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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석 연극에 나타난 마을 공동체의 생태학적 연구 : <자전거>, <용호상박>, <갈머리>를 중심으로

초록/요약

오태석은 생명과 자연에 대한 관심을 적극적으로 작품에 도입해 온 작가이다. 또한 오태석이 실제로 살았던 시골의 작은 마을 공동체를 극적 공간의 모티브로 삼아, 반복적으로 창작 활동을 해 왔다. 본고는 <자전거>, <용호상박>, <갈머리>를 연구 대상으로 삼아, 오태석의 생태주의적 작가의식을 마을 공동체를 통해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 위의 세 작품은 집밖의 야외 공간, 즉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간을 극적 공간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오태석은 위의 세 작품에서 마을 공동체 안에서의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갈등과 내적 유대 관계를 형상화한다. 필자는 그러한 양상을 생태주의적 관점에서 살핌으로써 생태 위기의 시대에 오태석 연극이 지니는 가능성을 밝히고자 하였다. 위와 같은 목적 아래 본고는 Ⅱ, Ⅲ, Ⅳ장을 통하여 각각의 작품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우선 본고에서는 각 작품에서 형상화된 마을 공동체를 공간, 인물, 주제의 세 가지 차원에서 살펴보았다. 마을이란 각각 고유한 특징을 가진 특수한 공간이며, 인물은 그러한 공간적 조건에 맞게 마을 공동체를 형성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제는 오태석의 작가의식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인물, 공간과 더불어 분석할 필요가 있었다. <자전거>의 극적 공간인 특정 마을은 주인공인 윤서기의 시각을 통해 형상화된다. 작품에 등장하는 마을 사람들 역시 윤서기가 걸어 다님으로써 만나게 된 사람들이다. 독자 및 관객은 그러한 개인적이며 고정된 시각의 동반자가 되어 같이 <자전거>의 마을을 걸어 다니는 것이다. <자전거>에서는 다양한 종의 생태계망은 나타나지 않다. 하지만 마을이라는 공간을 하나의 생태계라고 보았을 때,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관계망은 다양한 생물들로 이루어지는 지구 규모의 생태계망의 축도라고 할 수 있다. <자전거>에 등장하는 마을 사람들은 과거 마을에서 발생한 역사적 사건으로 인해 공통된 상처를 안고 있다. 그 상처는 아픔으로만 인식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연민 의식을 가지며 함께 일어서려고 하는 힘으로 작동한다. 주인공 윤서기는 그러한 집단적 상처와 공유되지 않는 개인적 아픔을 동시에 품에 안고 있는 인물이다. 내면적으로 마을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윤서기는 그러나 모든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 존재로서 마을을 하나로 엮는 내재적 가능성을 갖고 있다. <자전거>에서 제시되는 정신적 연결고리 형성의 가능성은 나중에 다른 생명체로까지 확장되어가는 오태석의 생태주의적 연민의식의 원형을 보여준다. <용호상박>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모임터를 무대 공간으로 삼아, 거기를 사람들이 왕래함으로써 마을 공동체가 형상화된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중심인물은 존재하지만, 고정된 공간은 마을 사람들과 주변 환경에 사는 동물들의 교류와 갈등을 흡수하여 다양한 관계망을 그려낸다. <용호상박>에서는 자연과 인간의 참된 관계에 대한 물음이 바로 극의 주제로서 표현된다. 역동적인 무대공간이 형상화되며, 인간과 자연을 엮는 중심인물이 나타나는데 그것이 바로 <용호상박>이 지향하는 생태계의 모습이다. 또한 범굿이라는 마을의 계절제의를 플롯에 도입함으로써 전통적 지혜가 자연과 인간을 잇는 힘으로 작동하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굿을 함께 벌이는 행위를 통해 독자 및 관객을 마을 공동체 안으로 끌어들인다. 굿을 함께 벌이는 행위는 굿의 주체가 바로 ‘우리’이며 ‘우리 마을’임을 의미한다. 공동체 의식이란 단순히 같은 마을에서 살다보면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지속적으로 구축해 나감으로써 형상화된다. 마을제의란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기 위한 고도한 지혜인 것이다. <용호상박>은 극 전체를 하나의 굿으로 만들어냄으로써 마을 공동체를 극장 전체로까지 확장시킨다. <갈머리>에서는 에피소드 형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며 장면에 따라 공간도 비약적으로 바뀐다. 또한 극의 주제를 체현하는 인물은 등장하지만, 공간 변화와 더불어 다양한 인물의 시각이 형상화된다. 즉, 비약과 틈의 미학으로 표현되는 오태석의 극작술이 활용됨으로써 마을 사람들의 다양한 살림살이가 형상화되며 마을 공동체의 모습이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또한 인물의 ‘동물-되기’가 이루어짐으로써 생태적 공간이 확대되어 가는 양상을 보인다. 극의 주제를 체현하는 순기할멈은 전통적 삶을 유지하며 연민과 공생의 의식을 가지고 마을 사람들을 감싸는 인물이다. 그러한 순기할멈의 모습은 인간의 ‘자연화’라고 할 수 있으며 생명 공동체를 체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용호상박>에서 이루어진 자연과 인간의 조화는 이제 그 이분법적 구분까지 파괴되고 하나로 융화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같이 마을 공동체 형상화에 있어서의 변화 과정을 분석함으로써 필자는 오태석의 생태주의적 작가의식이 확대되어 가며, 그것이 오태석 만의 극작술과 조화를 이루는 양상을 보았다. 또한 그것이 공간 차원에서는 다양화되고 인물 차원에서는 심층화되는 과정이 세 작품의 분석을 통해 나타났다. 나아가, 공간과 인물의 이분법적 구분을 파괴하는 시도에 의해 생명 공동체를 체현하는 인물과 무대 공간이 융화되는 양상이 이번 분석을 통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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