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

한나 아렌트는 순수한 정치의 옹호자인가?

초록/요약

Is Hannah Arendt a partisan of pure politics? According to the most conventional interpretation, namely “a territorial reading” of Arendt, the answer is 'yes': Arendt endeavors to protect against the encroachment of the social onto the pure, proper realm of politics. This article, however, seeks to elucidate some of the possibilities of opposing arguments by exploring another interpretation of Arendt. To do this, I focus on Arendt’s works written in 1951-1958 regarded as the evidence to prove that she is a theorist of pure politics. Unlike territorial interpreters, I argue that Arendt’s politics cannot be pure even within these works. Chapter two seeks to work through her accounts of territorial distinctions in 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in 1951. By doing so, I assert that Arendt’s territorial formulations (the private realm versus the public realm; the natural life versus the political life, and so on) are not the principle of exclusion as the territorial interpreters say repeatedly. At first glance, to be sure, this book seems to coincide with the typical image of Arendt, the partisan of pure politics. In her reflection on “The Decline of the Nation-State and the End of the Rights of men,”for example, Arendt criticizes harshly the concept of human rights in 18th century justifying the equal rights of men by a biological birth; in opposition to this concept of rights, she argues that human beings can have rights only within the public realms which make their speech and action meaningful. From this, the critics of Arendt conclude hastily that she excludes some population who do not have the public realm from a possible range of holders of rights. This chapter, however, points out that Arendt’s claim that “the equal rights can be realized only within the public realm” does not necessarily follow that “only people who have the public realm can have equal rights.” Rather, Arendt suggests that every people can become equal holders of rights since they all have faculties for action, by virtue of natality. In chapter three, I deal with the transcript of Arendt’s lecture at Notre Dame University in 1954, “Socrates.” One might easily find her territorial formulations and conceptual dichotomies in this transcript: an anti-political philosopher Plato versus a pro-political philosopher Socrates, contemplation versus dialogue, singularity versus plurality, and so on. By making these dichotomies, Arendt resists the tradition of Western political thought since it has been anti-political from the outset, from the first political philosopher Plato; in opposition to this tradition, she suggests the image of the pro-political philosopher, Socrates, who lived in the past even before the beginning of this tradition and, unlike Plato, believed the political role of philosophers. In this chapter, however, I argue that this dichotomy cannot keep going in itself since Socrates’s position and that of Plato are not distinguishable in Plato’s works. Through my re-reading of Plato and Arendt, I suggest that this territorial distinction cannot be the main point of Arendt; it is rather a tentative hypothesis for her investigations to seek the possibility of new political philosophy. Chapter four focuses on The Human Condition in 1958. In this book, her territorial formulations and dichotomies have been nearly perfected; at the same time, she relates her dichotomized concepts to the other sides and deconstructs her dichotomies by herself. In chapter five of this book, “Action,” Arendt’s tone changes dramatically: before this chapter, as territorial interpreters argue, she writes to endeavor mainly to protect the inside of political realm from the encroachment of the outside; in this chapter, however, she suggests the self-destructive character of the political realm. In order to protect this realm from its self-destructive nature, Arendt appeals ultimately to the ontology of natality. What Arendt quotes here to explain her concept of natality comes from the Old Testament: “A child has been born unto us.”(Isaiah 9:6) From this quotation, Arendt’s territorial formulations are radically transformed: what is crucial here is not to protect the inside of political sphere from the outside threats, but to invite the intervention from the outside, “a child,” in order to protect the inside from its implosive tendency. This suggests that Arendt’s political realm is not a closed, vacuous space for pure politics; rather, it is always open to the challenges from outside and from an unknown future. Her political realm, therefore, can never be pure.

more

초록/요약

한나 아렌트는 ‘순수한 정치(pure politics)’의 옹호자인가? 아렌트를 옹호하건 비판하건 수많은 정치사상가들과 그녀의 주석자들은 이 질문에 대해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렌트에 대한 '영토적 독해'에 따르면, 그녀는 ‘진정한 정치적 경험’의 의의를 재단언하면서 정치적인 것의 오염되지 않은 고유한 공간을 확보하고자 하는 동시에, 그로부터 모든 비-정치적인 현상 내지 반-정치적인 현상들을 물리치고자 한다. 이 글은 이와 같은 아렌트에 대한 전형적인 이해와 그로부터 비롯된 비판들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고자 한다. 즉 아렌트를 ‘순수한 정치(pure politics)’의 옹호자로서 이해하는 “표준적인” 아렌트의 해석방식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과연 아렌트의 의의는 정치적인 것에 대한 위협과 외부로부터의 오염의 가능성에 맞서 ‘순수한 정치적 공간’을 방어하는 것에 불과한 것인가? 과연 그녀는 순수한 정치적 공간을 위해 특정한 정치적 주제나 일부 부류의 사람들을 정치에 대한 참여로부터 배제하고자 했는가? 과연 아렌트는 순수한 정치에 대한 열망 아래서 과거의 시대착오적 범주들을 오늘날에 재도입하려 했는가? 이 글은 이 질문들에 대한 부정적인 답변을 마련하고자 한다. 이 글은 흔히 이해되는 바와 같이 한나 아렌트가 과연 외부의 오염으로부터 ‘순수한 정치(pure politics)’의 공간을 방어하고자 했던 사상가인지를 되묻고, 그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고자 했다. 이러한 연구의 목적을 위해 이 논문은 아렌트를 영토적으로 해석하는 연구자들이 주로 참조하는 1951년부터 1958년까지의 아렌트의 저작들을 주로 참고했다. 이 글은 아렌트가 순수정치의 이론가가 아님을 논증하기 위해 1951년, 1954년, 1958년의 글을 차례로 검토하면서 세 가지 차원의 주장을 펼쳤다. ①영토적 공식은 배제의 원리가 아니다: 이 글의 2장은 1951년에 출간된 그녀의 최초의 이론적 저작이라고 할 수 있는 『전체주의의 기원』을 다뤘다. 이 시기 아렌트의 글은 얼핏 우리가 그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순수 정치’의 이론가라는 통상적 이미지에 잘 부합하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민족국가의 쇠퇴와 인권의 종언」에서 그녀는 ‘출생’으로부터 인간의 평등한 권리를 정당화하는 18세기의 인권 개념을 비판하며, 인간은 자신의 말과 행위가 의미를 가지는 공적인 공간 안에서만 평등한 권리를 가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렌트에 대한 많은 비판가들은 이 주장이 ‘공적 공간’을 가지지 못한 자들을 가능한 권리의 담지자들로부터 배제하는 주장이라고 공격한다. 그러나 필자는 ‘평등한 권리가 공적인 공간 안에서만 실현가능하다’는 주장이 반드시 ‘공적인 공간 안에 있는 사람만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오히려 아렌트는 ‘탄생성’ 개념을 중심으로 모든 인간의 정치적 행위 능력을 인정하고 있으며, 모든 인간이 권리의 담지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내고자 했다. ②영토적 공식은 지탱될 수 없다: 3장에서는 1954년 노트르담 대학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뤄진 강의록을 정리한 「소크라테스」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분석했다. 이 강의록에서는 아렌트가 설정한 ‘소크라테스 대 플라톤’의 대립 안에서 그녀 특유의 ‘영토적 공식’들과 ‘개념적 이항대립’이 잘 나타난다. 아렌트는 플라톤으로 시작되는 서구 정치철학의 ‘반정치적 태도’를 거부하며, 전통 이전의 과거로 소급해 올라가 소크라테스라는 ‘친정치적 철학자의 이미지’를 내세운다. 그러나 필자는 플라톤의 텍스트에 대한 재독해를 통해, 아렌트의 주장처럼 친정치적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반정치적 철학자 플라톤을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보였다. 이를 통해 필자는 소크라테스도, 플라톤도, 아렌트도 반정치와 친정치의 이분법 사이에서 어느 방향으로든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논증했다. 하지만 이 구분들은 이 강의록 안에서 잘 지탱되지 않고 스스로 무너지는 경향을 보여준다. 필자는 아렌트가 이러한 초보적인 수준의 비판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 리가 없다고 믿는다. 필자는 이분법에 과도하게 주목하게 될 경우 아렌트의 사상을 형해화시키게 될 우려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 뒤,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을 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아렌트의 ‘영토적 공식’들과 ‘이항대립’들을, 최종적 결론보다는 새로운 정치철학의 실험을 위해 잠정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하나의 ‘가설’로 여기자고 제안했다. ③공적 영역은 개방적인 공간이다: 4장에서는 1958년의 저작인 『인간의 조건』을 다룬다. 1958년 『인간의 조건』에 이르면 아렌트의 ‘영토적 공식’과 ‘이항대립’이 완성 단계에 이르지만, 동시에 아렌트는 개념들 간의 상호연관을 보여주거나, 이 구분을 스스로 무너뜨림으로써 ‘정치적 공간’을 보다 외부나 미래로부터의 도전에 개방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필자는 특히 ‘행위’를 다루는 5장에서 아렌트의 영토적 공식이 급격하게 전환되는 부분에 주목했다. 이제까지 아렌트는 정치(내부)와 비정치(외부)의 대립을 강조했지만 여기서는 정치가 가진 자기붕괴적인 경향을 지적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아렌트는 무엇이 행위의 자기파괴성으로부터 정치를 위한 공간을 지켜주는가에 대해 논의한 뒤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탄생성(natality)’ 개념에 호소한다. 아렌트가 인용하는 것은 “한 아이가 우리에게 태어났도다”라는 성경 구절이다. 아렌트는 이 탄생성 개념을 “세계를 그것의 정상적이고 자연적인 황폐화로부터 구원하는 기적”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 탄생성 개념에 대한 설명과 함께 아렌트의 영토적 공식들은 급진적으로 전환되기 시작한다. 이제 외부의 오염으로부터 정치적 공간의 내부를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부의 자기파괴적 경향을 막기 위해 오히려 외부로부터의 ‘새로움’을 요청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아렌트가 옹호하는 정치적 공간이 ‘순수 정치’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외부와 미래로부터의 도전에 적극적으로 답하는 개방적인 공간임을 드러내준다.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