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삼 시의 죽음의 수사학 연구 : 기도와 애도의 수사학을 중심으로
A Study of Rhetoric on Death in Kim Jong Sam's Poetry
초록/요약
이 논문의 목적은 김종삼 텍스트가 지닌 죽음과 상실에 대한 감각이 어떠한 수사적 양상을 통해 드러나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또한 김종삼 텍스트를 상실된 세계에 대한 대응양상으로서 이해하고, 세계를 향한 적극적인 담론화 과정이 갖는 텍스트적 의의를 밝혀보고자 한다. 김종삼 텍스트는 죽음과 상실에 대한 문제에 끊임없이 천착한다. 다양한 텍스트적 반응을 통해 드러나게 될 그것은 상실된 대상을 어떻게 다시 불러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즉 표상의 문제이다. 김종삼 텍스트는 표상 행위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텍스트가 지닌 상실에 대한 감각은 필연적으로 언어에 대한 감각을 통해서만 드러날 수 있다. 이렇듯 상실에 대한 텍스트적 반응은 표상의 문제를 통해 다변화된다. 그것은 크게 상실된 대상을 향한 표상의지의 유무를 통해 나눠지며, 더 나아가 표상에 대한 믿음 혹은 불신의 차원으로 나눠진다. 그것이 이 논문에서 다루고자 하는 기도의 수사학과 애도의 수사학이다. 이러한 수사학적 고찰을 통해 우리는 김종삼 텍스트가 지닌 세계에 대한 인식의 확장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김종삼 텍스트는 상실된 대상이 복원될 것이라는 믿음을 유지하면서도 또한 불신의 차원으로 드러나기도 하는 것이다. 이것은 상실된 세계에 대한 다양한 대응 태도이면서, 또한 부단한 언어적 고민의 결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김종삼 텍스트에 드러나는 상실에 대한 감각은 비유의 수사를 통해 확인해볼 수 있다. 의사소통을 통한 동일성의 확장을 꾀하는 설득의 수사와 대비되는 그것은 상실된 대상을 향한 담론의 형태라 할 수 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대상은 비유의 형태를 통해서만 말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비유의 수사를 통해 김종삼 텍스트는 상실 이전의 죽음의 공간을 그리고 있다. 그것은 텍스트가 지닌 상실에 대한 감각을 드러내주면서 또한 현실적 공간이 지닌 의미와 가치의 부재를 말해준다. 다시 말해 김종삼 텍스트에 드러나는 비유의 수사는 상실된 공간을 향한 텍스트적 욕망을 드러내주는 것이다. 김종삼 텍스트에서 현실적 공간은 오히려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공간으로 그려진다. 현실적 공간은 상실된 의미와 가치를 물질화함으로써 상실을 부인한다. 그것을 통해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물질을 통해 상실을 비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실적 공간에서 설득의 수사는 비유의 수사가 되어버린다. 김종삼 텍스트에서 설득의 수사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된다. 그러나 이 가치의 물질화를 통해서도 비유될 수 없는 상실된 것은 소극적 물질성으로 남는다. 그것은 적절히 표상되어질 수 없다. 김종삼 텍스트는 이 소극적 물질성에 대한 감각을 수사적 차원에서 드러내려 하고 있는 것이다. 소극적 물질성은 일종의 ‘쇼즈’라고 할 수 있다. 크리스테바는 쇼즈에의 집착을 멜랑콜리 환자의 특성으로 본다. 멜랑콜리는 담론을 거부한다. 그 상실된 공간에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김종삼 텍스트의 특성으로 볼 수 있을 그것은 그러나 결코 담론을 통해 드러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김종삼 텍스트는 멜랑콜리의 특징들을 보여주지만 텍스트에 표상되고 있는 것들은 김종삼 텍스트가 상실된 대상이라 짐작하고 있는 현실적 표상물일 뿐이다. 이 상실된 대상은 텍스트적 주체가 짐작할 수조차 없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김종삼 텍스트는 멜랑콜리 환자의 것으로 볼 수 없다. 그러나 김종삼 텍스트에 드러나는 멜랑콜리의 특성들은 멜랑콜리 상태로부터 벗어난 텍스트적 주체의 담론화 과정에 대해 말해 줄 수 있다. 멜랑콜리 상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상상적 아버지와의 동일시를 통한 담론화 과정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은 상징계적 질서로 편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상징계적 공간은 그러나 김종삼 텍스트에게는 고통의 공간이다. 이 동일성의 공간은 마치 죽음의 공간과 같다. 김종삼 텍스트에서 이러한 공간은 타자를 허락하지 않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 밀폐된 공간으로 그려진다. 동일성의 주체는 스스로에게 완전한 자유를 선사하지만, 영원한 현재에 놓인 물질적 존재로서 자신에게 얽매인다. 이렇듯 동일성의 공간 또한 멜랑콜리와 같은 담론이 부재하는 공간이다. 멜랑콜리와 정반대의 상태를 보여주면서도 비슷한 면모를 지니는 것이다. 하나의 공간은 다른 하나의 공간에 완전히 단절되어 있고, 그렇기에 다른 공간에 대한 감각을 보유하지 못하며, 자신으로의 끊임없는 회귀를 보여준다. 이 부정성의 공간은 상실을 부인하는 것이다. 상실에 대한 인식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실된 대상을 향한 담론화의 과정으로 나아가지도 못하는 것이다. 멜랑콜리 상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언어 체계를 습득해야 하듯이 동일성의 주체가 지닌 얽매임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타자에 대한 인식이 선행해야 한다.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시간은 흐르고 미래는 가능하다. 김종삼 텍스트는 이러한 동일성의 공간이 지닌 담론 불가능의 상태를 비판하고 있으며, 존재의 물질성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끊임없이 상실된 타자에 대한 감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종삼 텍스트가 지닌 소극적 물질성에 대한 감각은 어떻게 담론화 과정 속에서 드러날 수 있는가. 상실을 부인하거나 그것을 물질화시키지 않으면서 어떻게 상실을 표상해낼 수 있는가. 이러한 물음에 김종삼 텍스트가 답하는 첫 번째 반응은 믿음의 담론이다. 그것은 기도의 수사학으로 드러난다. 현실적 공간에 놓인 존재와 외재성으로 놓이는 절대적 타자 사이에 이어진 반복된 대화라 할 수 있을 이것은 은유와 같은 과정으로 드러난다. 즉 절대적 타자로서의 원관념과 현실적 주체의 보조관념으로 이루어진 은유의 구조를 띤다. 이것은 잘 알지 못하는 것, 표상할 수 없는 것을 잘 아는 것, 표현될 수 있는 것을 통해 은유해내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절대적 타자를 현실적 주체의 언어를 통해 드러내려는 이러한 욕망의 수사학은 상실된 가치와 의미를 담보한 존재인 절대적 타자를 현실적 주체 앞에 현존케 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반복된 행위 속에서 상실의 복원에 대한 믿음을 명확히 하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현실적 공간에 얽매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텍스트적 주체와 절대적 타자는 합일되는 것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들의 관계는 대칭성의 관계가 아닌 비대칭성의 관계로 존재한다. 이것은 서로의 마주봄이다. 그것은 동일성의 관계를 피하고자 하는 것이다. 절대적 타자는 현실적 주체에게 존중과 환대의 대상이고 또한 주체의 조건 없는 내어줌을 통해서만 가능한 대상이다. 이러한 간극이 은유를 가능케 한다. 또한 이러한 바라봄을 통해 비로소 자기와의 관계에서 벗어나 타자에 대한 관계로 나아가는 것이며, 그것을 통해 물질적 주체의 초월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기도의 수사는 의도와 상관없이 타자에 대해 폭력을 저지른다. 그것은 기도의 수사가 추구하려는 것을 스스로 위반하는 것이다. 즉 말해질 수 없는 대상을 말함으로서 그 대상을 규정하고 포획하게 되는 것이다. 언어의 그물 안에 대상을 고착화시키는 것이다. 그것을 피하기 위하여 기도의 수사는 절대적 타자에 대해 말하는 것을 멈출 수밖에 없다. 즉 말해질 수 없음에 대해 아는 것이다. 기도의 수사는 결국 비수사적인 것이 된다. 비수사적 차원에서만 기도의 수사는 말해질 수 있다. 말할 수 없음의 말함이다. 이것은 타자를 표상함으로써 타자에 대해 폭력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현실적 주체로서의 자신을 인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표상불가능성의 깨달음은 애도의 수사학으로 나아가게 한다. 보류 없는 수사학으로서의 애도의 수사학은 초월적 보류를 행하는 기도의 수사학과 달리 소극적 물질성에 대한 감각을 담론적 차원에 기입시킨다. 또한 기도의 수사학이 결국 비수사적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동일성의 효과를 드러낸다면, 애도의 수사학은 이러한 동일성의 사유 속에서 배제당한 타자에 대한 감각을 담론 안에서 찾는다. 타자는 동일성의 감각에 균열을 일으키는 것이고, 그것의 의도를 벗어나는 것이다. 그것은 담론 밖에 놓이는 것이 아니라 담론 안에 새겨지는 부재의 형태로 존재한다. 담론 안에 상실을 실체화하는 것이다. 타자는 유령과 같이 담론 안에 출몰한다. 담론 안에서 의미를 지연시키고, 진리를 멀어지게 하는 이것은 죽은 존재이면서 또한 살아있는 존재다. 이렇듯 상실된 대상은 영원한 죽음으로 고착화되지 않는다. 그것은 담론의 영역에 남아 담론 그 자체를 어긋나게 만든다. 김종삼 텍스트에 드러나는 이러한 애도의 수사는 난유의 형태로 파악될 수 있다. 은유의 과잉으로 알려진 난유는 논리적 연관성의 결핍을 드러내는 실패한 은유를 말한다. 그것은 담론 안에 차이의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끊임없이 근원으로부터 멀어지는 이러한 차이의 반복 속에서 타자는 담론 안에 새겨진다. 다시 말해 담론이 전하고자 하는 지시적 의미가 결핍되거나 그것끼리 충돌될 때 드러나는 의미론적 공백에 놓인다. 이렇듯 일상적이고 논리적인 의미를 배제하며, 의미의 타자로서 무의미를 드러내주는 난유는 김종삼 텍스트에 드러난 불신의 담론을 파악하게 한다. 이렇듯 김종삼 텍스트는 유령과 같이 출몰하는 표상 불가능하고 은유 불가능한 타자를 담론 안에 드러내놓는다. 그것은 현실적 주체의 시선을 교란시키고, 현실 공간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을 비현실과 같은 현실 속에서 보도록 만든다. 이러한 모든 과정은 불가능한 애도 과정으로서 상실된 대상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것이다. 상실된 대상들을 담론 안에 끌어들임으로서 그것들을 상실하게끔 만든 폭력적 세계에 대한 고발과 함께 이 상실된 세계를 향한 담론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배제되고 추방당한 타자는 폭력적 현실에 대한 물음과 함께 그것에 대한 해결을 제시할 듯 되돌아온다. 이것은 일종의 텍스트적 전망으로 드러난다. 타자의 출현은 텍스트적 주체에게 어떤 약속을 전한다. 그것은 죽음과 함께 상실해버린 그 가치를 텍스트적 주체에게 끊임없이 일깨우고 있는 것이고 또한 상실된 타자에 대한 윤리적 책임과 당위적 명령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텍스트에 드러난 형태적 의미론적 부재의 공간은 폭력적 세계에 들어선 타자의 되돌아옴을 말해주며, 그러한 어긋남을 통해서 가치를 상실한 현실적 상황에 대한 메시아적 희망을 드러내 보여준다. 메시아적인 것은 경계에 서있는 자이다. 그것은 정체성이 없는 것이고, 주체도 아니고 살아있는 존재도 아니다. 그것은 환대 속에서만 드러난다. 그러한 환대 속에서만 미래는 전망 가능하다. 그것은 예측 가능한 미래가 아닌 정상성의 형태를 벗어나는 예측 불가능한 형태이다. 그러한 부재의 공간이 바로 김종삼 텍스트가 타자를 위해 마련해 둔 공간이며, 그곳으로 되돌아오는 메시아적인 것을 통해 상실된 세계를 향한 전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듯 텍스트가 드러내는 애도의 수사학은 상실된 세계를 향한 적극적인 담론화 작업인 것이며, 또한 대안 담론으로서 김종삼 텍스트를 드러내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김종삼 텍스트에 드러나는 타자에 대한 인식과 언어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상실된 세계에 대해 텍스트가 지니는 인식의 변화를 알 수 있게 한다. 이러한 변화 과정은 믿음의 담론에서 불신의 담론으로, 기도의 수사에서 애도의 수사로 향한다. 그것은 전자의 부정을 통한 후자로의 이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종삼 텍스트의 수사학적 측면이 드러낼 최종 지향점을 단순히 애도의 수사학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기도의 수사에서 보이는 타자를 향한 텍스트적 주체의 조건 없는 내어줌과 타자가 보내는 윤리적 명령에 대한 텍스트적 주체의 존중과 책임은 애도의 수사에서 보이는 차이의 반복을 통한 동일성의 사유에 대한 저항과 타자의 환대의 공간으로서의 담론적 공간과 연결될 때에야 비로소 김종삼 텍스트가 드러내고자 하는 대안 담론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김종삼 텍스트가 타자에 대한 윤리적 책임에 대해 묻고 있다는 것이고 또한 그것에 대한 답변을 스스로 마련해두고 있다는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김종삼 텍스트는 타자의 환대를 통한 상실된 세계에 대한 대안 담론으로서 새로운 전망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상실된 타자를 향한 새로운 감각이다. 그것은 김종삼 텍스트가 드러내는 언어와 타자에 대한 부단한 고민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 것이며, 그것을 통해 비로소 적극적인 담론화 과정으로서 나아간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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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urpose of this thesis lies in searching for a certain rhetorical aspect through which a sensitivity to death and loss in Kim Jong Sam's text reveals. Kim Jong Sam's text is inquisitive into the matter on death and loss. The sensitivity on loss in his text can only be exposed via that on language inevitably. The textual reaction on loss is divided into through whether representation will exists or not for the lost object, and farther on into faith or disbelief in the representation. That's the rhetoric on prayer and mourning. The sensitivity on loss in Kim Jong Sam's text is seen through the rhetoric as trope. The thing contrastive from the rhetoric as persuasion that attempting an expansion of identity through communication may be a form of discourse for lost object. The object inexistent in the reality could be said only through a form of trope. Kim Jong Sam's text describes the space of death before loss through such rhetoric as trope. It implies realistic space with absence of meaning and value. Textual rhetoric as trope exposes textual desire for lost space. Realistic space in Kim Jong Sam's text is drawn as the space communication is unavailable. It denies a loss by materializing the lost meaning and value. It's the way the realistic space make communication possible. But the lost thing couldn't be likened through the materialization of the value is left as a negative materiality. Kim Jong Sam's text attempts to reveal the sensitivity on the negative materiality as rhetorical level. Maybe negative materiality is a kind of Chose. An obsession over Chose is a trait of the patients with melancholia. Melancholy denies discourse. To be free from melancholy state, one should steps into the discourse process by identifying himself with his imaginary father. It may be a way to get into a symbolic order. The melancholic traits appeared in Kim Jong Sam's text could tell the discourse process. The symbolic space is a space of pain for Kim Jong Sam's text. The space of this identity is subscribed as a closed space denying others. The subject of identity presents itself full freedom, but being tied to itself as a material existence put in eternal presence. Like this, the space of identity is the space without discourse like melancholy. Such space of negativity shows constant return to himself. As the one is unaware of loss, he can't step into a discourse process over the lost object. The identity and melancholy should know other first to be free from pain. Time flows and future is available only through the relationship with other. Kim Jong Sam's text sustains the sensitivity on the other lost to be free from the materiality of such existence Then, how could the sensitivity on negative materiality in Kim Jong Sam's text be exposed in a discourse process? How could a loss be represent without denying the loss or materializing it. The frist response of Kim Jong Sam's text to such question is the discourse over faith. It appears as a rhetoric of prayer. It's a repeated conversation between the existence put in the realistic space and the absolute other of external. It implies a structure of metaphor made of tenor as the absolute other and vehicle idea of realistic subject. It is exposed through knowing well and representing the things unknown, and unrepresentable. It's the rhetoric on desire for making the absolute other that taken its lost value and meaning as security exist before realistic subject. Such repeated behaviour clarifying the faith in recovery of the loss Textual subject and the absolute other exist in an asymmetric relation rather than in a symmetric relation. It's an attempt to avoid the relation of identity. The absolute other is the object to respect and hospitality to the realistic object available through unconditional donation of the subject. Such gap throw open the door to metaphor. Besides, one could step into the relation with the other getting out of the relation with himself finally through such gaze, and the ex-cendance of material subject is available through it. But the rhetoric of prayer uses violence against the other unintentionally. It's a violation of the rhetoric of prayer against the thing it pursues itself. By speaking of a object who can't be spoken, one adheres the object in a linguistic net. The rethoric on prayer turns into an unrhetorical thing after all. The rhetoric of prayer can be spoken only in an non-rhetorical level. The speaking of the non speakable. The awareness of such impossibility of representation makes progress into rhetoric of mourning. Rhetoric of mourning as a rhetoric without reserve registers the sensitivity on negative materiality on discourse level unlike the rhetoric of prayer performing transcendental reserve. It exists as a form of absence carved in a discourse instead of being put out of discourse. It substantifies a loss in a discourse. The other delays meaning in a discourse, and makes the true farther away. It's a dead existence and also alive existence. Like this, the subject lost never adheres to permanent death. Such rhetoric on mourning could be taken as a form of catachresis. Catachresis, known as an excess of metaphor is a failed metaphor exposing a want of logical association. It causes an effect of difference in a discourse. The other is carved in a discourse in such repetition of differences. In other words, it's put in a semantic blank seen when denotative meaning that the discourse wants to deliver lacks or they collide with each other. Like this, the discourse of disbelief in Kim Jong Sam's text is detected by catachresis. Thus, Kim Jong Sam's text exposes the unrepresentable other that appears like ghost in a discourse. It's an impossible mourning process reminding of the object lost constantly. It's an attempt of discourse toward the world lost along with accusation against violent world by pulling the subjects lost into a discourse. It appears as a textual prospect. The appearance of the other deliver a promise to a textual subject. It's the thing continually awakening the textual subject to the value lost with the death, and sending ethical responsibility and imperative order for the other lost. Such space of morphological and semantics absence reveals messianique hope. Messianique is seen only in a hospitality. Future is available only in a hospitality. The space of absence in Kim Jong Sam's text is the space of hospitality prepared for that unpredictable other, and the prospect for the world lost is seen through. Like this, Kim Jong Sam's text shows a new prospect as an alternative discourse toward world lost through the hospitality of the other. It's a new sensitivity for the other lost. It reveals continual agony over the language and the other Kim Jong Sam's text shows, and an active discourse process toward the world lost is seen through t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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