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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인들 : Bystanders

  • 발행기관 서강대학교 영상대학원
  • 지도교수 변동현
  • 발행년도 2008
  • 학위수여년월 2008. 8
  • 학위명 석사
  • 학과 및 전공 영상대학원
  • 식별자(기타) 000000108514
  • 본문언어 한국어

목차

치매에 걸려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외할머니를 본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2달에 한번 꼴로 우리 집을 찾는 그 노인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자신 가슴으로 낳은 자식들에 의해 돌림 당하고 있다. 당신이 정신이 또렷했었고, 금전적으로 여유 있었고, 힘이 있었던 그 때와는 달리, 이제는 눈이 흐려지고 헛소리를 해대는 모습에 그 자녀들은 더 이상 돌보려 하지 않는다. 그 분이 남긴 어떤 것, 또는 그 분이 죽고 나면 남겨질 무언가에 관심을 가질 뿐... 이따금 그들이 작은 죄책감을 느낄 때면 그녀의 자글자글한 작은 손에 돈 몇 푼 쥐어주고 가겠지만, 정작 할머니는 돈의 사용방법을 이미 잊어버려 단지 종잇조각일 뿐임을 뻔히 알 수 있는 부조리한 상황만 반복될 뿐이다. 내가 격은 일, 또는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진정성 있게 이야기를 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이번 작품기획의 시발점이 되었다. 비록 이번 영화 ‘주(변)인들’이 처음 생각했던 의도와 100% 일치될지는 미지수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한번쯤은 생각해볼만한 우리 주변 삶의 본질적인 문제, 단지 본인의 외할머니에 대한 동정심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 아닌, 그녀를 두 번 죽일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인간들의 이중성과 욕망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에는 언제고 변함이 없다.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의「라쇼몬 羅生門(1950)」의 영향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의 단편소설 <덤불 속에서(1922)>를 바탕으로 각색한 영화로 배경은 내전으로 인해 피폐한 12세기 헤이안조 시대이다.
숲 속에서 한 무사가 살해되고 그의 아내가 산적에게 강간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절반쯤 쓰러져가는 라쇼몬에서 승려와 나무꾼, 행인이 그 살인사건을 회상한다. 법정에서 무사의 아내, 살인 강간 혐의로 잡혀온 산적, 무당을 통해 증언하는 죽은 무사의 혼령, 목격자 나무꾼이 증언하는데, 그들은 그 사건을 서로 다르게 이야기한다. 모두가 자기 말이 진실인 듯 말하지만, 범인이 누구인지 끝까지 알 수 없다.
여기서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는 진실이 호도되는 세상의 부조리함에 대해서는 과감한 직설과 단언을 시도하면서도, 그것에 대한 답을 내지 않는 신중한 절제 또한 견지한다. 그는 진실에 혹은 진실이라는 이름의 혼란 속에 ''선''에 대한 미련으로 괴로워하는 자와 어차피 세상은 늘 그렇듯 혼탁하다는 자, 그리고 그 양측 사이를 배회하는 자를 라쇼몬에 배치한다. 이러한 흑과 백 그리고 회색의 공존은 다양한 거짓과 진실을 늘어놓는 관아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러나 전체를 관장하는 절대자에 가까운 격인 라쇼몬 혹은 관아의 심판자는 어떠한 경우에도 마련된 장(場)에 함부로 나서지 않은 채 묵묵히 저들 군상을 응시한다. 그 어느 것의 손도 들어주지 않는 심판 아닌 심판. 치열한 사심의 교차 속에 이기심이 낳은 인간적 괴리가 세상을 감싼다.
작품 <주(변)인들>은 인간이 가지는 고질적 ‘이중성’ 과 이에 파생되어 나오는 ‘이기주의’, 그리고 ‘진실의 상대성’이라는 문제들을 다룬다.
주(변)인들은 ‘홀로 사는 한 할매의 죽음’에 얽힌 5명의 주변 인물들의 진술로 이어져나간다. 이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와 대면하여 주변 인물들은 자신들의 각각 할매와 관련된 상황을 진술한다. ''혹시 저 사람들 중에서 살인범이 있는가?'' 라는 미스터리 모티브로 시작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야기를 끌고 가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사건은 분명 하나인데 사람에 따라 자기중심적 입장에서 달리 증언한다. 사건의 전체를 이끌어가는 형사는 어떠한 경우에도 함부로 사건 속으로 나서지 않은 채, 주변인들을 관조적으로 대한다. 그러나 어느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않는 심판 아닌 심판 담당형사는 이 사건을 ‘할매의 자살’로 종결짓는 모순적인 태도 또한 보인다. 물론 4명의 주변인들은 할매의 죽음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하지만 할매는, 그들의 추악한 행태를 감추기 위한 ‘이중적 행태’, 그리고 ‘이기주의’가 휘두르는 폭력에 숨진 것이나 다름없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잔혹성의 상징인 살인은 단지 피를 보는 직접적 행위를 통해서만이 아니다.
이렇게 ‘비인간적인 행태들’이 현대사회에서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는 현실에 대해 그러나, 결코 무겁지 않게 이 영화를 보게 될 관객들, 작품에 참여한 스태프들이 한번쯤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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