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서민금융 상의 국가주도성의 기원과 제도변화 과정에 관한 연구 : 두 번의 국제적 위기와 두 번의 국내적 위기를 중심으로
- 주제(키워드) 서민금융 , 햇살론 , 마이크로크레딧 , 미소금융
- 발행기관 서강대학교 일반대학원
- 지도교수 류석진
- 발행년도 2016
- 학위수여년월 2016. 8
- 학위명 석사
- 학과 및 전공 일반대학원 정치외교학과
- 실제URI http://www.dcollection.net/handler/sogang/000000060009
- 본문언어 한국어
- 저작권 서강대학교 논문은 저작권보호를 받습니다.
초록/요약
한국의 7등급 이하 저신용자 수는 2014년 12월 기준 약 952만명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은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인해 점차적으로 서민에 대한 신용제약이 강화되어 온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2010년 7월부터 이른바 햇살론 정책 등을 통해 이러한 신용제약을 해결하려고 노력해왔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해소되지 않고 점차 강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책으로 만들어진 햇살론 시장은 점차 지속·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기존 연구는 단기적인 경로의존성으로서 국가의 정치적 유인에 따른 도덕적 해이와 시장의 역선택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분석만으로는, 실제 정책의 결과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호응을 얻으며 성장하고 있는지를 설명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특히, 이는 서민금융의 용어가 적용된 시점과 서민금융 용어가 적용된 시장의 형태가 발생한 시점을 혼동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를 전제로 본 연구에서는, 1920년을 전후한 무진금융의 관리 경험을 시작으로 한국 국가가 미시금융 시장 전반을 관리하고 필요할 경우 이에 개입하기 위한 하나의 통로로서, 현재 서민금융이라고 불리우는 시장 영역을 창출하였던 것임을 주장한다. 이에 따라 본 연구는 한국이 위기 국면에서 미시금융 시장을 정상화하는 수많은 방법 중 어째서 서민을 대상으로 한 소액대출 영역에 개입하여 문제를 해결하여 왔고 그것이 2010년 전후의 정책에까지 영향을 주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분석하기 위해 본 연구에서는, 먼저, 한국이 미시금융 시장의 내부에 현재 ‘서민금융’으로 불리는 것과 유사한 형태의 시장을 창출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관리해왔는가를 살펴보았다. 1920년 전후 일제의 식민지 무진금융 관리경험을 기초로, 1950년대 이승만 정부의 대한무진주식회사 제도, 1960년대 박정희 정부의 국민은행 제도, 1970년대의 새마을금고 제도 등을 통해, 국가-시장 간 비대칭적 관계를 전제로 미시금융 시장을 관리하기 위해 현재 서민금융과 유사한 형태의 시장을 창출하고 활용하여 왔음을 밝힐 수 있었다. 이러한 맥락은 1997년과 2008년의 두 번의 대외적 위기와 2003년과 2011년의 두 번의 대내적 위기 속에서도 유사한 방식으로 지속되어 온 것으로 확인되었다. 특히 국가-시장 간 폐쇄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1997년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정책은 위기 국면에서 미시금융 내에 일시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한 통로를 마련하는데 핵심이 있었으며, 1999년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2003년의 배드뱅크 프로젝트 정책은 이를 통해 발생한 미시금융 내의 시장행위자를 회생하기 위해 신용불량자를 희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2008년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2010년의 햇살론 정책은 2009년의 미소금융재단 정책의 실패를 기반으로, 앞서 유사한 네트워크 연합 속에서 시장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미시금융 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강제로 시행되었다. 나아가 2011년 저축은행 위기에서는 저축은행을 회생하기 위해 저신용계층의 신용 안정성을 희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현재 한국의 서민금융은 일본계 대부업체에 의해 장악된 상태로 귀결되었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서민금융 시장은 국가-시장 간 비대칭적 관계를 전제로 형성되어 온 장기적인 제도적 배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서민금융의 목적은 기존연구와 달리 처음부터 악화되고 있는 서민의 신용제약을 해결하는데 놓여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아가 앞서와 같은 목적으로 인해 서민금융을 활용해 왔던 국가와 시장은, 초국적 자본인 일본계 대부업체에게 점차 자리를 내어주게 됨으로써, 이제 더 이상 일시적인 신용완화 정책조차도 펼치기 어렵게 되었다. 그럼으로써 다음의 국내외적 위기가 발생했을 경우, 한국 국가는 미시금융 시장은 물론 서민금융조차도 조정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될 수 있고, 이것이 현재 악화되고 있는 서민의 신용제약을 보다 악화하는 요인으로 작동할지도 모른다고 생각된다.
more초록/요약
The number of people with low credit rating, the low grade under 7th grade in Korea, reached about 9,520 thousands persons, as of December, 2014. This is the result that the credit constraint of ordinary people who has low income and credit in Korea has been strengthened gradually since the global financial crisis of 2008. But Korean government has tried to solve this credit constraint with some financial policies like Sunshine Loan on July, 2010. However, the true problem is that this Sunshine Loan market is only continuing to grow, although this credit constraint is not solved as ever. Recent studies on this problem point out the moral hazard of the state with the political interest and the adverse selection of the market in Korea. But, in this article, these studies are difficult to explan the reason why this Seomin market like Sunshine loan is growing with the support of the market, though the actual result of these policies can not solve this credit constraint. Espeically, this difficulty is appeared, because recent studies do not know the difference between the time that the term of Seomin finance was applied and the time that the market form which was applied this term uprised. With this premise, this article insists the Korea state has have the historical experience which was created the small loan market, which is called Seomin finance now, into the micro finance, beginning the management experience of Musin finance during Japanese colonial era. Thus this article focuses on the reason why the Korea state has used the small loan for the ordinary people who has have the low income and credit in each crisis, and the effect of these actions which affects to the mirco financial policies of the state until the 2012s. For tracing the origin of it, first, this article researches if the Korea state created the market which were similar with Seomin financial market in present and managed this market consistently. As a result, the Korea state created and used this market form, such as Daehan Musin Corporation during the 1950s, Citizens National Bank during the 1960s, and Korean Community Credit Cooperatives during the 1970s, to manage the micro financial market and solve problems in it. This context seems to continue in the two international crisises which means Asian financial crisis of 1997 and Global financial crisis of 2008 and in the two domestic crisises which means Credit card crisis of 1999 and Savings bank crisis of 2011. Especially, based on the closed network between the state and the market, this network decided to use this Seomin financial market for providing temporary liquidity to the mirco financial market during two international crisises, while decided to scarifice the low credit people who received some benefits with foregoing policies during two domestic crisises. Consequently, this Seomin financial market is occupied by Japanese loan corporations. Therefore, the Seomin financial market of Korea is the long-term institutional arrangement with the assymetic relationship between the state and the market. With the premise of this context, the purpose of Seomin finance is not for solving the credit constraint of ordinary people from the beginning, unlike recent studies. Furthermore, the state and the market using this Seomin finance lose their capacity to perform the foregoing liquidity policy to relieve temporary credit constraint, because they delivered their market dominating power to Japanese loan corporations resultingly. Due to this, if the next crisis happens, the Korea state will fall in the situation that it will not coordinate Seomin financial market as well as the mirco financial market. And it will seem to be a factor to worsen the credit constraint of ordinary people more than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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