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직후 재일조선인의 경제활동 : 1945~1950년 암시장을 중심으로
A Study on the Economic Activities of the Koreans in Japan after Liberation
- 주제(키워드) 재일조선인 , 해방직후 생활 , 암시장 , 밀조주 , 조선인 단속 , 전후 치안 , 패전 책임의 회피 , 재일산업 , Koreans in Japan , daily life right after the liberation , the Black Markets , bootlegs , crackdown , public safety , evasion of responsibility of defeat , Zainichi business , 在日朝鮮人、解放直後の生活、闇市、密造酒、朝鮮人取締、戦後治安、敗戦責任の回避、在日産業
- 발행기관 서강대학교 일반대학원
- 지도교수 최기영
- 발행년도 2016
- 학위수여년월 2016. 8
- 학위명 박사
- 학과 및 전공 일반대학원 사학과
- 실제URI http://www.dcollection.net/handler/sogang/000000060010
- 본문언어 한국어
- 저작권 서강대학교 논문은 저작권보호를 받습니다.
초록/요약
본 논문은 해방 직후, 일본에 잔류한 재일조선인의 제반 경제활동을 1945~1950년 사이 존속했던 암시장과 관련해 고찰한 것이다. 식민지라는 환경은 중국, 노령, 일본, 그 외 구미 지역으로 유사 이래 최대의 조선인 해외 유출을 야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도일 인구는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다가 1920년대 이후에는 재일조선인의 독자적인 커뮤니티를 형성할 정도로 확대되었다. 일본의 전쟁이 확대되자 조선인은 총동원 체제에 의해 강제 동원되었고, 징용된 이들은 일본의 전시 관련 산업에 주로 투입되었다. 하지만 일본의 항복 선언으로 인해 전시 산업은 전면 해체되고, 재일조선인 대다수는 실업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귀국 의지는 강했지만 한반도의 불안정한 상황과 일본 생활 정리 문제, 귀국재산 반입 제한 등의 이유로 인해 귀국 보류, 혹은 정주 결심을 하면서 60여만 명의 재일조선인은 일본에 잔류하게 되었다. 일본은 전시 중 군수산업에 치중한 결과 수요와 공급이 불균형을 이루었고, 해외 식민지 상실, 해외동포의 대거 귀환으로 인한 인구 증가 등으로 패전 이후 경제는 큰 난관에 부딪혔다. 일본 정부가 전시기에 실시했던 통제경제는 패전 이후 점령군에 의해 지속되었다. 이러한 통제 경제 시기에 정규 경제 시스템의 외곽에서 탄생한 것이 암시장이었다. 암거래는 전시 중 암암리에 행해졌고, 패전 이후에는 와해된 유통기구를 대신하는 암시장으로 본격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해방 이전부터 일본 산업의 경제적 하층부에 머물렀던 재일조선인은 일본의 패전으로 인해 일본인들이 기피하던 말단 직업조차 얻기 힘든 상황이었다. 재일조선인은 당장의 생계를 위해 전후 일본에서 자연 발생한 암시장에서 경제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교육과 기술, 자본이 충분하지 못했던 대다수의 재일조선인은 암시장에서 단신운반업 및 행상과 노점상 등의 판매업에 종사하면서 암시장 경제의 일각을 담당했다. 그런 한편, 일본의 군수산업 해체로 인해 조선인 기술자와 일부 자산가들은 공장 인수의 기회를 획득할 수 있었다. 이들은 전후 폭발적인 수요를 보였던 민수 물자를 생산했고, 암시장을 주요 유통망으로 삼아 본격적인 상공업 진출의 기회로 삼았다. 암시장에서 거래된 몇몇 물자들은 해방 이전과는 다른 형태로 재일조선인의 특질을 반영하였다. 막걸리를 비롯한 엿과 내장류 등은 일본 사회에서는 생소한 식재료였고, 해방 이전에는 재일조선인 사회 내부에서 소비되던 물자였다. 하지만 전후 식량 부족 상황에서 암시장을 통해 이러한 식재료들이 일본 사회에 전파되었다. 이러한 암시장 경험은 재일조선인이 이후의 산업 활동을 전개하는데 주요한 전기가 되었다. 점령기가 끝나고 주권을 회복한 일본은 국적을 조건으로 내걸고 취업 제한을 두었다. 차별적 취업 상황에서 직업 선택의 자유가 없어진 재일조선인은 암시장 시기에 시작된 상공업 활동을 중심으로 직업생활을 하게 되었다. 암시장은 경제활동의 장이기도 하였지만 해방 이후 치열했던 정치활동의 이면을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하였다. 암시장은 일본의 패전에 의해 일본인이 형성한 비정상적 경제 시스템으로, 존재 자체가 불법적인 공간이었다. 불법과 탈법이 난무하고, 약육강식이 일상적인 도덕률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각종 사회 문제의 진원지로 지목받기도 했다. 패전으로 인한 사회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정치인들은 암시장 문제를 구 식민지인들에게 전가하는 언설을 유포하면서 패전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였다. 해방과 동시에 결성된 민족 단체는 귀국 사업, 재류조선인의 재산과 생명 보호를 우선 사업으로 설정하였으나 신조국 건설에 동참하려는 정치활동도 병행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점령군과 일본 사회와의 충돌, 민족 단체 내부의 노선 차이가 발생했다. 암시장은 이 시기 재일조선인 정치활동의 핵심적 사안이 아니었지만 이를 둘러싼 각종 갈등과 대응은 정치적 투쟁과 맞물리게 되었다. 정치적 노선과 별도로 암시장 활동은 대다수 재일조선인에게 중요한 경제활동의 장이었으므로 생활권 옹호투쟁 측면에서 민족 단체는 깊이 관여하게 되었다. 본 논문은 국내 연구에서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재일조선인의 해방 직후 생활, 그 중에서도 암시장이라는 기형적 공간을 통해 전후 일본 사회를 돌파해 나간 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기존의 재일조선인 관련 연구에서는 이 시기의 다양한 정치 활동, 귀국이라는 대규모 인구 변동을 다루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재일조선인의 경제 활동과 일상사에 대한 관심이 적었던 측면이 있었다. 본 논문은 그러한 점을 보강하여 해방 직후 재일조선인의 제반 생활을 보다 입체적으로 부각하는데 그 의의를 두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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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eated in World War II, the war-oriented Japanese industries collapsed and led to a mass unemployment. The Koreans in Japan who mainly worked in those industries confronted an overall unemployment and they desperately looked for a means of living. Under that circumstances, the black markets sprout up and the Koreans had no choice but to engaged in. Under the controlled economy, rice and food, clothing and household items were greatly demanded in the black markets. The majority of Koreans, who didn't have particular skills and educations, with small amount of capital, could manage to get into the black markets. They mainly worked as individual delivery services and street vendors. It hardly could be a decent or profitable job due to a small income, however, the Koreans who couldn't get into the regular job market, so no way to survive except attached to the lowest part of the black markets. Meanwhile, people who had experienced as factory technicians or with reasonable assets could have opportunities to start up their own business. Among those people, some could make a great capital from the business and get a chance to move to other profitable business. The experience of the black markets had provided the development of Zainichi business in particular area. For instance, some specific manufacturing such as rubber, textile, metal and machinery, and plastic business which sprouted during those period strongly related with the black markets and the relationship has been continued up to the present. And YAKINIKU(Korean style barbecue) and PACHINKO(Japanese style slot machine) which have become the typical industry of the Koreans in Japan were derived from the black markets. The black markets were also the stage of fierce survival for both of the Japanese and the Korean. Regarding the issue of the black markets and serious post-war economy brought one of the controversial political arguments. During black markets period, bootlegs and traditional candy made by the Koreans were going popular among the Japanese consumers. However, it provided a reason to Japanese government to conduct a raid to the Korean village later. The Koreans strongly protested because of the unfairly targeted raid but those actions enhanced a fixation of negative images about the Koreans in the Japanese society. After Japan regained its own sovereignty, the Koreans lost equal opportunities in choosing occupations. They were excluded from the regular job markets by implication, since then, the Koreans tended to be more concentrated on bootlegs and etc. Besides, as well as YAKINIKU and PACHINKO, specific manufacturing, service sectors, realty, and private loan business which Japanese wouldn't willingly accept became the great part of Zainichi business. After all, this study underlined that the economic activities by the Koreans in Japan which explains the present characteristics of the Zainichi society largely originated from the black markets after Liberation. The history of the Koreans in the black markets is not only reflection of economic activities, but also profound relevance with the overall post-war circumsta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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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論文は解放直後、日本に居残った在日朝鮮人の諸般の経済活動を1945~1950年の間尊属した闇市と係わって考察したのである。植民地という環境は中国、ロシア、日本、その外欧米地域で有史以来最大の朝鮮人海外流出を引き起こすきっかけになった。 渡日人口は増加傾向を見せて、1920年代以後には在日朝鮮人の独自のコミュニティを形成するほどに拡がった。 日本の戦争が拡がると朝鮮人は総動員体制によって強制動員され、徴用された人々は日本の戦時関連産業に主に投入された。しかし日本の降伏宣言によって戦時産業は全面解体され、大半の在日朝鮮人は失業状態に処するようになった。帰国意志は強かったが朝鮮半島の不安定な状況と日本生活の整理、帰国財産搬入制限などの理由によって帰国保留、あるいは定住の決心をしながら60余万名の在日朝鮮人は日本に居残るようになった。 日本は戦時期軍需産業に重点を置いた結果、需要と供給が不均衡になり、海外植民地の喪失、海外同胞の大挙引き揚げによる人口増加などで敗戦以後経済は大きく難関にぶつかった。日本政府が戦時期に実施した統制経済は占領軍によって持続した。このような統制経済時期に正規経済システムの外郭で誕生したのが闇市であった。闇取引は戦時期で隠然と行われ、敗戦以後には瓦解された流通器具の代わりをする闇市で本格的な存在感を現わした。 解放以前から日本産業の経済的下層部にとどまった在日朝鮮人は日本の敗戦によって日本人が忌避した末端職業さえ得にくい状況になった。在日朝鮮人は每日の生計のために戦後日本で自然発生した闇市で経済活動を始めるようになった。教育と技術、資本が十分ではなかった大多数の在日朝鮮人は闇市場で担ぎ屋及び行商と露天商などの販売業に携わりながら闇市経済の一角を担当した。一方、日本の軍需産業解体によって朝鮮人技術者と一部資産家は工場引受の機会を獲得することができた。これらは戦後爆発的な需要を見せた民需物資を生産し、闇市場を主要流通網にして本格的な商工業進出の機会にした。 闇市で取り引きされた物資は解放以前とは違う形で在日朝鮮人の特質を反映した。 マッコリ(濁酒)を含め、飴と内臓類などは日本社会では珍しい食材料であったし、解放以前には在日朝鮮人の内部で消費した物資であった。しかし食糧不足状況で闇市を通じてこの種類の食材料が日本社会に伝わった。 このような闇市場経験は在日朝鮮人が以後の産業活動を展開するにおいて主な転機になった。占領が終わって主権を回復した日本は国籍を条件に掲げて就業制限を置いた。 差別的就業状況で職業選択の自由を喪失した在日朝鮮人は闇市期に始まった商工業活動を中心に職業生活をするようになった。闇市を通じて成長した焼肉業とパチンコ業が今日在日朝鮮人の代表的職業の中で一つになったこともこのような状況とも深い関連があるのである。 闇市は経済活動の章でもあったが解放以後熾烈であった政治活動の裏面を見せてくれる空間でもあった。闇市は日本の敗戦によって日本人が形成した非正常的経済システムで、存在そのものが不法的な空間であった。不法と脱法が横行して、弱肉強食が日常的な道徳律で見なされたから各種社会問題の震源地で指目を受けたりした。敗戦による社会現象にもかかわらず、日本の政治家たちは闇市の問題を旧植民地人に擦りつける言舌を流布しながら敗戦責任を回避しようとした。 解放と同時に結成された民族団体は帰国事業、在留朝鮮人の財産と生命保護をまず事業で設定したが新祖国建設に同参しようとする政治活動も並行した。このような過程で占領軍と日本社会との衝突、民族団体内部の路線差が発生した。闇市の問題はこの時期、在日朝鮮人の政治活動の核心的事案ではなかったがこれらを取り囲んだ各種葛藤と対応は政治的闘いとかみ合うようになった。政治的路線と別に闇市活動は大半の在日朝鮮人に重要な経済活動の章だったので生活権擁護闘爭の側面で民族団体は深く関与するようになった。 本論文は国内研究で大きく注目されなかった在日朝鮮人の解放直後生活、その中でも闇市という奇形的空間を通じて戦後日本社会を突破して行った過程をよく見るでしょう。既存の在日朝鮮人関連研究ではこの時期の多様な政治活動、帰国という大規模人口変動を扱ったから相対的に在日朝鮮人の経済活動と日常事に対する関心が少なかった側面があった。本論文はそうした点を補強して解放直後在日朝鮮人の諸般の生活をより立体的に著しく表わすのにその意義を置こうと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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