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崇山行願과 韓國 看話禪의 大衆化 · 世界化

초록/요약

본 논문은 숭산행원(崇山行願, 1927~2004) 선사의 선(禪)사상과 수행론(修行論)을 대한불교조계종의 ‘한국 간화선 대중화 ? 세계화’ 과제와 연계하여 고찰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숭산은 한국불교사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전 세계적인 전법활동을 펼쳤을 뿐 아니라, 간화선의 세계화 측면에서도 이미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던 인물이다. 따라서 그의 선사상과 수행론에 대한 연구는 한국 간화선의 대중화 · 세계화 과제와 연관시켜 고찰되어야 하는 상당한 필연성을 가진다. 본고에서는 한국 간화선 대중화를 위한 이론적 기반의 점검, 수행법의 변천사, 그리고 그것의 세계화를 위한 제언을 포괄하는 연구가 이행될 것이다. 그 이유는 오늘날 한국불교계가 간화선의 대중화 및 수행법적 정체성에 대한 이론적 기초가 모호한 상황에 처해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한국 간화선의 세계화 과제 또한 그 추진력을 발휘하기 힘들 수 있다. 따라서 한국 간화선에 대한 이 같은 이론적 · 수행법적 측면의 연구를 수행하고, 그 기반 위에 숭산의 선사상과 수행론에 천착함으로써 그것의 내용과 의의를 한국 간화선 대중화 · 세계화 과제와 연계시켜 보다 심도 있게 이해하게 되리라 판단한다. 또한 숭산이 해외포교 현장에서 시도했던 새로운 수행법의 특성과 의의, 이것이 한국불교계에 주는 과제, 그리고 한국 간화선의 대중화 ? 세계화를 위해 갖는 의미에 대해서도 고구할 것이다. 첫 번째로 한국 간화선 대중화를 위한 이론적 기반 점검을 위해 “간화선은 아무나 접근하기 힘든 난해한 수행법”이라는 인식이 국내 불교계에 형성된 배경을 연구하게 된다. 이러한 인식의 이면에는 국내에 간화선을 최초로 도입한 보조지눌(普照知訥, 1158~1210) 선사의 간화선관(看話禪觀)이 다소간 영향을 미쳤으리라 판단한다. 자신과 간화선 간의 매개체가 되었던『대혜어록大慧語錄』을 접하기 전, 지눌은 이미 ‘성적등지문(惺寂等持門’ 및 ‘원돈신해문(圓頓信解門)’과 같은 수행문을 관철(貫徹)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추구하던 구도의 경지가 지극히 높았던 나머지 소위, 지해병통(知解病痛)에 시달렸던 지눌은 간화선을 통해 완전한 깨달음을 체험하게 된다. 그 후 지눌은 간화선을 ‘경절문(逕截門)’ 또는 ‘무심합도문(無心合道門)’이라 명명하며, 일반 대중들이 근접하기 힘든 최상승근기(最上乘根器根器)를 위한 수행법으로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대혜종고(大慧宗?, 1089~1163) 선사가 간화선을 확립한 의도는 지눌의 입장과 다른 것이었다. 당시 성행하던 묵조선(?照禪)과 문자선(文字禪)의 폐해를 바로 잡고, 출가 · 재가자를 막론하고 누구나 올바른 깨달음의 세계로 이끌고자 접근이 용이하고 효력이 뚜렷한 수행법으로서 고안된 것이 간화선이었다. 따라서 간화선이 고안된 취지를 회복하는 간화선관을 새롭게 확립해야만 간화선 대중화를 위한 이론적 토대가 올바로 구축될 것이다. 한국불교 역사상 지눌이 차지하는 위치와 그의 위업은 분명 칭송받기에 충분하지만, 그가 견지했던 간화선관은 재고될 필요가 있다. 두 번째 고찰은 한국 간화선의 수행법적 정체성에 대한 것이다. 오늘날 조계종에서는 한국 간화선의 수행전통이 온전히 보존된 채 전국적으로 실참수행이 왕성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에 대단한 긍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수행의 매개체인 간화선의 수행법적 정체성에 대해서는 얼마나 깊은 인식을 하고 있는가? 위와 같은 문제의식을 근간으로 간화선의 국내 도입 이후 발생했던 수행법의 변천에 대한 통시적 고찰을 하였다. 그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핵심사항 가운데 하나는 국내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국의 정치 · 문화적 상황의 변화와 이것에 반응하는 국내의 상황 및 불교계의 입장에 따라 간화선 수행법은 상당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영향력이 큰 선적(禪籍)의 수용으로 인해 또 한 번 수행법이 크게 변화하였다. 전자의 경우는 원(元) 간섭기에 몽산덕이(夢山德異, 1231?~1308?) 선사와의 교류에 의한 것이었으며, 후자의 경우는 고려말 · 조선초 무렵에 전래된 고봉원묘(高峰原妙, 1238~1295) 선사의『선요(禪要)』에 의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간화선 수행법의 변화는 오늘날 역시 발생하고 있는데, 그 대표적 사례가 숭산의 관음선종(觀音禪宗)이라 하겠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수행법의 시도는 향후 한국불교계에서 얼마든지 출현할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조계종에서 한국 간화선 수행법을 변화 불가능한 하나의 유형으로 고착화시킨다면 한국 간화선이 다양한 형태로 그 영역을 확대시킬 수 있는 기회가 상실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향후 간화선의 다양한 수행법을 수용함에 있어 역사상 보여 왔던 한국불교의 회통적 포용성과 유연성이 발휘된다면 한국 간화선을 대중화 · 세계화 과제의 성취 또한 그 미래가 밝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계종은 한국 간화선 세계화를 위해 수행법적 측면에서 어떤 방안을 강구하고 있는가? 필자는 이를 위해 먼저 유럽사회가 불교에 심취하게 된 역사적 배경 및 과정에 천착하였다. 그리고 유럽의 불교수용 맥락에서 한국 간화선의 장점과 문제점을 분석함으로써 그것의 세계화 방안 또한 제언하였다. 유럽사회의 불교수용과정은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19세기 여명기를 거쳐 20세기 중반의 1차 부흥기, 그리고 20세기 후반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2차 부흥기가 그것이다. 이와 같은 역사적 과정 가운데 지적인 차원의 접근과 영적 · 신앙적 차원의 접근이 함께 이루어졌다. 이 중 지적 차원의 접근은 문헌학적 연구와 철학적 연구로 다시 구분된다. 영적 · 신앙적 차원의 접근은 과학기술의 발전과 이로 인해 합리성을 추구하는 성향이 유럽사회에 확산됨에 따라 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더욱 증가하면서 불교에서 “신(神)이 없는 종교”의 가능성을 찾게 됨에 따라 불교가 하나의 대안으로 부상하면서 전개된 것이다. 그리고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은 서구인들로 하여금 새로운 신앙적 돌파구를 찾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이후 1990년대 들어 전자 · 정보기술이 급속히 발전하여 서구와 비서구간의 정보교류가 더욱 빈번해짐에 따라 비서구적 가치 또한 동등한 정신적 산물로 여기는 풍조가 서구에서 이전보다 더 강해진 것 또한 불교의 확산을 가속화시켰다. 이상과 같은 유럽의 불교수용 맥락에서 간화선을 분석해볼 때 여러 장점들을 가지고 있다. 첫째로 간화선에 내재되어 있는 강한 학문적 성향이다. 둘째는 그리스도교의 타력적 신앙에서 벗어나 서구인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개개인의 내면에서 비롯되는 진정한 정신적 · 영적 자각을 체험하게 해줄 높은 가능성을 가진다고 하겠다. 셋째로 오늘날 서구사회에 만연되어있는 개인주의와 자본주의의 병폐에서 비롯되는 개인의 정신적 고독과 고뇌를 치료할 수 있는 유용한 요소들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한국 간화선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 또한 내재해 있다. 첫째는 한국 간화선에서 지나치게 고수하고 있는 ‘일평생 오직 하나의 화두만을 참구’할 것을 강조하는 전통인데, 합리성을 추구하는 서구적 상황에 적합한, 보다 유연한 방식이 요구된다. 둘째는 화두의 내용에 관한 것인데, 서구 문화에 적합한 새로운 화두의 개발이 필요하다. 셋째는 간화선 수행의 핵심요소인 입실제도의 전통이 유명무실해졌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권위적이고 불친절한 스승의 지도법이다. 조계종이 한국 간화선 대중화 · 세계화 과제를 안고 있는 데 비해 숭산은 조계종 승려로서 이미 1960년대 중반부터 홀로 전 세계적인 전법활동을 펼쳐 수십 년간 괄목할만한 성과를 달성했던 선사이다. 그는 경허성우(鏡虛惺牛, 1849~1912), 만공월면(滿空月面, 1871~1946), 고봉경욱(古峰景昱, 1890~1961) 선사로 이어지는 덕숭법맥의 계승자로서 조사선 전통을 중심한 간화선 수행을 강조하였다. 특히 “오직 모를 뿐”이란 화두를 통해 인간의 본원심을 깨친 후 그것을 대비심으로 승화시켜 실천적 삶을 살 것을 역설함으로써 선의 실천성을 강조했던 덕숭선풍의 특징을 계승하였다. 또한 ‘선의 대중화’를 강조했던 경허, 만공의 사상에서 비롯된 선풍을 확장시켜 ‘선의 세계화’ 구현에 앞장섰다. 그러나 문중 전통의 계승 및 그것을 전 세계적 차원으로 발전시킨 그의 공적에도 불구하고 해외포교를 위한 수행체계를 창안함에 있어 일본 임제종 수행체계를 상당부분 도입했다는 점으로 인해 숭산이 설립한 관음선종의 가치가 저평가되어 온 부분이 없지 않았다. 이에 그의 수행법과 일본 임제종 수행체계간의 유사점을 심도 있게 분석하였고, 이를 토대로 관음선종이 갖는 의미에 대한 두 가지 차원의 해석을 시도하였다. 첫째는 관음선종이 일본 임제종의 수행체계를 상당부분 도입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방편적 접근이었을 뿐, 숭산이 진정 강조한 것은 한국의 정통 선풍이었다는 해석이다. 둘째는 관음선종의 일본 임제선풍 수용은 중세 한국불교 전성기 때 한국승려들의 태도와 유사하다는 해석이다. 즉 중국 조사선 전통의 영향권에 있는 동아시아 선불교를 국가적 차원을 초월한, 종파적 차원의 통합적 관점에서 접근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해석이다. 그렇다면 ‘십문관(十門關)’이라 명명된, 숭산이 구축한 수행체계와 그의 지도방식은 한국 간화선의 세계화적 측면에서 어떤 특성을 지니고 있는가? 첫째, 그것은 일련의 화두를 상호보완적으로 참구해 가는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일평생 오직 하나의 화두만 참구하는 한국 간화선 전통과는 다른 체계를 가진다. 또한 현대적 관점에서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 공안을 포함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사제관계 측면에서도 한국불교에서 전통적으로 강조되어 온 스승의 권위를 부각시키면서 동시에 서구적 관점에서 수용될 수 있는 수평적 차원의 사제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사상 간화선 수행전통에서 중요시해왔지만, 오늘날 한국불교계 실참 현장에서는 유명무실해진 것이나 진배없던 입실참문 전통을 회복시켰다. 이와 같은 그의 새로운 시도는 오늘날 조계종이 종단 차원에서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한국 간화선의 대중화 · 세계화’ 과제 측면에서 조명해볼 때 다양한 장점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수행체계가 일본 임제종의 공안선(公案禪) 수행법을 상당 부분 차용했다는 점으로 인해 한국불교계에서는 그동안 상당한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으며, 그의 업적 또한 격하되었던 측면이 존재한다. 그러나 숭산의 관음선종 역시 한국불교의 영역 내에 있는 것이기에 그의 새로운 시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한국불교계에 하나의 과제로 남아 있다. 또한 숭산은 해외 포교 과정 중 승단 내 여성의 지위와 관련하여 다소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는데, 비구니가 지도법사로서 비구들 앞에서 법문을 할 수 있게 한 점 등이 그것이다. 이 역시 한국불교계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성평등’이라는 주제는 오늘날 전 세계 어느 문화권을 막론하고 보편화시켜야 하는 당위적 개념이다. 따라서 숭산의 행보는 여성평등 관점에서 여전히 전근대적인 면모를 다분히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는 한국불교계에 상당한 과제를 부여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리고 승단 내 여성의 지위에 대한 변화는 최소한 한국 간화선의 세계화 측면에서 판단할 때도 전향적인 조치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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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요약

The purpose of this dissertation is to investigate Seon (Jp. Zen) Master Seungsahn Hyaengwon (hereafter Seung Sahn) 崇山行願 (1927~2004)''s Seon thought and his practice theory in relation to "the popularization of Korean Ganhwa Seon 看話禪 (Jp. 公案禪 Koan Zen)." In the history of Korean Buddhism, Seung Sahn is a historical figure who has globally propagated the tradition to a degree nobody has yet to match and performed remarkable achievements in the globalization of Korean Ganhwa Seon (hereafter KGS). Therefore, research into his Seon thought and practice theory inevitability deserves examination in conjunction with the task of the popularization and globalization of KGS. This research includes an inspection of the theoretical basis for the popularization of KGS, the history of its practice system, and proposals for globalizing it. The key reason for this investigation is that the theoretical basis for the popularization of KGS and the identity of its practice system occupy an ambiguous space in Korean Buddhism. In this situation, it can be difficult to generate momentum in globalizing KGS. If Seung Sahn''s Seon thought and his practice theory are investigated on the theoretical-practical aspect as such, its contentand significance will be profoundly understood in conjunction with the popularization and globalization of KGS. In addition, this work will analyze the characteristics and significance of the new practice system Seung Sahn attempted to create in his the global propagation efforts as well as the particular mission this gives to Korean Buddhism. By doing so, we seek to specifically answer what the mission implies for the popularization and globalization of KGS. Firstly, in order to assess the theoretical foundation, I will trace the process by which the recognition that "Ganhwa Seon is a hard­to­approach practice system for ordinary people" was formed in Korean Buddhism. Looming large here is the influence of Bojo Jinul 普照知訥 (1158~1210)''s perspective of Ganhwa Seon, who was the first to introduce it to Korea. Jinul was undergoing a sickness of intellectual understanding (Kr. jihae byeongtong 知解病痛) prior to encountering Tahui Yulu 大慧語錄, a mediator between Ganhwa Seon and himself; through Tahui''s teaching he was able to defeat the sickness. Afterwards, Jinul included Ganhwa Seon as one of his three approaches to Seon practice and enhanced the value of Ganhwa Seon by giving it new names, the ''Short­cut approach'' (Kr. Gyeongjeol mun 逕截門) and the ''Approach of no­mind that conforms with the path'' (Kr. Musim hapto mun 無心合道門). Hence, according to the theory of Ganhwa Seon that was developed by Jinul, Ganhwa Seon is suitable only for those of highly superior faculties (Kr. Choesangseung geungi 最上乘根器). This position is, however, far from Tahui Tsungkao 大慧宗? (1089~1163)''s ideas about the popularization of Seon, one of the basic ideas that Tahui wanted to stress. Penetrating the harmful effects of Mochao Chan ?照禪 and Wentzu Chan 文字禪 that had prevailed in Chinese Buddhism, Tahui invented Ganhwa Seon in order to show the right way of practice for obtaining enlightenment. One of the important ideas that Tahui wanted to emphasize through Ganhwa Seon practice was ”the popularization of Seon.” His idea was then transmitted into Korea through Jinul. The second critical point was about the identity of the practice system of KGS. Today, the Jogye Order takes great pride in performing a virtual practice of KGS nationwide while preserving its practice tradition. However, how deeply do participants recognize the identity of KGS''s practice system? Based on the critical awareness above, a diachronic research about the change of KGS''s practice system since its introduction to Korea was performed. Oneof the key points articulated by the research was that KGS''s practice system has undergone major alteration depending not only on the political­cultural situation in China, but also on the domestic political situation in Korea and the political position of Korean Buddhism. Other significant changes came due to the acceptance of influential Seon texts. The former was by the exchange between Korean Buddhism and Mengshan Tei 夢山德異 (1231?~1308?), the latter was by Chanyao 禪要 of Kaofeng Yuanmiao 高峰原妙 (1238~1295). Changes in the KGS practice system also occur today, the representative case of which is Seung Sahn''s Kwan Um School of Zen 觀音禪宗. New attempts developing practice system may surely appear in Korean Buddhism in the future. Nonetheless, if the Jogye Order regards KGS''s practice system as a fixed type, impossible to change, the opportunities for KGS to expand its boundaries will be limited. In accommodating various practice systems of Ganhwa Seon, if Korean Buddhism shows the inclusiveness and flexibility presented in the history of Korean Buddhism, the popularization and globalization of KGS has a positive outlook. Thinking globally, then, should the Jogye Order devise any method in terms of the practice system that would make it particularly suitable for global export? To examine this question, the historical process by which European society could encounter and become interested in Buddhism was examined. After this, some methods to globalize KGS were suggested by analyzing its merits and obstacles for Buddhism gaining acceptance in Europe. Three conclusions about Europe''s interest and enthusiasm toward Buddhism were drawn as follows. First, Buddhism, which promotes people not only to depart from the dependent faith of Christianity but to pursue spiritual freedom and share in a deeper sense of common cause with humanity, appealed to Western people in the 19th century. It was Arthur Schopenhauer (1788~1860) who made the historic turning point in those days. Second, as the pro?rationalistic trend and scientific development prevailed in the same period, skepticism about the existence of God increased. In the meantime, Westerners found it possible to have a “Non?theistic religion” in Buddhism, so they showed great interest in Buddhism. While Charles R. Darwin (1809~1882) had a negative impact on the Christian faith with strong scientific evidence, Friedrich Nietzsche (1844~1900), his contemporary, did the same via philosophical theory. Third, as information technology rapidly developed, information exchange between East and West expanded. Due to this phenomenon, the trend regarding non?western values as being equivalent with the western ones became more prevalent than before in the West. KGS, analyzed in the context of the reception of Buddhism in Europe, can thus to be seen to have various merits: first, it has an inherently strong scholarly orientation second, it encourages people to experience spiritual/mental awakening originating from the respective inner being exuviating their dependent faith of Christianity third, it has useful factors that could sooth the individual mental loneliness and anguish rooted in the ills of individualism and capitalism prevailing in today''s Western society. Although there are diverse merits in KGS, various problems could be found as well. First, KGS places a somewhat excessive emphasis on investigating one hwadu 話頭 through life. The second is that the contents of hwadu are not suitable for other cultures, such that the development of new hwadus for the Western world is needed. Third, the tradition of the Master­Disciple Encounter System (Kr. ipsiljedo 入室制度), which is essential for practicing Ganhwa Seon, has become titular in Korean Buddhism. The model of a teaching mentor is authoritarian and unkind. In order to rectify these problems, it is required that the Jogye Order actively improve Ganhwa Seon corresponding to the Western context and the passage of time. Compared to the more recent efforts of the Jogye Order towards the popularization and globalization of KGS, Seung Sahn, as a single bhikkhu of the Jogye Order, had already achieved remarkable results in the worldwide propagation of his teachings since the mid­1960s. As a successor of the Deoksoong Dharma Lineage, following in the line of the masters Gyeonghuh Seongwu 鏡虛惺牛 (1849~1912), Mangong Wolmyeon 滿空月面 (1871~1946), and Gobong Kyongwuk 古峰景昱 (1890~1961), Seung Sahn emphasized the practice of Ganhwa Seon centered on the tradition of Patriarchal Seon. He carried on his lineage, which stressed putting Seon into practice by emphasizing a life practice that sublimates original mind into great benevolent mind through meditating on the hwadu, “Only don''t know.” Moreover, he pioneered the implementation of “the globalization of Seon” by expanding upon the Seon style originating from the thoughts of Gyeong Huh and Man Gong, who had also stressed “the popularization of Seon.” However, despite his contribution to the Deoksoong Dharma Lineage and the development of its teachings on a global scale, Seung Sahn''s Kwan Um School of Zen has been consistently undervalued within the Jogye Order. This is due to in particular to the introduction of the practice system of the Japanese Rinzai School, a practice system implemented specifically to aid global propagation. Given this, the similarities of between the practice system of the Kwan Um School of Zen and the Japanese Rinzai School were analyzed in depth leading to two interpretations about the meaning of Seung Sahn''s Kwan Um School of Zen. The first interpretation is that although the Kwan Um School of Zen introduced the practice system of the Japanese Rinzai School, this was seen as merely a tactic. It was the authentic Korean tradition that Seung Sahn really emphasized. The second interpretation argued that the Kwan Um School of Zen''s utilization of the Rinzai practice system can be interpreted as a holistic approach toward Seon Buddhism in East Asia, transcending national dimensions, specifically the attitudes of Korean monasteries in the heyday of medieval Buddhism. If this is the case, what characteristics do Seung Sahn''s practice system, called the Ten Gates (Kr. Sipmunkwan 十門關), and his teaching style have in terms of popularization and globalization of KGS? First, they are different from the KGS tradition that places emphasis on observing a single hwadu, adopting a method that observes a series of hwadus complementarily. They also have kongans 公案 (public cases) which contain modern content. In addition, not only did he emphasize the master''s authority, as stressed in Korean Buddhism, but also attempted to construct horizontal master­disciple relationships that can be accommodated for a western perspective. Above all, Seung Sahn restored the tradition of the Master­Disciple Encounter System, which became titular in the Korean Buddhist tradition, despite its importance in the whole tradition of Ganhwa Seon practice. Seung Sahn''s aforementioned attempts have significant merit in terms of their efficacy in the popularization and globalization of KGS, an effort the Jogye Order is ambitiously promoting today. Nevertheless, the colonial complexities of Korea have created in some a strong antipathy for any domestic tradition that has been influenced by Japan. Since the Kwan Um School of Zen, however, is also within the realm of Korean Buddhism, the problem of how Korean Buddhism could embrace Seung Sahn’s legacy remains as a task that Korean Buddhism needs to deal with. The unique accomplishment of Seung Sahn spread beyond his specific contributions to the propagation of Korean Buddhist tradition. With regard to the status of women in the sangha during his overseas propagation, he took unconventional moves, among which was the allowance of bhikkhunis to do dharma­teaching in front of bhikkhus. This also became the target of criticism in Korean Buddhism. However, over time, the question of "women''s equality" has become a normative concept any culture should universally abide by and therefore, his actions serve as a progressive push towards addressing the considerable task assigned to Korean Buddhism as it confronts the lingering pre­modern aspects of the tradition, particularly in terms of women''s equality. Judging from the perspective of globalization of KGS, in particular, such attitudes as Seung Sahn are a necessity in order for the tradition to properly adapt to the changing status of women status in the sang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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