적 장면에서 재현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표상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양상은 토템향연과 마키아벨리즘을 특징으로 텍스트에서 구체화되었다. Ⅳ장에서는 김수영 후기시의 사회적 판타지를 살펴보았다. 형식적 측면에서는 김수영 후기시의 특징인 반(反)투명한 문체가 부각되어 나타났다. 이데올로기적 기의는 4 ․ 19 혁명이 좌초되고 생활을 무대로 국가주의가 틈입하면서 전개되는 미시적 권력 체계, 곧 순응주의와 물신주의에 저항하는 양상에서 구현되는데 국가주의에 맞서 개인의 가치를 보존하려 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자유주의와 결부된다. 판타지적 기의는 위협에 직면한 주체가 타자를 배제함으로써 오히려 주체를 은폐, 강화하는 과정을 드러내는데 그것이 극단적인 경우에 이르렀을 때는 강박증적 주체가 발생했다. 강박증은 자기 부정과 타자 배제 그리고 여성에 대한 적대를 특징으로 하며 그것의 이면에는 국가주의에 의해 타자로 매몰된 허약한 남성 주체의 위상이 존재했다. Ⅴ장에서는 김수영 후기시에서 강박증적 경향과 혼재(混在)되어 나타나는 또 다른 경향의 사회적 판타지를 살펴보았다. 저항적 자유주의와 그 이면에서 작동하는 사회적 나르시시즘은 강박증적 주체가 지닌 타자 배제, 자기 폐쇄의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전망으로 기능했다. 그것은 주체의 초월성으로부터 탈피하여 결여를 인정하고 타자와 타자의 욕망을 수용하려는 시도로 전개되었으며 단독자로서 초월성을 주장하는 근대적 주체, 곧 나르시스적 주체의 한계를 극복하는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그런데 타자와 타자의 욕망을 포용하면서 나르시스적 주체의 입장에서는 이제껏 포착할 수 없었던 새로운 영역이 개방된다. 그것은 이질적이며 비가시적인 성격을 띤 타자성의 핵심에 해당하는 것으로 들뢰즈의 용어로 잠재성에 상응한다.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역사는 타자들로 넘쳐나는 잠재성의 영역으로 재해석되며 지엽적이고 특수한 시대 현실에서 벗어나 초역사라는 보편성과 잠재성의 무대로 시야를 확장할 수 있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김수영의 시는 자유주의를 한 축으로 하는 이데올로기적 측면과 나르시시즘을 또 다른 한 축으로 하는 판타지적 측면이 결합된 사회적 판타지를 구성한다. 또한 김수영 텍스트에서 주체는 서구적 근대와 자신에 종속된 나르시스적 주체에서 탈피하여 이질적인 타자를 수용함으로써 확장된 주체, 곧 서로주체의 생성을 가능하게 했다. 그런데 ‘나’를 극복하고 보다 큰 ‘나’를 지향한다는 측면에서 그는 여전히 나르시스적 주체이다. 그러나 나르시시즘 없이는 자신에 대한 사랑도 타자에 대한 사랑도 불가능하다. 문제는 나르시시즘이 아니라 그것의 작동 방식이다. 김수영은 변방인의 결핍과 결여를 온몸으로 밀고나갔으며 상처의 흔적 속에서 타자로서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타자와 더불어 타자로서의 삶을 수락하는 것, 그것이 김수영의 미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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