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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시의 비재현적 이미지 연구

초록/요약

본 연구는 기형도 시에 나타난 ‘비재현(非再現)’적 이미지를 고찰하여, 그것의 ‘소수 문학 ’적 실천의 정치적 함의를 밝히고자 한다. ‘재현representation’은 어떤 특정한 국가나 민족, 인물의 ‘동일성(同一性)’의 우위를 가정한다. 그래서 ‘재현’은 정치나 문학에서나 특정한 동일성을 지닌 대상을 중심으로 위계화되는 체제라 할 수 있다. 재현은 다수적인 정치와 문학이라는 점에서 유사한 체제라 할 수 있다. 우선 재현은 재현의 중심이 될 특정 계급, 인물, 언어와 같은 의식화의 거점을 가정한다. 그리고 둘째, 재현에서는 정치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경계를 유지하고, 정치적인 것과 사적인 것과의 관계를 드러낸다. 셋째, 재현에서는 민중의 의식을 단일화 혹은 통합화하려고 한다. 그리고 재현은 사적인 ‘허구’나 익명적인 ‘신화’를 통해 민중이나 집단을 ‘식민화’하고자 한다. 한마디로 재현은 동일성을 지닌 계급과 인물을 중심으로 뚜렷한 메시지 즉 ‘기의’를 전달하고자 하는 정치와 문학이라 할 수 있다. 기형도가 살았던 70년대와 80년대의 파시즘적 체제는 산업화나 자본주의적 발전의 기치를 내세우며 민중들을 단일화하려고 하였다. 또한 재현 중심의 민중문학도 파시즘에 맞서는 민중을 재현하거나 민중을 혁명적으로 의식화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재현은 재현 이하의 사태 즉 ‘차이’들의 세계를 인간 중심적으로 개념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기형도의 문학은 재현 중심의 문학과 다르게 ‘소수 문학’적 실천을 추구한다. ‘소수 문학’에서 ‘민중’이 ‘결여’되어 있다. 더 이상 재현해야할 민중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거나 아직 없는 상태이다. 따라서 소수 문학 작가의 정치적 책임은 ‘새로운 민중’을 창안하는 것이다. 그리고 ‘소수 문학’에서는 사적인 문제가 곧 정치적인 문제가 된다. 소수 문학의 작가는 민중을 재현하기 보다는 민중의 ‘기아’, ‘갈증’, ‘성욕’, ‘권력’, ‘죽음’ 등의 현재 사회의 충동 상태를 드러낸다. 그리고 이런 조건들 속에서 민중들이 살아갈 수 없는 불가능성을 드러내려 한다. 동시에 소수 문학은 다수집단이 만들어낸 ‘신화’나 ‘허구’를 해체하고, ‘시뮬라크르simulacres’를 생산한다. 기형도의 시에서 나타나는 ‘소수 문학’적 실천은 민족주의, 자본주의의 논리에 내재된 파시즘적인 남성중심주의, 가부장주의, 전체주의 등과 같은 거짓 신화를 폭로하고 해체한다. 동시에 기형도의 문학은 허상들을 창안한다. 기형도가 만들어낸 ‘허상’의 세계는 인간의 의식을 중심으로 개념화된 이미지의 세계가 아니라 유동하는 생성becomming(生成)의 세계 즉 ‘차이’의 세계를 ‘비인간적인 시각’으로 종합한 것들이다. 즉 ‘비재현적 이미지’는 인간의 의식으로 개념화되기 이전의 세계 즉 ‘이것임’의 세계를 비인간중심적으로 몽타주화한 이미지라 할 수 있다. 비재현적 이미지들의 특징은 재현적 이미지들처럼 개념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통해 생성하는 세계를 읽게 하고, 보게 한다. 이미지를 통해 실재를 읽게 하고, 사유에 충격을 주는 것이 기형도 시에 나타난 비재현적 이미지들의 세계라 할 수 있다. 이를 논증하기 위해 Ⅱ장에서는 ‘운동-이미지’를 고찰하였다. ‘운동-이미지’ 중 ‘행동-이미지’에서는 ‘카오스’로부터 생겨난 코스모스적인 ‘환경’과 개별화된 인물들 간의 작용과 반작용을 통해 구성되어지는 유기적인 이미지들이다. 기형도 시에서 민중의 ‘행동-이미지’에서는 자본주의적인 탈영토화로 인해 민중들의 욕망의 단순화, 분열자의 타자화, 민중의 부르주아지화 등이 나타난다. 또한 자본주의로의 탈영토화는 ‘통제사회’로 재영토화된다. ‘통제사회’는 명령 메커니즘들이 민주적이지만, 더욱 정신과 신체에 퍼져있는 자본주의 사회라 할 수 있다. 기형도 시에서 자본주의의 확산은 국가권력에 의한 ‘파시즘’으로 동원되고, 민중들 사이에 ‘미시-파시즘’을 전염시킨다. ‘파시즘’과 ‘미시-파시즘’은 자신들의 획일적 체제에서 벗어나는 타자들을 ‘희생양’으로 배제하면서 유지되는 체제이다. 기형도 시의 ‘행동-이미지’는 민중이 혁명적 세력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이 결여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운동-이미지’ 중 ‘충동-이미지’는 ‘근원적 세계’/ ‘원초적 충동’, 그리고 ‘징후/우상 또는 물신’이라는 네 가지 쌍에서 발전하는 이미지이다. ‘행동-이미지’가 코스모스적인 ‘환경’에서 나타나는 이미지라면, '충동-이미지'의 ‘근원적 세계’는 비정형적인 세계인 ‘카오스’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이미지이다. ‘충동-이미지’의 ‘근원적 세계’는 실제적 환경의 밑바닥에만 존재하면서 작용하고, 폭력과 잔혹함을 드러내는 실제적 환경에 대해 내재적인 충동의 세계이다. 기형도 시에 나타나는 ‘충동-이미지’는 파시즘적 국가에 예속화된 민중들의 충동을 보여주고 있다. 파시즘적 국가는 민중들이 ‘예속’을 욕망하도록 하면서 유지되는 체제이다. 파시즘은 ‘실업’, ‘실직’과 같은 반(反)생산을 생산하면서 민중들이 ‘죽음’을 욕망하게끔 한다. 기형도 시에서 민중들의 죽음충동은 ‘자살’과 같은 충동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민중들의 ‘동물-되기’와 ‘새-되기’와 같은 ‘충동’은 ‘기관 없는 신체’로 향하는 충동이다. 기형도 시에서 나타나는 ‘충동-이미지’는 자본주의적 욕망으로 유기화된 신체들이 욕망하는 기계들l에 대한 반발로 ‘기관 없는 신체’로 향하는 충동이다. 반면에 기형도 시에서 ‘소리’에 대한 충동과 ‘시적 주체’에게서 나타나는 ‘충동-이미지’는 자본주의적 권력과 욕망에 고착화된 ‘유기체’와 ‘자아’를 해체하는 탈유기체화의 충동이다. 기형도 시에서 ‘소리’는 인간이라는 유기체를 가득 채운 모든 물질적 질료들을 탈물질화하는 역량(힘)이며, 자본주의의 영토에서 탈유기체화, 탈주체화, 탈자아화하는 강도 높은 탈주에 대한 욕망이라 할 수 있다. Ⅲ 장에서는 총체성이 사라지고, 재현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시간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시간-이미지’를 다루었다. ‘시간-이미지’는 순수한 ‘시지각적 상황’에서 나타나는 이미지이다. 순수한 ‘시지각적 상황’은 주체의 재현 능력을 넘어는 칸트의 ‘숭고’와 같은 상황이다. 이런 ‘시지각적 상황’에서 시간은 경첩에서 빠져나온다. 기형도 시에서 유년 시절의 이미지들은 운명의 분기점을 가리키는 ‘회상-이미지’이다. 시간의 분기(分岐) 지점은 사후에 혹은 어떤 특정한 사건 때문에 일어나는 ‘주의 깊은 재인(인식)’에 의해 회상된다. 기형도의 유년시절에 대한 ‘회상-이미지’는 자본주의적 욕망에 포획되기 시작한 운명의 분기 지점이다. ‘결정체-이미지’는 현재와 과거, 현재와 미래 ‘시간의 분열’을 보여주는 이미지이다. ‘결정체-이미지’에서 시간은 하나는 미래로 비약하고 다른 하나는 과거로 침잠하는 이질적인 두 방향으로 현재를 이중화한다. 기형도의 시에서 아버지와 민중의 결정체-이미지는 파시즘적인 자본주의 체제가 과거와 현재, 미래에 반복될 것임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형도의 시에 나타나는 노동자, 지식인, 시인들의 허상들은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동일성과 획일성에서 벗어나는 ‘차이’와 ‘다양성’의 세계를 지향한다. 기형도가 만들어낸 ‘허상’의 세계는 ‘유목적 노모스’의 세계이다. 그 세계는 자본주의나 파시즘에 의해 미리 배당되는 ‘계급’이나 타자를 구속하는 ‘법’이 없는 ‘유목적 분배’의 세계이자 ‘무정부’ 상태의 세계이다. 그리고 그 세계는 획일화된 자본주의적 욕망에서 탈주하여 ‘비(非)인간화’ 혹은 ‘탈(脫)인간화’되면 만들 수 있는 세계이다. 기형도는 이러한 세계를 만들기 위한 실천적 대안으로 ‘영원회귀’와 ‘타자-되기’의 윤리학을 제시한다. ‘영원회귀’는 자본주의적 권력과 욕망이라는 동일한 것의 반복을 강요하는 억압적 사회에서 탈주하여 도래할 미래의 상(象)과 희망의 계시를 전하는 사상이다. 기형도 시에서 ‘영원회귀’와 ‘타자-되기’는 민중들 간의 연대와 변신의 힘으로 자본주의적 욕망과 권력에서 탈주하여 자본주의적 영토를 무한한 탈영토화의 과정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역량이다. 그것이 기형도가 지향했던 ‘도래할 민중’들의 세계를 구현하는 실천적 윤리학이다. 이와 같이 기형도 시에서 살펴볼 수 있었던 비재현적 이미지들에 관한 연구는 메시지를 통해 민중들을 의식화하려 하지 않았던 다른 시인들의 연구에도 기여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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