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

이제하 초기 단편소설 연구 : '속물근성(snobbery)' 비판을 중심으로

The syudy of Lee Je-ha's early works in the part of short stories : focused on criticism of 'snobbery'

초록/요약

본고는 이제하 초기 단편소설에 나타난 속물적 인물의 고찰을 통해 그 의미를 찾아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속물주의(snobbery) 개념에서 파생된 ‘속물(snob)적 인물’은 “사회적 위치에서 ‘있는 척’하거나 ‘있는 티’를 내는 사람, 혹은 자기 정도를 지나쳐서 정상인의 행동 규범을 넘어서는 인물”로 정의하고, 소설 안에 나타나는 속물적 인물 양상을 살펴보았다. 속물적 인물 양상은 인물 연구에 한정지어 보아도 그 특징이 명확하며, 시대상을 잘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체만으로도 소설 일반론에서 의미가 있음이 확실하다. 1960-70년대 이제하 초기 소설에 나타난 속물적 인물들은 자신의 모습에서 벗어나 과장된 자신을 나타내거나, 본래 의미에서 퇴색된 존재로서 등장한다. 기존 이제하 소설의 연구가 예술가 소설, 환상성 연구 등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으로부터 벗어나, 그의 소설이 지니고 있는 정치적 텍스트로서의 가능성에 근거하여 속물적 인물을 살펴보았다. 이런 속물근성은 이제하 소설에서 그 현상들이 단순히 제시되고 있지만,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었다. Ⅱ장에서는 이제하 소설에 나타나는 속물근성을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개인적 차원에서 남성성은 과장되고, 허황된 것으로 표현되어 비판의 대상이 된다. 이는 이제하 소설의 큰 특징 중 하나로 인식되는 ‘남성의 조포성’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조포성이라는 어휘까지 생산될 정도로 이제하 소설의 남성 인물들은 난폭하게 묘사된다. 「유자약전」, 「기적」, 「비」 등의 작품에서 남성인물은 여성인물에게 폭력을 가한다. 명확한 이유 없이 여성에게 서슴지 않고 폭력을 행사하는 남성인물은 여성을 억압하고자 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반해 여성인물은 남성의 폭력에 저항하거나 역으로 억압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소설에서 대부분 남성인물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되기 때문에 여성의 대응방식이 잘 드러나지 않았을 가능성을 고려한다 해도, 과장된 남성성을 여성과 대비시켜 나타냄으로써 폭력적인 남성의 모습을 비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이런 남성의 조포성과 같은 거친 남성성은, 남성인물의 허황된 남성성 비판 의식으로 이어진다. 이와 같은 남성인물의 과장된 남성성은 그 심리적 동인에 여성에 대한 두려움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性)적으로 무능한 인물로 드러난 남성인물들은 발기부전 등의 증상을 나타내지만, 무력함을 표현하지 않기 위해 여성을 억압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오히려 자신에게 부족한 남성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남성의 폭력성이 비정상적으로 드러나게 되었음을 추측하게 한다. 반면 여성인물은 남성과 대조적으로 거침없이 성(性)을 표현하고 풍만한 모성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 「신행」의 신부가 반라의 몸으로 마음껏 자신을 표현하는 모습을 보고 남성인물 ‘나’는 그 모습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되뇌는 모습처럼, 남성에게 부족한 남성성은 여성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오는 것인 동시에 허위로 가득 찬 남성을 비판하는 것이다. 개인적 차원에서 한층 높은 예술(가)의 속물비판 양상은 문학과 회화를 하는 예술(가)의 모습을 중심으로 나타낸다. 「물의 기원」의 화가 형철이 ‘색맹’ 논란에 빠진 것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형철이 그리는 그림은 색맹이 그린 그림이라 할 수 없을만큼 색감이 뛰어난데, 형철이 스스로 색맹임을 자처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형철은 미대 학장인 수정의 아버지 도움으로 수상하게 되고, 이런 속물적 행동을 본인 스스로 눈감고 싶어하는 의도에서 본인을 색맹으로 자처하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색맹은 화가에게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 있는 것이지만, 오히려 자신이 색맹임을 자처하는 모습에서 부정한 사회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속물로서의 예술가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근조」에서 오궁발의 장례식에 간 심삼목이 권력의 상징인 오궁발의 형으로부터 쩔쩔매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지조를 잃고 우스꽝스러운 예술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차라리 색맹이 되어 세상을 못 보는 존재가 되거나, 세상을 비판하지만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는 겁쟁이 예술가를 통해 예술 그 자체의 본래 의미로부터 타락한 사회적, 정치적 도구로써의 예술을 비판하고 있다. 더 나아가 작가는 종교와 언론이 본래 갖고 있는 의미로부터 퇴색되어가는 속물적 수단으로 변질되는 모습을 제시하기도 한다. 「소경 눈뜨다」의 종교 분쟁은 한 예배당에서 예배가 둘로 나뉘어 이루어지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함으로써, 하나인 절대자를 놓고 종교의 본령으로부터 벗어난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또한 「고인의 사진」은 교육의 터전인 학교의 이면에 나타나는 세속 권력에 대한 비판양상과 더불어 거짓 보도를 일삼는 언론에 대해 적나라하게 비판한다. 세속화 되어버린 종교와 학교, 언론을 통해 그들이 본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속물화되어가는 속물근성이 은폐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왜곡되고 타락한 사회 현실 속에서 작가는 타락해가는 사회제도를 지적하는데, 그 대상으로 종교와 언론의 속물근성 비판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상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균열된 사회는 속물적 인물이 부정 속에서 본령을 잃어가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 논문은 Ⅲ장에서 속물적 세계의 비판과 그 해결점으로 카니발적 세계를 지향하는 작가의 의식을 찾아보았다. 인물들의 속물근성으로 타락한 사회질서의 변화를 요구하는 작가는 현실로부터 벗어난 지향점에 도달해야 한다고 현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작가는 전복을 통한 카니발적 세계를 지향함으로써 소설 안에 그 가능성을 열어두고자 하였다. 「임금님의 귀」에서 제시하는 침팬지와 인간의 혼종(昏鐘), 음악의 혼용(混用) 등은 어느 한 쪽으로 경계짓기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예술작품이 등장하는 여러 소설에서 작가가 추구하는 그림의 형태가 쉬르레알리즘(超現實主義)인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초현실주의는 현실과 이상이 뒤엉키는 과정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이런 사고는 사회의 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속물근성과 대조되어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하가 자주 사용하는 기법 중 하나인 환상성은 이 초현실주의기법에 속하는 것으로서, 사회가 규정짓고 있는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가능성으로 이 기법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작가가 언급하였던 ‘환상적 리얼리즘’은 이런 맥락에서 전복적 사고에서 기인한 초현실주의적 사고를 나타내는 것이라 짐작할 수 있고, 상/하 질서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움직임을 카니발적 사고로 나타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하 소설의 속물적 인물의 제시는 본령을 잃은 속물적 사회제도를 지적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초현실주의를 거쳐 전복적인 카니발의 세계로 그 가능성을 넓혀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이제하 초기작에 나타나는 속물주의는 작가가 비판하고자 하는 세속적 사회질서를 드러낸 것이며, 비판을 통해 전복적인 카니발 세계를 자신의 지향점으로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