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역사교과서 문제 관련 일본 신문보도의 차이와 변화 : Difference in the "history textbook problem" related newspaper report and change
- 발행기관 서강대학교 대학원
- 지도교수 김균
- 발행년도 2006
- 학위수여년월 200608
- 학위명 석사
- 학과 및 전공 신문방송
- 식별자(기타) 000000103217
- 본문언어 한국어
초록/요약
본 연구는 일본의 신문이 “역사교과서 문제”를 어떻게 보도했는지를 분석한 것이다. “역사교과서 문제”의 원인은 일본의 역사인식의 문제이며, 문부성(문과성)의 교과서 검정 제도가 낳은 갈등이다. 연구문제 1은 1986년의 ‘지키는 회’ 사건의 기사를 분석하고, 연구문제 2는 2001년의 ‘만드는 모임’ 사건의 관련기사를 분석했다. 그리고 연구문제 3은 두 가지 사건의 보도를 비교하고, 4 가지 신문들의 변화를 분석했다. 1986년의 사건은 보수파 집단인 ‘지키는 회’가 검정 신청한 교과서가 원인이 되었다.일본정부는 교과서 검정에 개입하여 교과서의 기술 내용을 수정했다. 아사히와 마이니치는 검정제도의 자의적인 운용을 비판하는 입장이다. 그래서 ‘지키는 회’ 사건은 검정 제도의 자의적인 운용이 원인이 된 사건이다라고 정의했다. 요미우리는 검정 기준에 대한 인식 부족에 의한 사건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지키는 회’와 문부성 쌍방을 비판했다. 산케이는 정부의 검정개입을 심하게 비판하고, 동시에 외국의 압력을 수용한 것을 국가 주체성 상실이라고 비난 했다. 2001년의 사건은 보수파 단체 ‘만드는 모임’이 검정 신청한 교과서가 원인이 되었다.일본 정부는 검정 개입을 거부하여, 한국과 중국으로부터의 수정 요구를 거부했다. 아사히는 ‘모임’의 교과서를 비판했다. 그러나 정부에 의한 ‘수정 거부’를 지지했다. 마이니치 역시 ‘모임’ 교과서를 비판했다. 그러나 정부의 ‘수정 거부’를 지지했다. 요미우리와 산케이는 ‘모임’의 교과서를 지지했다. 그리고 정부의 ‘수정 거부’도 지지했다. 1986년의 ‘지키는 회’ 사건과 2001년의 ‘모임’ 사건 사이에는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이 있다. 일본은 경제적 타격을 받고 그리고 문화적인 자신을 상실했다. 일본이 자신을 되찾기 위해서는 “수정한 역사”가 필요했다. 그리고 일본 사회는 ‘모임’의 교과서를 수용했다. 어느 신문은 “수정된 역사”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에 열중했다. 어떤 신문은 한국과 중국의 비판에 반박 하는 것을 일삼았다. 그리고 어떤 신문은 그러한 사회분위기의 변화에 침묵했다. 일본 사회의 변화는 모든 신문에게 영향을 주었다.
more초록/요약
This research analyzed the matter whether a Japanese newspaper (ASAHI, SANKEI, MAINICHI and YOMIURI) reported “a history textbook problem” how. The cause of “the history textbook problem” is a matter of Japanese history recognition. And it is the conflict that “the textbook official approval system” of the Ministry of Education is a cause. A subject 1 analyzed the article of a Mamorukai matter in 1986, and analyzed the article of a Tsukurukai matter in 2001 as for the subject 2. Then, these results of an analysis were compared, and a subject 3 analyzed a change in the Japanese newspaper. As for a matter in 1986, the textbook that the conservatives group Mamorukai applied for the official approval is a cause. The Japanese Government intervened in “the textbook official approval”, and then amended contents of description of the textbook. ASAHI and MAINICHI are the positions that the arbitrary practical use of the official approval system is criticized. The Mamorukai matter was defined when the arbitrary practical use of the official approval system was a matter of the cause. YOMIURI was defined when it was a matter by lack of understanding to a standard for an official approval. Then, Mamorukai and the Ministry of Education were criticized. SANKEI criticized governmental intervention severely. And it was blamed for receiving foreign pressure with the national independence loss. As for a matter in 2001, the textbook that the conservatives group Tsukurukai applied for the official approval is a cause. The Japanese Government rejected intervention to the official approval, and rejected a demand for the amendment from South Korea and China. ASAHI criticized the textbook of Mamorukai. But, “amendment denial” by the government was supported. MAINICHI criticized the textbook of Mamorukai, too. But, “amendment denial” by the government was supported. YOMIURI and SANKEI supported the textbook of Mamorukai. And “amendment denial” by the government was supported, too. There is “Japan’s lost decade” during a Mamorukai matter in 1986 and a Tsukurukai matter in 2001. Japan suffered an economical blow, and then cultural confidence was lost. “Amended history” was necessary so that Japan might take back confidence. Then, Japanese society accepted the textbook of Mamorukai. One newspaper was absorbed in giving “amended history” a good reason. Another one was absorbed in contradicting the criticism of South Korea and China. Then, other newspapers kept silent. A change in the Japanese society influenced all newspapers.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