宦官과 輔政將軍의 정치적 관계를 통해 본 後漢 중후기의 권력구조
The power structure of the middle-latter term of the Later Han dynasty seen through political relation between huanguan and fuzhengjiangjun
- 발행기관 서강대학교 대학원
- 지도교수 김한규
- 발행년도 2009
- 학위수여년월 2009. 8
- 학위명 석사
- 학과 일반대학원 사학과
- 실제URI http://www.dcollection.net/handler/sogang/000000045530
- 본문언어 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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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요약
이 글은 後漢시대 중후기의 정치를 이끌었던 宦官과 輔政將軍의 정치적 관계를 알아보고자 한 연구이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하여 양자 간의 역학관계의 변화를 살펴보아 당시의 권력구조에 대한 구체적인 규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後漢 중후기, 즉 和帝의 즉위 이후의 시대는 흔히 ‘外戚과 宦官의 권력투쟁’으로 정의된다. 和帝 이후로 계속 어린 皇帝가 즉위하면서 外戚이 輔政將軍의 자리에 올라 皇帝의 권력을 대행했다. 皇帝가 장성하면 輔政將軍은 皇帝에게 권력을 다시 돌려주는 ‘歸政’의 절차를 밟아야 했으나, 輔政將軍은 한번 잡은 권력을 쉽게 놓지 않으려 했다. 따라서 皇帝는 권력을 돌려받기 위해 무력을 동원해야 했는데, 여기에 皇帝의 수족으로 작용한 세력이 宦官이다. 이 시기 皇帝의 명을 받은 宦官이 輔政將軍을 공격한 정변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주장은 설득력을 가진다. 그러나 이 시기 宦官이 輔政將軍과 ‘黨與’를 이루어 권력을 분점하는 사례가 발견된다. 또한 이 시기에 宦官이 輔政將軍을 공격한 사례도 皇帝의 명을 받고 실행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자의 경우, 宦官은 ‘皇帝의 공구’로서 작동하지만, 후자의 경우, 宦官과 皇帝의 사이에 어떠한 연관도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後漢 중후기를 일률적으로 輔政將軍과 宦官이 투쟁한 기간이라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다만, 皇帝의 명령 없이 宦官이 독자적으로 輔政將軍을 공격한 경우를 양자 간의 투쟁으로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사건이 梁冀의 실각 이후에 발생한 竇武ㆍ何進의 제거이다. 즉, 宦官과 輔政將軍이 대립하고 투쟁했던 시기는 梁冀의 실각 이후라고 할 수 있으며, 宦官과 輔政將軍의 대립이라는 後漢 중후기의 권력구조에 대한 인식은 수정이 필요하다. 後漢 중후기는 桓帝 시대에 발생한 梁冀의 실각을 기준으로 두 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중기, 즉 和帝의 즉위로부터 梁冀의 실각에 이르는 시기는 輔政將軍이 皇帝의 권력을 대행한 시기로, 宦官은 때에 따라 輔政將軍과 결탁하여 권력을 분점하기도 했고, 皇帝의 명을 받아 輔政將軍을 공격하기도 했다. 후기, 즉 梁冀가 실각한 이후의 시기는 宦官과 輔政將軍 양자가 본격적으로 대립하여 격렬한 투쟁을 하던 시기이다. 梁冀의 실각을 기점으로 하여 宦官과 輔政將軍의 정치적 관계가 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즉, 梁冀의 실각을 통해 後漢의 권력구조가 일변하는데, 이는 輔政將軍과 대립과 협력을 반복했던 宦官이 이 시기를 통하여 輔政將軍과 완전히 결별하고 격렬히 대립했기 때문이다. 後漢대의 宦官은 和帝시대 竇憲의 실각 이후 정치의 전면에 나섰으나, 皇帝와 輔政將軍 양자 간의 대립 사이에서 종속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 그쳤다. 그러나 梁冀의 실각 이후 친족을 지방 관료로 진출시키고 대토지를 소유하는 등 豪族의 기득권을 침범하기에 이른다. 이에 宦官은 豪族과 그들을 대표하는 輔政將軍과 대결하게 되었고, 宦官과 輔政將軍 간의 본격적 대립은 이 시기부터라 할 수 있다. 즉, 後漢 和帝의 즉위 ~ 梁冀의 제거까지의 권력 갈등은 주로 皇帝의 친정을 둘러싼 皇帝권력과 輔政將軍 측의 대립을 위주로 이루어 졌으며, 梁冀의 제거 ~ 何進의 제거까지의 권력갈등은 豪族화하여 독자세력을 이룬 宦官과 기존 豪族세력을 대표하는 輔政將軍간의 대립으로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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