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한국 신문의 제도화와 남성적 재공간화 과정 : The Institutionalization of Korean Newspapers and Its Male Genderedness in the 1950s
- 발행기관 서강대학교 대학원
- 지도교수 김균
- 발행년도 2007
- 학위수여년월 2007. 8
- 학위명 박사
- 학과 및 전공 신문방송
- 식별자(기타) 000000104462
- 본문언어 한국어
목차
본 논문은, 한국 언론의 남성 중심성을 비판하며 많은 여성주의 언론학 연구들이 언론이 생산해내는 컨텐츠에 주목하여 매체 비평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지만, 언론을 통해 드러나는 여성들은 여전히 남성 중심적이고 가부장적 재현 속에 머물러 있음에 주목했다. 그렇다면 문제는 가시적 결과물인 텍스트 이전의, 그러한 텍스트 생산의 기반이 되는 조직이나 제도의 남성 중심성을 의심해 봐야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언론학 연구에서 여성주의 작업들에 주목하게 했는데, 다양한 데이터와 인터뷰 등을 통해 언론 조직의 남성중심성의 기제들을 밝혀 놓은 몇몇의 연구들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들에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부분은 그러한 언론 조직의 남성 중심적 정체성이나 기제들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다시 말해 역사적 형성 과정의 많은 부분이 생략된 채로 남성 중심성을 증명하는데 집중한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연구자는 한국 언론의 남성 중심적 정체성의 역사적 형성 과정에 주목하게 되었고 이를 1950년대의 신문을 통해 조망하고자 하였다.
한편 연구자가 분석 시기로 잡은 1950년대는 한국 언론사에 있어서, 일제시기, 미군정기, 박정희 집권 시기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받고 있지 못하지만, 한국전쟁 후 미국의 다양한 방식의 원조 아래, 한국 사회가 새롭게 재편되는 과정에서 언론 또한 새로운 제도화를 적극적으로 펼쳤던 시기였다. 이러한 제도화 과정은 전적으로 미국식 제도화 과정이었지만 당시 신문인들은 이를 통해 신문의 후진성을 극복하고 현대적 면모를 갖출 수 있다고 믿었기에 이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따라서 1950년대는 새로운 것과 기존의 것이 충돌하고 갈등하고 협상하는 역동적 공간이기에 결코 소홀하게 취급할 수 없는 시기라 할 수 있다.
50년대 중반 미국의 대미원조는 한국의 신문계에도 여지없이 드러나, 근대적 학력을 갖추고 영어에 능숙한 젊은 엘리트 기자들을 선발하여 미국 신문계를 시찰하고 연수하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언론인 연수는 미공보원의 ''교환교육정책''의 일환으로 이는 한국의 여론지도자층을 미국에 우호적인 진영으로 포섭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미국무성 초청 언론인 연수에 참가한 젊은 엘리트 기자들을 중심으로 50년대 중․후반 한국 신문계는 새로운 제도화의 길을 걷게 되는데, 이는 새로운 언론관련 조직들의 출현과 언론 윤리의 정립, 기사 스타일의 변화, 프로페셔널리즘의 등장, 신문의 공정성 및 객관성 요구 등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연구자는 신문에 대한 사회적 담론들을 분석한 결과, 50년대 신문에 대한 지배적인 담론은 ‘지사적 신문’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50년대 중후반에 등장한 신문에 대한 새로운 요구들은 부상하는 담론으로서 이는 ‘신문의 선진화’로 압축될 수 있다. 50년대 한국 신문의 지배적 담론과 부상하는 담론은 얼핏 보기엔 서로 대척점에 존재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연구자의 접근 방법인 젠더사(gender history)를 통해 볼 때, 이는 한국 신문의 남성적 공간화라는 공통성을 갖고 있다. 물론 지배적 담론이었던 ‘지사적 신문’ 속에서 드러나는 남성성과 부상하는 담론이 만들어 낸 ‘서구적으로 근대화된 신문’ 속에서 드러나는 남성성은 그 역사적 조건 속에서 내용적 차별성을 지닌다. ‘지사적 신문’은 유교적 남성성을 지향하고 있었으며, ‘서구적으로 근대화된 신문’은 근대적 남성성을 지향하고 있었다.
‘지사적 신문’이 드러내는 유교적 남성성은 명분과 위신과 품격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기개와 품격을 잃은 당시의 기자들을 ‘지조잃은 선비’에 비유하는 것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또한 당시의 소위 ‘기자정신’은, 사회 불의에 맞서고 국가권력에 항거하기 위해서는 일정 정도의 적자 경영은 감수해야한다는 지사적 신문 경영을 주장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논의들은 당시 신문을 가부장적 국가의 지사적 주체로 호명하면서 유교적이며 남성적인 정체성을 부여하고 있었다. 또한 가부장적 국가 권력에 저항하고 사회 정화를 지도하는 신문의 지사성은 당시 신문을 정치적 주체로 구성해내면서, 신문인에게 논객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유교적 남성화 전략으로 이어졌다.
한편 50년대 중․후반은 신문의 ‘정치적 선정주의’를 비판하고 신문 내부의 시스템을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개혁하고자 하는 일련의 움직임들이 근대적 학력을 갖춘 젊은 엘리트 신문인들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이들은 직업윤리를 확립하고 신문의 전문성을 강화하고자 하는 노력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조직과 강령을 만들고 신문 기사 스타일의 새로운 양식들을 제안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의 범람 속에서 언론 자유에 대한 목소리를 높임으로써, 주의 실현의 정치적 주체로 나설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주체 형성 과정들은 ‘사실보도 제일주의’ 및 엄정 중립의 공정성, 민주주의 실현의 공적 기제로서 언론 자유를 내세우지만, 이것들이 근대적 학력과 지식 체계를 갖춘 남성들의 경험에 기반함으로써, 당시 신문이라는 매체를, 근대 지식인 남성들의 형제애에 기반한 동맹관계의 장소로 위치지우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여성적인 경험 및 여성성은 체계적으로 배제됨으로써 50년대 한국 신문은 남성적 공간화를 형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목차
This study focuses the male-centric and patriarchal representation of women in the Korean press during the nineteen-fifties. Although there have been many studies based on feminism, their primary concern has been limited to looking at the content of the press which is the end outcome resulting from journalistic activities. Considering the persistent criticism on the content does not seem to change the male-centric view on women in the press, this study now turns attention to the origin of the male-centric representation which may reside in the press organizations and institutions. The recognition of this problem has led this study to survey previous feminism-oriented studies about the press. Although a few existing studies examined the male-centric mechanism immanent in the press organizations, they have tended to neglect to look at the historical formation of male-centrism in the press; that is, how the male-centric identity and mechanism have been constructed in the historical contexts.
In this sense, this study attempted to explore the process that the South Korean press had obtained the male-centric identity, specifically in the nineteen-fifties. During this period, the South Korean press had been newly systematized and institutionalized in accordance with the global changes occurred in the Korean society. Nevertheless, there has been comparatively less consideration on this period than on other periods, such as the eras of Japan''s colonial rule, the U.S military administration, and the former President Park, Chung-hee government. Although the institutionalization of the press was actually Americanization, Korean journalists voluntarily accepted the change because they believe that it would help the Korean press to emerge from backwardness and enter upon a modern phase. Since the nineteen-fifties was a historical sphere where traditional costumes and new practices dynamically collided, conflicted and negotiated, it deserves more attention.
The aid from the U.S. in the nineteen-fifties was also given to the newspaperdom: American government selected the Korean young elite journalists who were qualified with modern educational background and English language ability, and provided them with the chances to inspect the newspaperdom in the United States and to take training in it. The U. S. Information Service offered the training program to the Korean journalists as a part of ''the exchange education policy.'' Ironically, however, it was in fact the strategy for persuading Korean public opinion leaders to join the amicable standpoint on the United States. With the young elite journalists trained in the U.S. in the fifties as the central figures, the Korean newspaperdom was newly institutionalized. Their efforts accomplished some changes such as the emergence of new media organizations, the systematization of the press ethics, the alteration of report style, and the advent of professionalism. They also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fairness and objectivity of reporting news.
On the other hand, this study found that there were two competing discourses among Korean journalists in the nineteen fifties. One was the dominant discourse which emphasized the values of morality and patriotism and the other was a rising discourse which demanded the advancement of the press by adopting new values and practices from a group of developed countries. Although these two discourses seemingly oppose each other, this study using the perspective of gender history revealed that both of them contributed substantially to shaping the male-dominant structure of the press. In addition to the commonality between them, there was a difference in how they represent the ideal type of a man. While the discourse emphasizing the moral and patriotic press created a Confucian male-dominant space, the discourse advocating the westernized and modernized press produced the modernized male-oriented space.
The Confucian masculinity, which was shown in the moral and patriotic press, tended to accentuate justice, prestige and dignity as high-priority journalistic values. It equated the journalists who lost these values with a man of virtue who lost his integrity. What was called ''the journalist spirit'' went so far as to argue that newspaper companies should accept even a deficit operation in order to stand against social injustice and unjust dictatorship. This kind of discourse interpellated the press as a patriarchal and patriotic subject, and endowed Confucian and male identity to it. The patriotism also constructed the newspaper as a political subject, which resulted in Confucian male-centric journalism in South Korea.
As a consequence, in the latter half of the fifties, young elite journalists who experience westernized education criticized political sensationalism and attempted to reform the traditional and old-fashioned press systems. They established professional ethics, suggested the concrete plans to strengthen professionalism, settled the general principles, and proposed new styles of news reporting. More importantly, they went forth into a political subject to actualize democracy by raising their voice for the freedom of the press in the background of American liberal democracy. In these contexts, objectivism, impartiality and fairness of journalism were promoted as a public strategy to actualize democracy. However, this progression is focused on the male journalists, which resulted in adjustment of the press to male-dominant sphere. The process of making male-dominant sphere in the Korean press in the nineteen-fifties systematically excluded female experience and feminin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