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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와 글쓰기 전략 : 자서전, 소설, 에세

Proust et la strategies d'ecriture

초록/요약

프랑스 소설사에서 벨에포크 시대는 은밀한 변화가 준비되던 시기였다. 자연주의 미학은 시효를 다하여 "소설의 위기(crise du roman)" 담론이 횡행하고 있었으며, 스토리텔링 위주의 사실주의적 소설 모델은 영국과 러시아에서 들어온 새로운 유형의 소설들에 도전을 받고 있었다. 이런 문학사적 상황에서 집필을 시작한 프루스트에게 '소설'은 의문과 불신을 수반하는 장르였다. 앙드레 지드가 "사전꾼들(Les Faux-monnayeurs, 1925)" 이전까지 ‘소설’이라는 장르명을 기피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 당대의 젊은 작가들에게 소설이라는 장르, 소설적인 것(le romanesque)이라는 특징을 재규정하는 것은 시대적 요청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 1913-1927)가 서구 근대 소설의 역사를 마감하며 현대 문학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로 평가받았던 데에는 기본적으로 탁월한 문학적 성취가 있었겠지만 작품 안팎에서 프루스트가 제기하고 있는 소설에 대한 여러 질문들 역시 적지 않은 역할을 수행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프루스트는 자신의 작품이 ‘소설’이라는 불리는 것을 거북해했으며, 실제 이 소설은 당대 소설 독자의 기대지평에 들어맞지 않아 기성의 장르 체제로는 분류하기 까다로운 ‘낯선’ 작품이었다. 1부에서 우리는 지난 사반세기 동안 프루스트 연구를 지배해온 ‘발생 비평(critique génétique)’의 성과에 기대어 "생트뵈브에 반대하여"의 원고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로 변해가는 과정을 장르 혼합이라는 시각에서 검토했다. 애초 "생트뵈브에 반대하여"는 작가와 작품을 동일시하는 생트뵈브의 전기주의적 비평(critique biographie)을 비판하는 메타비평으로 기획되었으나 이후 여러 차례의 구도 변경을 겪으면서 종국에는 현재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같은 소설 형태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이 구도 변경의 각 단계는 자전적 일화, 소설적 서사, 문학비평이라는 세 장르의 배합 비율, 배합 방식, 선후관계, 주종관계 등의 변화로 규정할 수 있다. 즉, 이 시기는 비평과 픽션의 결합을 위한 최적의 형식을 탐색하는 단계였으며, 이러한 모색의 결과 프루스트 스스로가 말하는 것처럼 “자서전과 에세이의 풍미가 있는(la saveur d’une autobiographie et d’un essai)” 소설이 나오게 된다. 우리는 그 중에서도 "생트뵈브에 반대하여"의 서두에 놓이며 비평적 토론을 도입하는 액자로 쓰이는 「엄마와의 대화(la conversation avec Maman)」의 역할에 주목했다. "피가로"지에 실린 서술자의 글에 대한 인상에서 시작하여 생트뵈브에 반대하는 새로운 글의 구상으로 마무리되는 이 일화에서는 "피가로" 글의 저자 마르셀 프루스트의 실명(實名)이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동시에 프루스트 자신의 인간적 약점이 부각되어 생트뵈브식 방법론에 정확히 부합하는 상황이 만들어지는데, 여기에 ‘대화’에서 출발한 문학 비평인 생트뵈브의 "월요 한담(Causeries du Lundi)"을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 비판한다는 역설적 구도가 겹쳐지면서 생트뵈브적 문학관의 근본적 전복을 위해 저자 자신의 개인사까지 연루시키는 위험천만한 전략이 펼쳐진다. 결국 우리는 이 대목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이후 작품의 중요한 특징으로 부각될 ‘자전성’이 소설에서 덜어내지 못한 찌꺼기가 아니라 메타비평적 의도에서 도입된 핵심적 요소임을 보여주려 했다. 2부는 본고에서 가장 이론적인 부분으로 우리는 프루스트의 작품이 제기하는 장르의 문제를 서술학의 도구들과 존 설(John Searle) 이후 발전된 ‘픽션의 존재론’의 개념을 통해 분석하려 했다. 1인칭 서술의 지각장 제한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프루스트였지만 작품 속에는 전지적 시점의 장면이 적지 않게 존재하며, 특정 사건에 대해 서술자가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거나 말해지지 않은 것(non-dit)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일도 비일비재하고, 무엇보다 1인칭 서술 속의 ‘저자의 침입’이나 서술자의 자기동일성이 부인되는 비논리적 사례들이 종종 출현한다. 우리는 언표(énoncé)와 언술행위(énonciation)라는 기본적 구별에 입각하여 서술 체제를 뒤흔드는 이러한 이례적 사례들을 검토하려 했으며, 이런 관점에서 허구적 서술자의 생산물인 ‘우리가 읽는 텍스트’와 프루스트의 생산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이론적으로 구별하여 글자 하나 다르지 않으면서도 상이한 지위를 갖는 이 두 텍스트가 보여주는 현실언표와 허구연표의 기묘한 결합 양상을 분석하려 했다. 3부에서 우리는 ‘소설’이라는 명칭에 대한 프루스트의 지속적 거부를 당대의 지배적 소설 양식과 그 특징으로 여겨진 ‘소설적인 것’에 대한 이율배반적 입장이라는 관점에서 관찰하려 했다. 위스망스의 "거꾸로"(A rebours, 1884)에서 시작되어 20세기 중반 절정에 이른 소설 해체의 과정에서 프루스트의 작품은 분명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작품 속에서 ‘소설’이나 ‘소설적인’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방식을 분석하여 프루스트가 소설 장르에 진실 결핍, 현실 도피, 미망(迷妄) 등의 코노테이션을 부여하고 있으며 중세 로맨스 장르를 대표하는 게르망트 공작부인과 연애소설을 대표하는 알베르틴이 서술자의 문학 소명(召命)에 장애물로 작용하는 과정을 보이려 했다. 특히 여주인공이 등장하지 않는 연애소설 "사라진 알베르틴"은 작품 중반 "소돔과 고모라"를 통해 절정에 이르렀던 소설성을 종료시키고 "되찾은 시간"의 비소설성을 준비하는 교두보가 된다. 우리는 특히 이 대목에서 드러나는 발자크 소설에 대한 매혹과 거부의 양가적 감정을 통해 프루스트가 과거나 후대의 반(反)소설과는 달리 ‘소설적인 것’을 완전히 부정하는 ‘단순한’ 해결책을 택하지 않고 이를 반성적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을 확인하려 했다. 4부에서 우리는 진실의 결핍으로 규정된 ‘소설적인 것’과 대비되는 의미에서 프루스트가 추구한 진리 지향적 글쓰기의 이념과 방식을 검토했다. 프루스트는 개별 사실의 기록(notation)이 아닌 일반 법칙의 ‘시적’ 언명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이 점에서 전대의 자연주의 미학과의 대비는 극명하다. 자연주의 소설에서 ‘묘사’는 실제 현실의 충실한 기록으로서 지식 담화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는데 ‘X선 투시’를 통한 일반 법칙의 인식을 목표로 하는 프루스트가 볼 때 자연주의적 묘사는 현실의 피상적 기록에 그친다는 약점이 있다. 대신 프루스트는 에세이(essai)의 형식을 통해 소설 플롯 속에 다면적, 총괄적 지식을 집어넣는 방법을 택하여 허구 세계에 인식론적 차원을 부여하고 소설 장르의 외연을 확장시키는 데 성공한다. 또한 에세이적 구절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여담(digression)은 전통적인 연대기적, 선조적 서술 양식을 (완벽히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교란하는 기제가 된다. 이처럼 서사, 장르, 문체라는 세 가지 문제틀의 교차점이 되는 에세이/여담은 프루스트의 소설이 이루어낸 문학 혁명의 핵심에 있으며 작품의 준비 기간 동안 저자를 괴롭혀온 ‘이 글을 소설로 만들어야 하나, 아니면 철학 연구로 만들어야 하나? 나는 소설가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궁극적 해결책이 된다. 이처럼 ‘문학 장르’라는 범주를 이용해 우리는 프루스트가 전대의 작가들과 맺고 있는 영향/단절의 관계와 프루스트 자신의 이론과 실천에 모순을 낳고 있는 총체성의 미학과 파편적 글쓰기라는 대립관계를 어느 한쪽으로 환원시키지 않고 그 분쟁과 협상의 과정을 다각적으로 검토하려 했다. ‘문학 장르’는 프루스트에게 문체, 서술 양식, 인생과 예술의 관계, 문학이 구현 가능한 진리 등에 관한 여러 질문을 종합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일종의 용광로였던 것이다. 물론 그 장르적 애매성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이러한 질문들을 완벽히 해결해서 만든 ‘고전적’ 예술작품이 아니다. 하지만 역으로 이처럼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여러 문제들 간의 긴장과 모순은 이 소설을 유례없이 복합적인 작품으로 만들어냈으며, 현대의 독자들에게까지도 수많은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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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요약

Dans l'histoire de la littérature française, la Belle Époque est une période marquée par les premiers signes de la grande mutation romanesque à venir : l’esthétique naturaliste semblait être périmée ; le modèle narratif traditionnel de « raconter l’histoire » devait affronter le défi des nouvelles formes romanesques, venues de l’Angleterre et de la Russie. Rien d’étonnant à ce que le genre romanesque fût l’objet de méfiance et de soupçon pour Proust tout comme pour son contemporain André Gide qui, avant les Faux-monnayeurs, n’a jamais voulu appliquer le mot « roman » à ses récits fictionnels. Si A la recherche du temps perdu est considérée comme une œuvre qui, à sa manière, clôt l'histoire du genre et inaugure la littérature moderne à laquelle la division des genres est tout à fait étrangère, c’est, au-delà de la réussite esthétique incontestable, du moins en partie, grâce à la mise en question du genre romanesque que Proust ne cesse pas d’effectuer à travers son roman. En fait, Proust était « gêné » lorsqu'on lui parlait de son ‘roman’ qui ne se conformait guère à l’horizon d’attente des lecteurs romanesques, le système des genres littéraire à l’époque ne fournissant aucun critère efficace pour expliquer cette œuvre difficilement classable. Dans la première partie, nous avons examiné, appuyant surtout sur les apports de la critique génétique, le passage du Contre Sainte-Beuve à la Recherche sous l’angle du mélange des genres. Originellement conçu comme un projet méta-critique contre la méthode beuvienne, Contre Sainte-Beuve subit, avant d’aboutir à la Recherche telle que nous la connaissons, de nombreux changements génériques qui consistent en recherche d'une forme alliant trois éléments majeurs du projet : récit autobiographique, récit fictionnel et critique littéraire. D’où vient le roman proustien qui, comme le dit Proust lui-même à propos de Du côté de chez Swann, a « la saveur d’une autobiographie et d’un essai ». Dans la deuxième partie, nous avons analysé le problème de l’identification générique de la Recherche, par la voie théorique ouverte par la narratologie et surtout par l’« ontologie de la fiction » développée par John R. Searle, Käte Hamburger, Marie-Laure Ryan et Gérard Genette. En fait, face à la grille des genres littéraires, le roman proustien représente un cas-limite : malgré la conscience aigüe du champ de perception restreint de la narration homodiégétique de la part de l’auteur, le roman présente de nombreux cas de l’omniscience ; le narrateur ne semble pas toujours raconter la vérité pour omettre les informations cruciales ou même les dissimuler ; il est même des fois les « intrusions de l’auteur », impensables dans le cadre de la narration homodiégétique, déniant l’identité textuelle du narrateur voire mettant celui-ci dans le paradoxe du menteur. Nous avons examiné ces anomalies à partir du distinguo fondamental de l’énoncé et de l’énonciation, en introduisant une autre distinction entre la Recherche en tant que énoncé de Marcel Proust et « le texte que nous lisons » en tant que énoncé du narrateur. Cette distinction nous conduit à la réflexion sur la valeur du pseudo-énoncé référentiel produit par les êtres de papier, car, si ces deux textes sont littéralement identiques, leur statut énonciatif n’est nullement le même. Dans la troisième partie, le refus proustien d’appeler son œuvre « roman » a été éclairé par la position ambiguë et même contradictoire de Proust vis-à-vis le modèle romanesque de l’époque et l’ensemble de ses clichés que nous réunissons sous l’étiquette du « romanesque ». Dans le processus de la déconstruction du romanesque à partir d’A rebours jusqu’à Robbe-Grillet, l’importance de Proust est indéniable. On voit Proust attribuer aux termes de « roman » et de « romanesque » les connotations négatives : manque de vérité, illusion, évasion hors de la réalité, etc. C’est ainsi que Oriane de Guermantes, synonyme des « vieux romans » médiévaux et Albertine Simonet, représentant du « roman d’amour » deviennent deux obstacles majeurs pour la vocation littéraire du narrateur. Surtout, Albertine disparue, roman d’amour sans héroïne, en mettant fin, quelque peu à la manière des anti-romans du XVIIe siècle, au « romanesque » ostentatoire du Sodome et Gomorrhe, prépare la disparition de toute fiction du Temps retrouvé, volume essentiellement dogmatique. Dans la quatrième partie, nous avons opposé la conception cognitive proustienne de l’écriture au « romanesque » défini comme manque de vérité. Alors que, dans les romans naturalistes, la description maintient un statut privilégié par son rôle de noter le réel, chez Proust, au contraire, la description, libérée de la fonction de la représentation fidèle du réel, devient une question de la vision généralisant, du style individuel et de la métaphore. En d’autres termes, la description est chez Proust la partie la plus poétique. Par contre, le côté « savoir », pris en charge, chez les naturalistes, par la description, se voit déplacé, chez Proust, dans les passages essaystiques. L’essai proustien tend, au-delà de hic et nunc de l’action singulière décrite, à incorporer le diégèse dans les lois toujours plus générales afin de fournir à l’univers fictionnel une dimension cognitive et épistémologique. La notion de « genre littéraire » nous a donc permis de contempler aussi bien les contradictions entre la théorie et la pratique que le rapport d’influence et de rupture que Proust mène avec les auteurs antérieurs. Le genre littéraire est, pour Proust, comme les « étoiles des carrefours, dans les forêts, où viennent converger des routes venues [...] des points les plus différents. » Toutes les questions y sont abordées : style, mode narrative, rapport entre l’art et la vie, type de vérité susceptible d’être incarné dans la littérature. Evidemment, la Recherche est loin d’être une œuvre d’art parfaite (et donc sans défaut) au sens « classique » du terme. Son ambiguïté générique le montre clairement. Mais, au contraire, les contradictions et les tensions entre ces questions imparfaitement résolues créent une complexité et hétérogénéité sans précédent pour faire du roman proustien une œuvre à jamais ouver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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