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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장전(馬駔傳)>의 ‘틈’ 사유와 연암(燕巖) 우정론과의 관계

An Analysis on the Concept of ‘Gap’ in the Majang-jeon and the Discourse of Friendship of Yeon-am

초록/요약

본고는 연암 박지원의 <마장전>의 담화 분석을 통해 텍스트의 핵심어로 나타나는 ‘틈(閒)’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를 살피고, 또 이 ‘틈’에 관한 사유에 함축된 의미와 그의 우정론과의 관계를 고찰해보고자 하였다. 일찍이 간(間), 중(中), 제(際)와 같이 사전적으로 ‘틈’을 의미하는 한자어는 연암 박지원을 비롯한 조선 후기 문인들의 사유체계를 설명하는 키워드가 되어 왔다. ‘경계’ 혹은 ‘사이’라고도 번역되는 이들 단어는, 중심적 가치의 전복과 주변적 가치의 인식이라는 조선후기 문인들의 인식 변화를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런데 연암의 초기 한문단편인 <마장전>에는 ‘틈’을 의미하는 단어(閒)가 우정이라는 인간관계를 설명하는 데에 핵심적으로 쓰이고 있는데, 이 점에서 연암에게 틈에 대한 사유가 사물 인식과 문예의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인간 존재와 윤리를 설명하는 문제에까지 확장되었을 가능성을 검토해보고자 하였다. 물론 ‘틈’이라는 공간에 대한 사유나 우정에 대한 논의는 역사적으로 연암에게만 돌출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 연암 박지원을 포함한 18세기 조선 후기 지식인들 사이에서 공히 ‘중심’이 아닌 ‘틈’이라는 주변부에 대한 사유와 우정 담론이 유행한 것은 외적 맥락이 있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점에서 <마장전>의 틈의 사유를 이해하는 일은 문학텍스트로서의 특징과 함께 당대 문인들의 시대적 고민의 흔적을 읽어낼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본고의 연구 내용을 논의 순서에 따라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II장에서는 <마장전>의 담화분석을 통해 텍스트에 쓰인 ‘틈’의 의미에 접근하였다. <마장전>의 담화는 단일한 현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전복시켜 역설을 드러내는 전략을 취하고 있었고, 또한 결론에 우회적으로 접근하여 확정적인 판단을 유보하는 미결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텍스트의 담화 주체가 단일한 사안에 대한 ‘명시적 의미’과 ‘함축적 의미’를 분리시켜, 확정된 규범체계를 거부하고자 하는 담화 의도를 지니고 있음을 도출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의도를 고려할 때, 텍스트에서 드러나는 ‘틈’이란 단어는 ‘미결정성(불확정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인간관계에서는 겉으로 드러난 바로만 판단할 수 없는 미결의 영역이 있으며, 이를 지각하는 것이 인간관계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타인과의 사귀는 것은 도덕 이념과 현실의 괴리가 있을 수 있고, 타자와 나는 동일성이 아니라 차이성에 기반하여 이해되어야 마땅하다. III장에서는 II장에서 도출된 ‘틈’ 사유의 특징적인 면모를 연암의 우정론과 연관지어 보았다. 실제로 연암이 주변 사람들과의 교유가 어떠했는지, 그가 우정에 관해 어떠한 생각을 가졌는지를 알 수 있는 문헌적 자료를 풍부하게 활용하여, II장에서 논의한 ‘틈’의 사유가 우정에서는 어떠한 양상으로 드러나는지를 알아보았다. 인간관계에서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미결적 영역을 중시하는 ‘틈’의 사유는, 사귐에 있어서는 ‘도덕 이념과 현실의 괴리의 극복하는 우정’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또 ‘개별 존재의 차이를 초월하는 우정’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우정’에 대한 강력한 열망으로 이어졌다. 이는 외재적 윤리를 기준으로 교제하기 보다는 당대의 현실에서 벗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며, 상대의 신분이나 처한 상황에 따라 견해가 달라도 다름 자체를 포용하는 폭넓은 교류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그간 <마장전>과 연암 우정론을 논한 연구는 텍스트 외적 맥락으로부터 텍스트로 눈을 돌리는 방향으로, 그리고 연암을 북학파 지식인 중의 하나로 위치지은 것으로부터 출발해 이해를 도모하는 방식으로 주로 이루어져 왔다. 반면 본고의 작업은 텍스트의 내적 이해로부터 텍스트 외적 맥락으로 이해를 확장시키는 흐름을 지향한다. <마장전>의 언어가 직조된 형식과 구조, 그리고 그 의도를 확장시켜 연암 우정론의 양상을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논의를 진행시켰다. 본고의 논의는 ‘틈’에 대한 텍스트 자료와 우정론을 고찰함에 있어, 그러한 개념들의 통시적 변천과정이나 성격의 변화를 단계적으로 나누어 보는 데까지는 논의를 개진하지 못했다. 이를 연암 우정론 연구를 포함한 문학 작품 연구의 후속 과제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으로 제시해보며 논의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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