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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지배-정당성 확보를 위한 규범적 지지로서의 건국신화 : 삼국유사 고조선 조의 분석 및 해석

The Birth Myth - Dangun mythology - as a normative support in the legitimation crisis of the latter part of Goryeo.

초록/요약

전통사회의 지배-정당성의 확보는 지배층의 정당화 명제에 대한 피지배계급의 규범의 승인을 전제로 한다. 고려의 지배-정당성을 뒷받침할 정당화 명제는 유학과 불교였다. 하지만 고려 후기에 와서 정치사회적 위기를 겪으면서, 유학과 불교는 규범적 지지로서의 위기를 맞는다. 정당성 위기다. ⟪三國遺事⟫와 ‘檀君神話’의 기술은 당시 시대적 과제로 던져진 질문에 대한 일연이 대답이기도 했다. 단군신화는 고려 후기 규범적 지지의 복구를 위한 찬술이었다. 단군신화의 기술 속에 담긴 의미 중 핵심은 다음 몇 가지로 간략히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일연은 고려 후기 규범적 지지의 위기를 먼저 김부식 중심의 고려 유학이 보여준 한계에서 찾으면서도, 유학 본래의 순수성, 즉 고유한 가치와 규범 회복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둘째 일연이 비판한 유학의 문제는 ‘모화사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단군을 중국의 堯(요)의 반열에 놓고 그 기원을 하늘(天)인 환인에게 둠으로써, 우리 역사와 우리 강역 중심의 새로운 세계관을 정립하고자 했다. 이것은 당시 원 지배하의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할 길이 어디인지에 대한 일연의 대답임과 동시에 새로이 재편되는 동북아 질서 속에서 고려가 나아가야 할 정치적 지향점에 대한 암시이기도 했다. 셋째 일연은 단군을 ‘帝釋(제석)’으로 표현함으로써 불교는 물론 민간의 천신신앙을 아우르는 사상 통합을 추구했다. 이것은 분열된 사회와 그것의 반영인 규범적 지지의 위기를 사상 통합을 통해 회복하고, 이를 발판으로 새로운 규범을 정립하고자 한 그의 바람을 반영하기도 한다. 사상통합은 직접적으로는 민중들의 불교로부터의 이탈을 막기 위한 측면도 있었겠지만, 거시적으로는 무너지는 고려의 규범적 지지를 다시 세우려는 그의 노력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넷째 고려 후기가 던진 질문에 대한 대답의 핵심에는 그의 佛國土 思想의 복원이 자리 잡고 있다. 일연은 신라가 지리적⦁정치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찬란한 문화를 일구고 나아가 삼국통일을 이룬 것이 불국토 사상에 있다고 보았다. 그는 불국토 사상의 복원이야말로 고려 후기가 당면한 규범적 지지를 복구할 토대가 된다고 보았으며, 사분오열된 정치사회적 분열을 다시 봉합해 줄 규범적 지지가 되어 줄 것으로 본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단군을 신화속의 존재가 아니라 역사적 인물로 부각시킴으로써, 신화를 역사로 바꾸는데 기여했다. 이 점은 오늘날에까지 영향을 미쳐 통사 기술의 기준이 되었음은 물론, 우리 강역과 역사의 시원에 대한 정의를 내림으로써 민족적 자존과 자긍의 기초를 마련했다. 일연에게 고려 후기의 사상⦁문화적 위기, 규범적 지지의 위기는 해결할 수 없는 과제가 아니라, 반드시 해결할 수 있고 또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였다. 단군신화는 불국토 사상이라는 ‘실천적 규범’을 담은 그릇이었다. 그 안에 담긴 무수한 담론은 그것의 표현이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것은 위기 극복을 위한 메시지이기도 했다. 비록 이것이 일연 개인의 독창적 생각이 아니라, 당대 지식인 사회의 경향을 일부 반영한 것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하여 일연 자신의 지적 성찰의 공적이 결코 작지는 않다고 본다. 그가 이규보의 동명왕신화의 기록 정신을 계승해, 신이를 직접 다룸으로써 동명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단군을 기술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만 보아도 이 점을 잘 알 수 있다. 신화의 사회학적 연구와 관련하여, 먼저 신화는 그것이 갖고 있는 담론의 성격상 비록 종교적⦁신비주의적 성격(외피)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실이 신화를 사회학적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데 걸림돌이 될 수는 없다. 신화의 그러한 속성 또한 그 자체로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고 또 되어야 한다. 신화는 일연의 인식대로 하나의 ‘역사’ 또는 ‘역사의 과정’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단군신화의 가치는 더 이상 ‘신화’의 틀 속에 갇혀, 문학적 유산이나 민속학적 담론의 하나로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 단군신화는 우리의 ‘역사’이며 그 속에 담긴 담론은 우리 민족의 기원과 계보 및 강역의 범위에 대한 ‘자료’이다. 이것은 본고가 취한 태도이기도 하며, 나아가 역사사회학이 그 연구대상과 범위를 넓혀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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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요약

The people's comprehensive approval of norms that were made the ruling class is required for the establishment of legitimacy in traditional societies. Confucianism and Buddhism are normative legitimation thesis in Goryeo. However, This normative legitimation came to a crisis in the latter part of Goryeo when the domestic and foreign political crises. The Goal of the publications of 'Dangun mythology' in The heritage of the three sates(삼국유사) is the reestablishment of normative support in Goryeo. The core of the argument in Dangun mythology is as follows; First, Ilyeon emphasizes the recovery of the essence of confucianism - the proprieties and benevolence. Second, He firmly criticized 'cultural toadyism'. This assertions reflects the political directions of Goryeo. Third, He pursued the unification of thoughts - Confucianism, Buddhism, Taoism and the belief on the gods of heaven - that was fragmented in the latter part of Goryeo. Fourth, He hopes the restoration of 'Buddha Land'. He regards Buddha Land as a normative and pragmatic support. It is a practical ideas and a message to overcome the crisis. Finally, He accentuates Dangun as a historical figures, not a mythical character. Owing to his efforts, Dangun and Gochosun becomes the origin of Korean history. At the same time, The clear definition of the origin and territory of Korean history forms the foundation of the principles of independence and self-respect. The Birth Myth should become accepted 'history' or 'social historical product'. We ought to see the birth myth as an object of sociological study. We should not treat the birth myth as a folk tale and legend. Dangun mythology is a text on the origin and territory of Korean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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