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의 코나투스 이론에 관한 연구
- 주제(키워드) 서양근대철학 , 스피노자 , 코나투스
- 발행기관 서강대학교 일반대학원
- 지도교수 강영안
- 발행년도 2010
- 학위수여년월 2010. 2
- 학위명 박사
- 학과 일반대학원 철학과
- 실제URI http://www.dcollection.net/handler/sogang/000000046038
- 본문언어 한국어
- 저작권 서강대학교의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초록/요약
이 논문의 목적은 코나투스 이론을 통해 스피노자의 철학을 통일적으로 이해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모든 개체가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려는 경향을 본질로 갖는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주장에 기초해 심리학, 정서론, 덕론, 정치학을 포함한 그의 철학 체계를 구성해 낸다. 이런 맥락에서 스피노자의 코나투스 이론은 그의 정념론과 정치학 및 도덕론 전체를 아우르는 단일한 출발점을 이룬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스피노자의 코나투스 이론은 여러 비판과 논란의 원천이기도 하다. 코나투스 이론에 대한 비판은 한편으로 ‘코나투스’와 ‘욕망’ 개념의 애매성 및 비일관성의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다른 한편으로 능동에서 수동으로의 이행 및 덕윤리학의 가능성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본 논문에서는 스피노자의 전기와 후기 저작에 나오는 ‘코나투스’, ‘욕망’, ‘덕’ 개념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이런 문제들에 답함으로써 스피노자 철학과 관련된 오해와 혼동을 제거하고자 한다. 예비적인 논의인 제 1장에서는 스피노자의 초기저작에 나오는 코나투스 개념을 데카르트와 홉스의 코나투스 개념과 비교할 것이다. 이를 통해, 스피노자가 데카르트와 홉스의 코나투스 개념을 이론적 자양분으로 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코나투스에 동력학적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데카르트의 운동학적인 코나투스 개념을 넘어서 있으며, 코나투스 개념을 정신과 신체 모두에 적용함으로써 코나투스 원리의 전면적 적용이라는 홉스의 기획을 급진화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줄 것이다. 제 2장에서는 코나투스가 어떤 성격의 것인가라는 문제를 다룬다. 알퀴에는 스피노자가 코나투스에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경향과 더 나은 상태에 이르려는 경향이라는 이중의 성격을 부여하고 있지만, 코나투스는 스피노자에게 관성의 원리와 유사한 것이기 때문에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경향 이상의 것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비판에 답하기 위해, 먼저 코나투스와 관련된 <에티카> 3부 정리 6의 의미를 분석하고, 이로부터 자기보존노력은 그 자체로 보면 어떤 결과를 생산하는 인과적인 힘이지만 외부 원인과의 관계에서 보면 존재를 보존하려는 경향이나 노력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낼 것이다. 이는 자기보존노력이, 관성의 원리처럼, 현재상태를 유지하는 소극적 기능 뿐만 아니라 외부 영향에 반응하는 적극적인 기능을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따라서 코나투스가 현재상태를 유지하는 경향과 다른 것이 아니라는 알퀴에의 주장은 스피노자의 주장에 대한 오독에 기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제 3장에서는 코나투스의 이러한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기능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을 다루고, 이를 통해 라몽과 알퀴에의 문제제기에 답할 것이다. 라몽은 스피노자에게 힘은 가변적인 것인 반면, 본질은 불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힘과 본질의 동일성 논제가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라몽은 이로부터 스피노자의 철학 안에 본질을 보는 두 관점, 즉 정량적 관점과 질적 관점이 혼재하며 이 둘은 긴장관계에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라몽의 이러한 비판에 대해 나는 스피노자의 본질관에 긴장관계란 없다는 점을 보여줄 것이다. 이를 위해, 쟁점이 되는 라틴어 문구인 ‘ratio motus et quietis'의 의미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고 이를 통해, 라몽과 달리, 그 문구가 ‘운동을 전달하는 항상적인 관계들의 총체’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이처럼 ‘운동과 정지의 관계’가 비정량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개체의 본질은 더 이상 불변하는 것으로 간주될 필요가 없게 되며, 개체는 운동전달의 항상적인 패턴이 유지되는 한 개체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조그만 변화에도 개체가 개체성을 상실하는 문제에 빠지지 않게 된다. 따라서 힘과 본질의 동일성 논제가 개체를 이해불가능하게 만든다는 라몽의 비판은 설득력을 잃는다고 할 수 있다. 3장에서 다루는 두 번째 문제는 수동에서 능동으로의 이행의 가능성 및 그 조건의 문제이다. 알퀴에는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정신의 능동상태에 상응하는 신체상태는 무엇이며 그런 상태가 실현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이에 답하기 위해, <에티카> 2부 정리 13과 정리 14 사이에 나오는 ‘자연학적 소론’의 복합 물체에 대한 논의를 참조할 것이다. 이를 통해, 먼저, 그러한 이행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적합 관념의 인식이 필요하며, 다음으로 이런 적합관념의 인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최소 조건으로서의 운동과 정지의 관계의 보존과 최대 조건으로서의 변이성과 자립성의 획득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줄 것이다. 제 4장에서는 욕망 개념의 애매성 문제를 다룬다. 스피노자의 욕망 개념은 네 가지 관점에서 서로 다르게 규정될 수 있기 때문에 이들 간의 관계를 어떻게 통일적으로 이해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한 스피노자의 입장을 다음처럼 정리할 수 있다. 1)자기보존욕구로 정의되는 형이상학적 욕망개념이 가장 일반적인 수준에서 욕망의 성격을 규정한 것이라면, 일차적인 정서로 분류되는 정서적 욕망개념은 덜 일반적이고 구체적인 조건과 관련해서 욕망의 성격을 규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형이상학적 욕망개념은 정서적 욕망개념보다 논리적으로나 발생적으로 앞서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2)인간 심리학적인 욕망 개념은 생물학적 요인이나 문화적 요인과 관련해서 욕망의 성격을 규정한 것이다. 반면 형이상학적 욕망 개념은 가장 일반적인 수준에서 욕망의 성격을 규정한 것이다. 따라서 인간 심리학적 욕망 개념은 형이상학적 욕망 개념을 구체화하고 풍부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두 욕망 개념은 상충하거나 모순된다기보다는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3)가치론적 관점의 욕망은 ‘기쁨[과 그것에서 파생되는 정서들]의 원인을 지속하고 강화하려는 노력’이자 ‘슬픔[과 그것에서 파생되는 정서들]의 원인을 피하거나 제거하려는 노력’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는 대상의 유용성에 대한 판단에 후속한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 가치판단의 기준은 유용성이라고 할 수 있다. 4)가치론적 욕망개념은 정서적 욕망개념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기쁨의 원인을 지속하고 강화하려는 노력이나 슬픔의 원인을 피하거나 제거하려는 노력은 자기보존 노력이 구체적인 조건과 관련해서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규정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제 5장에서는 스피노자의 덕 윤리학과 정치학간의 긴장관계라는 쟁점을 다룬다. 마라는 스피노자의 덕이론이 정념의 영향에서 벗어나는데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의 정치학 역시 윤리적 목표에 도달하는데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마라에 따르면 덕은 능동적이고 자율적인 것이기 때문에 가르칠 수 없는 것인데 반해, 법과 규칙은 가르칠 수는 있으나 수동적인 것이기 때문에 윤리적 완성과는 무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라의 비판에 답하기 위해 <에티카>의 덕 개념을 분석할 것이다. 이를 통해, 스피노자에게 덕이 능동적인 힘의 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실질적인 힘으로서의 덕과 인간 본성의 전형(exemplar)을 모방하고 체화하는 행위로서의 덕으로 나누어질 수 있으며, 후자는 인간을 더 큰 완전성으로 이끌어준다는 점에서 정념의 영향에서 벗어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줄 것이다. 또한 유해한 정념의 효과가 정치사회적인 제도들을 통해 제거되거나 완화될 수 있기 때문에, 이성적 요구를 일상적 삶에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매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마라의 비판은 스피노자의 덕이론과 정치학의 중요성에 대한 몰이해에 기인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상의 논의로부터 스피노자의 코나투스 이론에 대한 비판은 대부분 ‘코나투스’, ‘욕망’, ‘덕’ 개념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며, 따라서 코나투스 개념에 대한 통일적이고 일관된 이해가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스피노자의 존재론은 역관계(力關係)의 일반 모델(modèle général du rapport de forces)을 함축하기 때문에 코나투스 이론에 대한 보다 완결된 논의를 위해서는 역관계 모델에 입각한 스피노자의 정서론, 인간론, 국가론의 재구성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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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im of this dissertation is to make the philosophy of Spinoza intelligible by understanding his conatus doctrine. Arguing that everything has a tendency to preserve its existence as its nature, Spinoza constructs his philosophical system including psychology, theory of emotion, theory of virtue, and politics based on this thesis. In this context, Spinoza’s conatus doctrine can be said to be the unique starting point that entirely encompasses the theory of passion, politics, and ethics. Howerver, it is also the source of various criticisms and controversies. On the one hand, criticisms against his conatus doctrine focus on the vagueness and inconsistence of the concept of ‘conatus’ and ‘desire’, on the other hand, it is related to the issue of shift from active state to passive state, and of the possibility of virtue ethics. In this dissertation I intend to do away with the mis-conception and confusion related to Spinoza’s philosophy by answering such questions through the analysis of the notion of ‘conatus’, ‘desire’ and ‘virtue’ seen in his early and late works. In Chapter one which is the preliminary account, I compare the notion of conatus in Spinoza’s early works with that of Descartes and Hobbs. Through this, I shall show that though Spinoza refers to the notion of conatus of Descartes and Hobbs, his notion goes beyond the kinematicof conatus suggested by Descartes by endowing it with a dynamic meaning, and radicalizes the project of Hobbs that intended to apply the principle of conatus in every place by applying it both to body and mind. In Chapter two, I consider the nature of conatus. Alquié claims that even though Spinoza attributes conatus to the dual property(the tendency to maintain its current state and that to reach to a better state), Spinoza’s conatus is in its essence similar to the law of inertia so that it is no more than the tendency to maintain its current state. To suggest an answer to this criticism, I shall analyze the meaning of the proposition 6 in part 3 of Ethica, which is related with the notion of conatus, and by this, I shall draw out the conclusion that while the effort to preserve itself is the causal power to produce an outcome seen from its own perspective, it bears the meaning of the effort or tendency to preserve its existence seen from the relation with other exterior factors. This suggests that the effort to preserve itself functions not only as a negative principle to maintain its current state but also as a positive principle to respond to external cause Therefore, Alquié’s argument that Spinoza’s conatus is nothing other than the tendency to maintain the current state can be said to be grounded on the misreading of Spinoza’s argument. In Chapter three, I discuss the condition that enables the positive and dynamic function of conatus and answers the question raised by Ramond and Alquié on the basis of this. Ramond asserts that since power is, for Spinoza, variable, while essence is invariable, there cannot be the thesis that power is identical with essence. From this, Ramond draws out the conclusion that there are mixed two perspectives to see essence in Spinoza’s philosophy, which include respectively quantitative perspective and qualitative perspective, and that there is a tension between the two perspectives. Against this criticism suggested by Ramond, I retort that there is no tension in Spinoza’s conception of essence. For this, I attempt to analyze the meaning of the Latin phrase ‘‘ratio motus et quietis", which is an issue here, and through this, I show that this can be interpreted as having the meaning of "the ensemble of the constant relations according to which the parts of any complex body pass their movement on to each other", unlike the interpretation of Ramond. Since ‘relation of motion and rest’ can be interpreted as a non-quantitative meaning, the essence of individual should not be necessarily deemed to be invariable any longer; moreover, since the individuality can be maintained as long as the constant pattern of motion transfer is maintained, the issue that an individual loses its individuality upon tiny variation cannot be raised. Therefore, Ramond’s argument that power-essence identity thesis prevents the understanding of an individual has no ground on which it can be sustained. The second issue addressed in chapter three is about the possibility of shift from active state to passive state and its condition. Alquié poses a question of what is the physical state correspondent to the active state of mind and what is the condition under which such a state can be realized in Spinoza’s philosophy. To answer this question, I shall discuss the account of the complex body of ‘Physical Digression’ seen between the proposition 13 and 14 in part 2 of [Ethica]. Through this, I shall show that in order for such a shift to be possible, it is necessary to know adequate ideas and then that for the recognition of such adequate ideas to be possible, it is necessary to preserve the relation of motion and rest as a minimum condition and to obtain variability and independence as a maximum condition. In Chapter four, I consider the vagueness of the concept of ‘desire’. As the concept of desire in Spinoza can be determinded differently from the four perspectives, the question of how to understand the relation between these can be raised. The position of Spinoza in relation to that question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1) If the metaphysical conception of desire defined as the self-preservatory desire is the conception that clarifies the nature of desire at the most generalized level, the emotional conception of desire classified into a primary emotion is the conception that spells out the nature of desire in relation to less generalized and more specific condition. Thus, the metaphysical conception of desire can be said to be prior to the emotional conception of desire both logically and genetically. 2) The psychological conception of desire is the conception that defines the nature of desire in relation to the biological and cultural factors. By contrast, the metaphysical conception of desire characterises the nature of desire at the most generalized level. Therefore, The former can be said to the more specified and richer form of the latter. For this reason, the two conceptions of desire are complementary rather than conflicting or contradictory. 3) The desire seen from the axiological perspective can be understood as the effort to maintain and reinforce the cause of joy [and other emotions derived from it] and the effort to avoid or remove the cause of sorrow [and other emotions derived from it]. This is followed by the judgment on the utility of objects. Therefore, the criterion for value judgment in its strict sense is utility. 4) The axiological conception of desire can be said to be included in the emotional conception of desire. That is to say, the effort to maintain and strengthen the cause of joy or to avoid or remove the cause of sorrow is the effort that is determined in various ways in relation to specific condition. Finally, In chapter five, I consider the tension between virtue ethics and politics of Spinoza. Mara asserts that Spinoza’s theory of virtue not merely fails to help one to divorce himself or herself from the influence of passion, but his politics has no power to lead one to reach an ethical goal either. This is because, argues Mara, while virtue is not something that can be taught because of its active and autonomic nature, law and rule have nothing to do with ethical perfection as they are something to be followed passively though they can be taught. To present an answer to this criticism, I analyze the notion of virtue in [Ethica]. By this, I show that for Spinoza there are two types of virtue: one as a substantial force that enables the exertion of active force and the other as an act to imitate and embody the typical example of human nature. I show that, the latter sense of virtue can play a significant role in allowing one to be free from the passion in the sense that it can lead a human to higher perfection. Also, because harmful effect of passion can be mitigated or removed by means of socio-political institutions, in order to realize the demand from reason in everyday life, ‘political mediation’ is essentially required. Thus, Mara’s criticism can be said to be due to his misunderstanding about Spinoza’s theory of virtue and the significance of his politics in understanding that theory. From the discussion above, it can be concluded that in most cases the criticisms against Spinoza’s conatus doctrine stem from the misunderstanding of his notion of ‘conatus’, ‘desire’, and ‘virtue’, so it is possible to acquire the unificatory and consistent understanding of such notions. But, because Spinoza’s ontology implies the general model of force relation (modèle général du rapport de forces), for the complete discussion of his conatus doctrine, it is needed to reconstruct his theory of emotion, human and State based on the model of force rela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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