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

케틀러 주교가 레오 13세의 사회교리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에 미친 영향

초록/요약

영국에서 발생한 산업혁명과 1789년 프랑스혁명을 거치면서 유럽 사회는 문화, 과학, 정치 및 사회적 움직임 등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 노동운동과 노동조합을 결성하기 시작했고 교회에 해결책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교회는 새로운 해결책을 가지지 못했고 오히려 유럽에서 널리 퍼진 혁명을 방어하기 급급하였다. 18·19세기 교회는 시대의 요청으로 가난한 이와 노동자들을 빈곤과 억압에로 이끄는 사회구조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하였고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와 그들의 빈곤에 대한 저항, 가난의 문제에 관한 입장을 밝힌다. 교회는 사회적 관심을 1891년에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에서 발표한다. 이 회칙에 큰 영향을 끼친 선구자는 독일 마인츠의 케틀러 주교이다. 케틀러 주교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론을 수용하여 그 시대에 적용하고 발전시켰다. 가톨릭 사회원리를 법률에 반영시켜 노동자를 보호하고 그들의 생활조건과 인권을 신장시키며, 그들에게 도움이 될 사회개혁을 제시한다. 케틀러 주교는 그가 수용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론에 따라 사유재산에 대한 인정과 재화의 이용을 주장한다. 국가는 공동선의 원칙에 따라서 개인들을 보살펴 줄 의무가 있으며 개인의 자아실현을 위해 개입할 수 있다고 보았지만 국가의 개입에는 한도를 주어서 개인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없다고 주창하였다. 그의 주장은 ‘보조성의 원리’로 불리게 되며 이후 가톨릭 사회교리의 기본원리로 자리 잡게 된다. 이러한 케틀러 주교의 견해가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에서 보인다. 교황의 견해를 회칙에서 보면 토마스 아퀴나스의 의견에 따라 사유재산권을 인정한다. 산업혁명 후의 노동자들이 맺는 자유 계약에 대해 의문을 표하면서 노동자의 임금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적정임금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황은 노동의 가치를 중시하며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노동조합을 강조하면서 결성과 가입은 인간의 기본권이라고 주장한다. 국가의 역할은 국방이나 사회질서의 유지에 국한시키지 않고 공동선의 조성과 유지 그리고 사회 정의의 실현으로 확대시킨다. 그리고 국가는 개인이나 단체가 하지 못한 일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견해를 회칙에 적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비참한 노동자들의 삶과 사회문제들을 개선하고자 노력한 케틀러 주교의 견해들은 같은 시대를 살았던 교황 레오 13세가 회칙 『새로운 사태』를 발표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으로 사료된다.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