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泠齋) 유득공(柳得恭)의 세계인식 연구
- 주제(키워드) 영재 유득공 , 세계인식 , 지리명물학 , 경세 사상 , 청제국 , 한자문화권 내외 , 서양
- 발행기관 서강대학교 일반대학원
- 지도교수 김대중
- 발행년도 2017
- 학위수여년월 2017. 8
- 학위명 석사
- 학과 및 전공 일반대학원 국어국문학과
- 실제URI http://www.dcollection.net/handler/sogang/000000062162
- 본문언어 한국어
- 저작권 서강대학교 논문은 저작권보호를 받습니다.
초록/요약
이 논문은 영재 유득공의 외국 관련 저서 『열하기행시주』, 『연대재유록』, 『병세집』, 『고운당필기』와 『영재집』을 중심으로 영재의 세계인식을 고찰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분석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연구방법을 취한다. 첫째, 신청사(新淸史)의 시각에 입각하여 청제국을 만ㆍ몽ㆍ한 삼중 구조로 파악하여, 만ㆍ몽ㆍ한에 대한 영재의 인식을 분석하는 것이다. 둘째, 문명권의 동질성과 차별성을 고려하여 청제국 주변부 나라를 한자문화권 내외로 나누어 영재의 동아시아 인식을 분석하는 것이다. 셋째, 경세적 시각에서 영국과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영재의 서양인식을 분석하는 것이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영재 세계인식의 형성 배경을 살펴본다.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안정화, 영재의 다양한 교유 관계 및 연행 경험 등을 고찰한다. 청제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동아시아 국제질서는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안정적인 국면 속에도 부정부패, 반란, 해적 등과 같은 불안적인 요소도 숨겨져 있었다. 즉, 청제국을 중심으로 이룬 안정적인 동아시아 국제질서는 또한 안정과 불안이라는 이중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는 질서이다. 또한 당시의 세계는 더 이상 독립적인 것이 아니었고, 특히 18세기 후반기에 들어가면서 동ㆍ서 간의 문화, 경제적 교류가 더욱 활발해졌다. 이것은 영재가 외국 정보를 살펴보는 데 유리한 환경을 제공하였다. 다음으로 영재의 폭넓은 지적 교유경위를 고찰하여 영재가 당시 청제국 문인지식인의 시문과 학문 성취, 일본의 시문 수준과 국토풍속, 서양 관련 정보 등을 많이 얻은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영재의 연행 체험 경위를 살펴보았다. 영재는 세 차례 중국 사행을 통해 『읍루여필』, 『열하기행시주』, 『연대재유록』 등 연행록을 엮었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만ㆍ몽ㆍ한을 중심으로 청제국의 문화와 통치 질서 두 측면에 입각하여 영재의 청제국 인식을 고찰한다. 우선 문화적인 측면에서 만ㆍ몽의 문화와 한족지식인의 시문이라는 두 부분을 중심으로 영재의 대만인식(對滿認識), 대몽인식(對蒙認識), 그리고 대한인식(對漢認識)을 살펴보았다. 영재는 비교적 우호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로 만ㆍ몽ㆍ한의 문학 실상을 관찰하였고, 특히 만주족 문학을 고찰할 때 박지원을 비롯한 다른 조선지식인들과 달리 만주의 문학 수준을 높이 평가하였다. 또한 언어에 대한 영재의 인식은 역시 경세적 언어관에 입각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영재는 만ㆍ몽의 풍속을 살펴볼 때 지리명물학의 시각에서 출발하여 인식하였다. 또한 정치적인 측면에서 만ㆍ몽ㆍ한 상호 관계에 입각하여 영재의 청조 통치 질서 인식을 살펴본다. 그 중에서 만주통치자의 대몽 태도와 몽고족의 대만 태도, 그리고 만주 통치의 내부질서 등을 중점적으로 고찰하였다. 영재가 청제국 주체로서의 만ㆍ몽ㆍ한 상호간의 관계를 상세하게 관찰한 동기는 조선을 지키려는 그의 경세사상에 기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다음으로 영재의 한자문화권 내외 인식과 각 인식 차이를 살펴본다. 우선 한자문화권 내에서는 주로 일본, 안남, 유구를 중심으로 한 영재의 동아시아 인식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일본에 대해서는 시문학 수준과 언어 측면에 대한 인식, 안남에 대해서는 시문학과 정치, 그리고 유구에 대해서는 시문학, 언어, 정치, 풍속 등 여러 측면을 살펴보아 인식한 것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한자문화권 외에서는 주로 회회, 면전과 남장을 나누어 영재 한자문화권 외의 동아시아 인식을 고찰한다. 영재는 회회에 대해서는 주로 시각적(視覺的)인 측면, 정치적인 측면과 언어적인 측면 세 가지 차원에서 회회를 인식하였다. 면전과 남장에 관해서는 영재는 주로 시각적인 인식에만 그친다. 한자문화권 내외에 대한 영재의 인식 차이를 살펴봄으로써 도출되는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영재가 청제국 주변부의 모든 나라에 대해서 조선중화주의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재는 한자문화권 내의 나라에 대해 일정한 문화적인 동질감과 동문인식(同文認識)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셋째, 영재는 한자문화권 내외에 대한 인식 차원과 인식 범위가 다르다. 한자문화권 내에 대한 인식은 영재의 경세사상과 시문학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인 반면, 한자문화권 외 나라에 대한 인식은 영재의 지리명물학 사상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끝으로 박물학적 호기심과 중상주의적 문견 두 측면에서 영재의 서양인식을 살펴본다. 영재의 서양인식은 그의 지리명물학과 경세사상에서 출발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경세사상의 바탕에서 서양을 적극적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더욱 높다. 이것은 영재가 서양의 선제, 군사장비 조총, 네덜란드의 해외무역 운영 방식을 중점적으로 논술한데서 추정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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