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에 관한 사회지성사적 검토 : 독일인의 공격적 심성 형성에 대하여
- 주제(키워드) 1차 대전 , 독일
- 발행기관 서강대학교 사학과 대학원
- 지도교수 임상우
- 발행년도 2009
- 학위수여년월 2009. 2
- 학위명 석사
- 실제URI http://www.dcollection.net/handler/sogang/000000044975
- 본문언어 한국어
초록/요약
이 논문은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 독일인들이 보여주었던 공격적 심성에 대해 고찰한 것이다. 19세기 유럽에서는 여론을 형성한 대중이 정치의 전면에 출현하였다. 그러나 프랑스와 영국과 같은 서방국가들과 달리 독일은 제도적으로 시민사회를 형성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독일에서는 민주원칙을 가장한 국가에 포섭된 유사 여론이 등장하였다. 게다가 독일인들은 종교적 신념인 프로테스탄트주의와 정치적 신념인 독일 통일이 결합된 ‘독일민족의 윤리적 사명’이라는 허위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 연구는 이러한 신념이 어떻게 독일인들에게 만들어졌으며, 이 사명감이 1차 세계대전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설명하고 있다. 19세기 독일 대중의 공격적 태도는 독일인의 심성구조와 그들의 통치를 정당화하고 일반 대중들을 동원하고자 하였던 지배계급의 지적 토대가 상호작용하면서 형성되었다. 즉, 이 연구는 19세기 독일 대중의 심성구조와 지적토대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위에서 제시한 내용들을 설명하고자 한다. 첫째, 19세기 독일인들이 가지고 있던 심성 구조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그녀의 연구에서 제시 한 “인간본성의 허약성”과 “잉여성”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 19세기 초 독일인들은 무엇보다도 통일을 달성하는 것을 최우선의 목표로 삼았다.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자유를 포기함으로써 국가 권력이 보장하는 안정의 우산 안으로 포섭되었다. 독일인들은 생활의 안정을 위해 자발적으로 불안정과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자유를 포기함으로써 아렌트가 언급하였던 “인간본성의 허약성”을 보여주었다. 또한 강성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독일이 제일 먼저 시도하였던 노력은 바로 산업화였다. 결국 독일인들은 기계적으로 일하는 효율성을 추구하였고, 그 결과 주변인들과 인간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게 되었다. 마침내, 그들은 가까운 친구와의 친애를 통해 확립할 수 있는 정체성을 상실하게 되었고, 스스로를 쓸모없는 인간으로 규정하였다. 강력하고 통일된 국가는 잉여성으로 고통 받고 있던 독일인들을 만족시킬 수 있었다. 국가는 그들에게 집단 정체성과 국가에 소속되었다는 소속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둘째, 지배계급은 그들의 통치를 정당화하고 대중들을 동원하기 위해 지적인 토대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독일의 역사주의 전통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 지배계급은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동시에 대중을 정부에 순응하도록 만들고 싶어 하였다. 그 결과 그들은 서방세계에 대한 독일인의 반발심을 이용하였고, 그 반감으로 인해 대중이 정치적 모순을 자각하지 못하도록 조종하였다. 또한 역사학을 이용하여 국가권력을 신성화시키고, 국가지상주의 이데올로기를 대중에게 이식하였다. 독일인들은 안정을 제공하고 결핍된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며 집단 정체성을 제공하는 국가를 위해 자발적으로 자유와 사유하는 능력을 포기하였다. 국가권력의 신성화는 전쟁과 공격신화를 정당화하였으며, 국가이성을 군국주의가 대체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독일인의 심성은 독일이 국제외교체제에서 고립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으며, 동시에 전쟁이라는 폭력 사태를 저지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인 비판의식과 대중 여론의 저항 능력을 말살 시켰다. 그 결과 1914년 독일의 선제공격으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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