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

新羅 下代 僖康王의 王位繼承과 金明(閔哀王)

The Succession to the Throne of King Huigang and Kim Myeong (King Minae) in Later Silla

초록/요약

본 논문은 僖康王의 왕위계승과정과 몰락과정에 대해 재조명해보려는 목적 하에 작성되었다. 대다수의 연구자들이 희강왕의 즉위는 당시 실세였던 金明(閔哀王)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며, 희강왕은 김명이 왕으로 즉위하기 위한 발판일 뿐이었던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또한 김명이 희강왕을 살해하고 즉위한 것 역시 김명의 주도 하에 이루어진 자연스러운 수순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희강왕이 김명보다 세력이 강했을 것으로 보는 일부의 견해들은 가능성에 대한 간략한 언급 수준에 그치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 김명이 정말로 당시의 실세였다면 김명이 희강왕을 대신 왕위에 올렸을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 또한 김명의 즉위가 정말로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고 한다면 김명이 희강왕을 살해하여 자신의 왕위계승에 대한 정당성을 스스로 약화시키는 행위는 하지 않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필자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통해 희강왕의 즉위 이전, 즉위 과정, 즉위 이후 몰락에 이르는 과정에 대해 재조명하고자 한다. II장에서는 憲德·興德王代의 金悌隆(희강왕)과 김명의 행적을 파악하였다. 김제륭은 헌덕왕 14년(822)에 일어난 金憲昌의 亂을 진압했던 행적이 확인된다. 이 당시 김제륭의 관직은 기록되어있지 않아 명확하게 알 수 없으나, 관등은 波珍飡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김제륭의 가계를 검토했을 때, 그의 아버지 金憲貞은 兵部令을 역임했던 것을 확인하였다. 김명은 흥덕왕 말년에 大阿飡의 관등을 가지고 侍中에 임명되었던 기록이 확인된다. 김명의 아버지인 金忠恭은 上大等을 역임하였고, 흥덕왕 대에 태자로 임명되었다. 김제륭과 김명의 가계, 관등, 관직경력 등을 검토하였을 때, 김명과 김제륭의 세력 우열을 명확하게 가늠하기 힘들며, 적어도 김명이 김제륭을 허수아비처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실세는 아니었을 것으로 파악하였다. III장에서는 김제륭과 김명의 결탁 이유와 흥덕왕 사후 왕위쟁탈전의 전개과정에 대해 검토하였다. 신라 하대의 왕위계승은 태자 혹은 副君 임명, 왕의 유조를 통한 차기 왕위계승자 지명의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흥덕왕은 태자 김충공이 사망한 이후 새로운 태자를 책봉하지 않았고, 유조를 통해 차기 왕위계승자를 지목하지도 않았다. 이에 상대등이었던 金均貞이 스스로 왕위에 올랐고, 김명은 김제륭을 받들어 김균정과 무력충돌을 벌였다. 이 무력충돌에서 김제륭 세력이 승리하여 김제륭이 신라의 제 43대 왕으로 즉위하였다. 이 때 김명과 김제륭이 결탁한 이유는 상대등이었던 김균정 세력과 왕위쟁탈전을 벌이기 위해서는 서로의 군사력이 필요했기 때문으로 여겨지며, 김명이 김제륭을 왕으로 세운 것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김제륭을 왕으로 세우는 대신에 김제륭이 즉위한 이후에는 그에 대한 보상을 약속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IV장에서는 희강왕과 김명의 사이가 멀어지고, 김명이 결국 희강왕을 살해하고 민애왕으로 즉위한 이유에 대해 고찰하였다. 희강왕은 즉위 초 김명을 상대등으로 임명하는 등, 즉위 직후의 희강왕과 김명은 정치적 협력관계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희강왕이 김충공을 대왕이 아닌 갈문왕으로 책봉한 점, 희강왕이 왕위쟁탈전의 경쟁상대였던 김균정의 잔여세력을 포섭하는 것을 김명이 방해한 점 등의 이유로 희강왕과 김명의 사이가 멀어졌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후 당에 숙위하러 갔던 金誼靖(憲安王)이 귀국하고, 희강왕이 김의정을 등용하려는 시도에서 정치적 위기의식을 느낀 김명이 희강왕을 살해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신라 하대의 왕위쟁탈전 가운데 희강왕-민애왕-神武王으로 이어지는 시기는 세 명의 왕이 연속된 왕위쟁탈전 또는 왕위찬탈을 통해 즉위한 전무후무한 기간이다. 또한 이 시기를 거쳐 신라의 왕위는 金仁謙의 가계에서 金禮英의 가계에게로 완전히 넘어가게 되었다. 희강왕의 즉위는 신라 하대의 왕통이 바뀌는 변곡점이 시작되는 부분으로, 신라 하대의 왕위쟁탈전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재검토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본 논문이 신라 하대의 왕위쟁탈전 및 왕통 교체에 있어 보다 깊은 이해를 제공하고, 앞으로 새로운 관점에서의 접근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more

초록/요약

This paper was written for the purpose of re-examining the process of succession to the throne and the downfall of King Huigang(僖康王). The majority of researchers concluded that King Huigang's enthronement was made by the Kim Myeong(金明), and they understood that King Huigang was only a stepping stone to the King Minae(閔哀王). Also, the fact that King Huigang was murdered is understood as a fixed procedure. However, It is not clear that why Kim myeong would have placed King Huigang on Silla’s throne. Also, if Kim Myeong's enthronement was a truly fixed procedure, Kim Myeong would not have killed King Huigang. Because it harms his legitimacy himself. Through this critical mind, I would like to re-examine the process of King Huigang’s process of enthronement to downfall. In Chapter II, I have identified Kim Je-Ryung(金悌隆, King Huigang) and Kim Myeong's traces in the reign of King Heondeok and King Heungdeok. Kim Je-Ryung was participated in suppressing the rebellion of Kim Heon-Chang(金憲昌), and his office rank was Pajinchan(波珍飡). And Kim Je-Ryung’s father, Kim Heon-Jeong was military commander(兵部令). Kim Myeong was appointed to chief minister(侍中) with the office rank of Great Achan(大阿飡) in reign of King Heungdeok(興德王). Kim Chung-Gong(金忠恭), the father of Kim Myeong, was extraordinary rank one(上大等) and crown prince. When examined the lineage, office rank, and career experience of Kim Je-Ryung and Kim Myeong, it is difficult to clearly determine the power of Kim Myeong and Kim Je-Ryung. In Chapter III, the reason for the collusion of Kim Je-Ryung and Kim Myeong during succession struggle after death of King Heungdeok was examined. After death of King Heungdeok, Kim Kyun-Jeong, the extraordinary rank one, rose to the throne. Then Kim Myeong supported Kim Je-Ryung and fought with Kim Kyun-Jeong. At this time, Kim Je-Ryung and Kim Myeong conspired with each other because they needed each other's military power in order to win the succession struggle. In Chapter IV, I discussed the reason that King Huigang and Kim Myeong were separated, and that Kim Myeong killed King Huigang. At first, King Huigang and Kim Myeong was regarded as a political partnership. However, King Huigang set Kim Chung-Gong to the Galmun Wang(葛文王), not the King, Kim Myeong interfered with taking over the remaining forces of Kim Kyun-jeong. For this reason, it seems that King Huigang and Kim Myeong are separated. After that, Kim Ui-Jeong(金誼靖), came back from Tang. And Kim Myeong who felt a sense of political crisis seemed to have killed King Huigang.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