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 소설에 나타나는 인물 분열 양상에 대한 수사학적 연구 : - 공간 분열 양상과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A rhetorical study on the character fragmentation in Choi In-Ho’s short stories: Focused on the relation with spatial division pattern
초록/요약
본고는 최인호의 중ㆍ단편 소설에서 드러나는 인물과 공간의 분열 양상에 대해 ‘더블’과 공간성ㆍ도시성의 개념을 토대로 분석하고 이를 통해 최인호의 소설이 가지고 있는 억압적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최인호의 중ㆍ단편 소설 속 두 명의 중심인물들은 서로 전혀 다른 외형을 가지면서도, 동질감을 느끼거나 과거의 기억ㆍ행위와 의식 등을 공유하는 모습을 보인다. 본고는 이와 같은 인물형이 ‘더블double’의 속성을 가지고 있음에 주목,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와 오토 랑크Otto Rank의 ‘더블’에 대한 논의를 기반으로 이 두 인물들을 각각 ‘동반자적 더블’과 ‘적대적 더블’의 형태로 분류하였다. 이때 ‘동반자적 더블’과 ‘적대적 더블’은 오토 랑크가 더블 이미지를 시대적으로 구분한 ‘원시적 더블’과 ‘현대적 더블’에 대한 분류에서 착안한 것이다. 오토 랑크에 따르면 원시적 더블은, 자신이 아닌 다른 대상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며 이를 통해 자신의 불멸을 확신한다. 하지만 현대적 더블은 자신과 닮았음에도 그 대상이 자신과 다른 존재라는 확신 속에서 섬뜩함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본고에서는 원시적 더블이 가진 우호적 특성이 강조되는 경우를 동반자적 더블, 현대적 더블의 적대적 특성이 강조되는 경우를 적대적 더블이라 명명하였다. ‘더블이미지’의 등장과 더불어 최인호 소설의 특징적인 면은, 공간의 분열이 더블 이미지를 형성하는 두 인물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점이다. 오토 프리드리히 볼노Otto Friedrich Bollnow, 유리 미하일로비치 로트만Juri M. Lotman, 미첼 토마쇼Mitchell Thomashow 등에 의해 진행되어온 공간성 연구에서는 공간이 가장 근본적으로 인간의 행위, 체험과 관련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으로 분리된다는 것이 전제된다. 이때 더블이미지가 등장하는 최인호의 소설 중 적대적 더블이 등장하는 텍스트의 경우 내부 공간에 이 적대적 더블이 공존하게 되면서 더블이미지의 인물들이 상대에 대해 느끼는 공포감이 강조된다. 반면 동반자적 더블이 등장하는 텍스트의 경우, 이들은 내부공간에서는 적대적 더블과 달리 평화롭게 공존하지만 외부공간에서는 외부공간적 질서의 억압으로 인해 서로 다른 태도를 보이게 된다. 하지만 더블이미지가 등장하는 여러 텍스트들의 결말은 모두 한쪽 더블의 소멸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에 본고의 Ⅱ장에서는 최인호의 텍스트들 중 서로 적대적 감정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부공간에 함께 머무르게 되는, 그리고 이로 인해 상대방에 대한 언캐니를 느끼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텍스트들을 대상으로 ‘적대적 더블’과 내부공간의 결합 양상에 대해 분석하였다. 이에 해당하는 텍스트는 「무너지지 않는 집」, 「모범동화」, 「타인의 방」, 「처세술개론」, 「개미의 탑」, 「돌의 초상」 등이 있다. 이 텍스트들에서 ‘적대적 더블’ 이미지를 형성하는 두 대상은 외형적으로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으며 이렇게 서로 전혀 다른 모습을 한 더블은, 외부공간에서는 서로의 존재를 모르거나, 알더라도 특별한 관계를 형성하지 않지만 내부공간에 함께 존재하게 되면서 갈등을 빚는다. 화자는 내부공간에서 자신의 더블과 마주하면서, 자신과 전혀 다른 외형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기괴함을 느낀다. 이뿐 아니라 적대적 더블이 내부공간에 공존하면서, 화자의 내부공간은 그만의 사적 공간으로서의 안정성을 잃게 된다. 이는 화자로 하여금 상대에 대한 공포와 기괴함을 더욱 키우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도시적 내부공간은 외부공간과 완벽히 분리된 듯 하면서도 도시적 문물들로 인해 외부공간적 요소들이 소유자의 허가 없이 침입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로 인해 개인의 사적 질서 하에 있을 때, 비로소 외부공간과 대비되는 개인적 정체성 형성을 가능케 하는 내부공간의 기능은 불완전해진다. 이 과정에서 주체가 경험하는 환상은 주체가 느끼던 언캐니를 더욱 강화한다. 비현실적 요소들은 모두 화자의 불안과 공포를 강화하며, 적대적 더블 중 한쪽이 소멸되는 결말은 내부공간을 지키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반영이라 할 수 있다. Ⅲ장에서 다룰 「침묵의 소리」, 「미개인」, 「무서운 복수」, 「전쟁우화」, 「두레박을 올려라」, 「깊고 푸른 밤」에서도 한쪽 더블의 소멸이라는 결말은 동일하게 반복되어 나타난다. 하지만 이 텍스트들에서 더블이이미지를 형성하는 인물들은 Ⅱ장에서 다룬 텍스트들 속 인물들과는 달리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기괴함을 기반으로 하는 현대적 더블, 즉 적대적 더블과는 다른 동반자적 더블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동반자적 더블이미지를 형성하는 인물들은 서로 이질적인 외형을 가지고 있지만, 텍스트에서는 그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서로에 대한 동질감이 더욱 강조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들은 상대와 자신 사이의 차이를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에 대해 적대적 감정을 가지기보다는 상대와 함께 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들의 공존은 내부공간에서만 가능하고, 내부공간에서만 머무른다고 해서 삶을 유지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이들의 공존은 명백한 한계를 가진다. 즉 내부공간에서만 공존할 수 있는 ‘더블’의 인물들이 외부공간에서 벗어나서는 ‘삶’을 이어갈 수 없다는 역설적 구조 하에 놓여있게 되는 것이다. 이때 내부공간적 자아는 ‘환상’을 만들 수 있는 요소를 선택하여, 외부공간적 질서를 외면하고자 하며, 외부공간적/외부 저항적 자아는 외부공간적 질서에 순응하거나 외부공간적 질서에 저항하는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결국 텍스트는 적대적 더블이 등장하는 텍스트와 마찬가지로 두 자아 중 한쪽의 소멸이라는 결말에 도달한다. 즉 본고에서는 최인호의 중ㆍ단편 소설들에서 드러나는 인물과 공간의 분열에 대한 논의를 진행, 이 과정에서 기존 논의들의 한계라 할 수 있는 인물과 공간의 개별적 연구 대신 인물과 공간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해 집중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간 ‘허무주의적’ 혹은 ‘개인주의적’이며 ‘현실 도피적’ 혹은 ‘현실 타협적’이라는 비판에 갇혀 있던 최인호 소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자 했다. 소설 속에서 별개의 존재처럼 제시되는 두 인물(혹은 대상)이 내포하고 있는 더블이미지와 그들이 위치하는 공간의 분열 양상은 최인호의 소설이 ‘현실에 순응하는 자는 살아갈 수 있다’는 패배주의적 주제의식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도, 어떤 방법으로도―환상으로도― 균형적 정체성을 가질 수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문제적 현실에 대한 문학적 참여의 방식은 저항 가능성에 대한 긍정 혹은 문제에 대한 직접적 언급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최인호의 소설들은 개인의 내면과 환상 등 ‘사적 이야기’에 집중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이를 통해 오히려 억압적 현실, 즉 개인적 정체성의 형성을 억압하고, 현실 도피도 현실 저항도 할 수 없이 현실 순응적 태도만 가능한 현실에 대해 강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최인호의 소설들에 대해 ‘역설적 방식을 통한 현실 참여’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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