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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일보(大衆日報)의 성격에 관한 분석적 연구 : 신탁`단독정부수립 논란에 대한 대중일보의 보도성향을 중심으로

초록/요약

<대중일보>는 인천 지역신문의 효시로 평가받으면서,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다. 특히 해방 직후 인천은 개항장이 입지해 있는 등의 영향으로, 시민들의 문화 의식이나 실업가들의 경제력이 서울이나 다른 도시를 능가할 정도로 상당한 수준에 있었고, 많은 문인들이 활동했다고 기록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기반으로 한 <대중일보>는 그 존재만으로도 관심의 대상이 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해방 이후 인천지역에서 처음으로 발행된 일간신문인 <대중일보>의 경우 이 같은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동안의 <대중일보>에 대한 연구는 <대중일보>의 기사를 소재로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내용에 국한되고 있다. 해방 직후 인천지역에서 발행된 첫 일간신문인 <대중일보>가 발간된 지 65년째인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중일보> 구성원과 구성원의 정치적 성향, 그리고 <대중일보> 보도내용의 정치적 성향 등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유감스럽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본고에서는 <대중일보>의 창간 초기 구성원과 구성원의 성향 등을 살펴봤다. 또 <대중일보>의 정치적 성향을 분석하고, 당시 시대적 배경은 무엇이었는지 파악하고자 했다. 본고는 <대중일보> 창간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구성원, 보도성향 등에 대해 분석하는 것을 주된 연구과제로 삼았다. 창간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구성원들의 성향은 문헌상 기록에 의존해야 했다. 분석시기는 신탁논란이 있었던 1945년 12월부터 1946년 1월 사이, 그리고 단독정부 수립 논란이 있었던 1948년 4월부터 1948년 5월까지였다. 연구결과 <대중일보>는 창간 당시 진보 혹은 좌익적 성향의 인사들로 구성돼 있었지만 신탁논란, 단독정부 수립논란 모두 보수 혹은 우익적 성향의 보도내용을 가진 것으로 분석됐다. 이 같은 창간 당시 <대중일보> 구성원들의 성향과 보도성향이 차이가 나는 주된 원인으로는 우선 <대중일보> 내부적 요인으로 편집국장 엄흥섭 등 창간 초기 주요 구성원의 이탈 등이 원인으로 분석됐으며, 외부적 요인으로는 미군정하에서의 보수 혹은 우익 성향의 정책이 원인으로 분석됐다. 이번 연구는 해방 이후 발행된 인천지역 첫 신문인 <대중일보>의 구성원들의 성향과 보도 성향 등에 대해 일부나마 규명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기록 등의 부족으로 <대중일보>의 구성원에 대한 완벽한 접근이 어려웠다. 또 <대중일보> 발간시기 전체를 연구대상으로 삼지 못한 점, 당시의 <대중일보>가 현재의 인천지역 언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점 등에 대한 연구로 이어지지 못한 점 등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번 연구가 인천 지역신문의 역사를 이해하고 체계화 하는데 본 연구가 일정부분이나마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후학들의 지역언론역사 분야에 대한 활기찬 연구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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