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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정치 개혁론 고찰

초록/요약

본 논문의 목적은 정약용의 정치 개혁론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데 있다. 정약용은 당시 국가 상황을 총체적인 위기 상황으로 규정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였다. 이를 위해 그는 유배지에서도 방대한 양의 저서를 남겼다. 본 논문에서는 그 중에 사서연구를 중심으로 정약용의 사상을 고찰하였다. 정약용의 정치 개혁론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크게 세 측면, 인간론, 정치론 통치 체제론으로 나누어보았다. 우선 인간론의 측면에서 정약용 사상의 가장 큰 특징은 실천을 강조했다는 데 있다. 그는 인의예지와 같은 덕성이 인간 본성에 내재되어 있다는 성리학적 인간관을 버리고 실천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본다. 위인(爲仁)에 대한 강조가 대표적이다. 그는 ‘인’을 두 사람 사이의 관계로 보고 이 속에서 인륜을 실천하는 것이 위인이라고 보았다. 인과 같은 덕목은 개인의 수양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닌 사회적 행위를 통해 이루어야 하는 결과물이라고 본 것이다. 이는 곧 산림처사들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정약용은 선비의 역할은 벼슬에 올라 나랏일을 담당하는 것이라고 본다. 산림처사들은 이 사회적 책임, 즉 정치에서 감당해야할 부분을 도외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정치의 의미도 이전과는 다른 차이를 갖는다. 성리학에서 정치란 개인의 수양 영역을 포괄하는 윤리적 행위를 일컫는 것이었다면 정약용에게 정치란 실제적인 통치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무위지치(無爲之治)에 대한 비판도 이와 동일한 입장에서 출발한다. 군주는 실제적인 통치자로서 정책을 입안하고 구현해야할 의무를 가진, 정치의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존재이다. 그 결과 정약용은 왕권중심의 통치 체제론을 주장한다. 강력한 왕권이 있어야만 제대로 된 정치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고적제(考績制)를 주장한다. 이는 일종의 관리 평가제로 관리의 전횡을 막기 위한 장치였다. 그 밖에도 왕을 중심으로 관직 체제를 재편하고자 하였으며, 국가의 행정구역도 중앙 정부를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약용의 정치 개혁론이 갖는 가장 큰 특징은 정치를 개인의 윤리로부터 구별되는 독자적인 영역으로 사유했다는 데 있다. 이는 근대적 의미의 정치학과 상통하는 부분이다. 이와 함께 몇 가지 한계성도 지적할 수 있다. 정치적 주체로 군주를 설정하고 국왕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권위주의적 정부를 구상한 결과 백성은 사회 개혁의 주체로 등장할 수 없었다. 또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데 집중한 나머지 군주의 독단적 통치를 막을 수 있는 제도를 소홀히 한 것은 정약용의 정치 개혁론이 갖는 한계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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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요약

This study aims to critically examine Chung Yak-yong's theory on political reform. He stipulated that Chosun dynasty was in total crises, and sought to find out the solution for the situation. His extensive works in exile period were situated in this context. His study on Four Books(四書) is the main focus of this study among others, and I discussed three different topics in his thoughts to carry out a comprehensive analysis; his theory of human nature, political theory, and theory of governmentality. First, the most notable feature in his theory on human nature is the big emphasis on practice. Ethical attributes(仁義禮智) are thought to be achieved through practice, and this view is in conflict with the perspective of Neo-Confucianism which argues that four ethical attributes are inherent in human nature. The practice of In(爲仁) is the most representative concept in this regard. He saw 'In' as a relationship between two people. The practice of humanity on this relation was argued to be the process of realization of In(仁). In is not achieved by the practice of self cultivation in his theory of human nature. Second, Chung thought that the scholar(士)'s role is to perform the works for the government; from this perspective, the scholars in hermitage abandons their obligations. In this context, the meaning of politics changes especially when we compare it with that of the past. In Neo-Confucian thought, ethical acts including self cultivation formed the area of the political. On the contrary, Chung perceived that concrete governing activities were the acts of politics. He regarded that the sovereign, who held the responsibility for policy design and implementation, was the prime political being. Chung Yak-yong thus argued for a system of government by a powerful sovereign, which was perceived to enable the realization of the proper politics. To offer a practical system, he suggested a system for the evaluation of bureaucrats(考績制), which was an institutional device to prevent government officials from abusing their authority. In addition, he intended to reorganize the government office system and administrative divisions to reinforce the sovereign power. The most significant characteristic of Chung Yak-yong's thought lies in his attempt to construct the area of the politics independently from the area of the personal ethics. This way of thought corresponds to that of the modern political theory. His theory is limited in certain points as well though. He set the sovereign as the subject of politics and planned for an authoritarian government in which the political power was concentrated on the sovereign. This political structure prohibits the people to become the subjects in social reform. Moreover, as his main focus was on the empowerment of sovereign, it was inevitable for him to be relatively negligent in devising an institution that would control the exercise of dogmatic government by the sovere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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