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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초록/요약

1945년 8월 일본, 시민들이 화창한 날씨 속에 어제와 다름없는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그 시각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미군 비밀 기지에서는 과학자들이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위협적인 폭탄을 비 행기에 싣고 있다. 그들은 가공할만한 크기의 폭탄을 싣고 이륙하 고 곧이어 폭탄이 평화로웠던 도심에 투하된다.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히로시마와 나가사 키의 하늘이 하얗게 빛나면서 시간이 멈추어 버렸다. 한 순간에 거대한 버섯구름이 파란 하늘에 뿜어 올라왔고. 대 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떤 상황인지도 알지 못한 채 일상을 준비하던 사람들은 한줌 재처럼 사라져버렸다. 원자폭탄이 투하되 고 도시 전체는 잿더미로 변화되었고 약 7,4000명의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들도 방사능에 피폭 되었고 그들은 피폭자라는 이름으로 남은 생애를 고통 속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들도 피폭되었고 그들은 피폭자라는 이름으 로 남은 생애를 고통 속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들도 방사능 에 피폭되었고 고통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두 번째 원자폭탄이 나가사키에 투하되고 6일 후인 8월 15일, 수많은 사상자를 남기고 일본은 마침내 완전한 항복을 하고 제2차 세계대전은 종전되었다.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약 70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날 이후, 일 본은 전쟁의 아픔과 상처를 잊지 않기 위해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그때를 기억하고 있다. 원자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평화 공원이 조성되고 가장 끔찍했던 그곳은 평화의 공간으로 변화하였으며 그들만의 방법으로 그날의 아픔과 상처를 기억하고 있다. 또한 현재까지도 일본은 국가에서 피해자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그날의 아픔과 상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원자폭탄 투하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일본사람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원자폭탄으로 사망한 사람들 중 약 10%에 해당하는 7만 명은 조선인이었다. 당시 일본에 의해 강제징용으로 끌려 갔거나 생계를 위해 일본에 거주하였던 조선인들이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고 타국에서 목숨을 잃었다. 원폭으로 피해가 세계에서 두 번 째로 많은 나라가 된 한국이지만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고 있지 않으며 그들의 존재도 모르고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살아남 은 한국인들은 피폭자가 되어 육체적인 고통은 물론 사회적 편견 을 받으며 오늘날에도 힘들게 살아가고 있으며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피해와 보상과 대하여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경상남도 합천에는 원자폭탄으로 인하여 피폭되어 고생하고 있는 1세대 피해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대부분 모여살고 있다. 또 한 피폭된 1세대 환우들을 위한 복지회관도 운영되고 있다. 그들 은 항상 우리들에게 전쟁의 위험성과 피폭에 대한 고통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의 외치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 들어줘야 한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혹은 모르고 있었던 원자폭탄 피해자의 삶들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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