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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꾀르와 하이데거의 주체해석과 윤리적 함의

박준영 (Park, Joon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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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서강대학교 대학원
  • 지도교수 강영안
  • 발행년도 2006
  • 학위수여년월 200608
  • 학위명 석사
  • 학과 및 전공 철학
  • 식별자(기타) 000000103172
  • 본문언어 한국어
초록/요약moremore
데카르트와 독일 관념론의 풍미 이후 서양철학의 주체문제는 급격한 위기 상황을 노정해 왔다. 그것은 명석판명한 직관으로서의 코기토의 실체성에 대한 위기며, 이로 인해 이성의 권위는 더 이상 스스로를 학문의 보증자로 소환되는 것이 거부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주체 문제가 사라지가? 리꾀르와 하이데거는 데카르트적 주체의 폐기를 통해 주체(성)을 전면적으로 폐기하지 않는다. 하이데거에 있어서 주체성의 철학은 마땅히 비판의 대상이었지만, 주체가 떠난 자리에 ‘현존재’를 세운다. 리꾀르는 주체의 실체적 성격을 폐기하면서 그 다양한 모...
데카르트와 독일 관념론의 풍미 이후 서양철학의 주체문제는 급격한 위기 상황을 노정해 왔다. 그것은 명석판명한 직관으로서의 코기토의 실체성에 대한 위기며, 이로 인해 이성의 권위는 더 이상 스스로를 학문의 보증자로 소환되는 것이 거부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주체 문제가 사라지가? 리꾀르와 하이데거는 데카르트적 주체의 폐기를 통해 주체(성)을 전면적으로 폐기하지 않는다. 하이데거에 있어서 주체성의 철학은 마땅히 비판의 대상이었지만, 주체가 떠난 자리에 ‘현존재’를 세운다. 리꾀르는 주체의 실체적 성격을 폐기하면서 그 다양한 모습을 다시 세우려고 한다. 리꾀르는 『한 타자로서의 자기자신 Oneself As Another』의 마지막 세 개의 장을 ‘작은 윤리학’이라고 칭한다. 여기서, 리꾀르는 의무와 목적이라는 두 대상간의 관련성을 다음과 같은 작업가설 하에 탐구하려고 한다. 즉, ⑴ 도덕을 넘어선 윤리의 탁월함 ⑵ 규범의 체(sieve)를 통과할 윤리적 목적의 필연성, 그리고 ⑶ 규범이 그 실현에 있어서 곤경에 처할 때, 그것이 목적에 의존해야 할 적법성이 그것이다. 이 관계를 그는 ‘상보적이면서 종속적’이라고 표현한다. 이것을 논증하기 위해 리꾀르는 잠정적으로 윤리적 목적을 이렇게 간주한다. “정의로운 제도 안에서 타인과 더불어 그리고 타인을 위하여 ‘좋은 삶’을 지향하는 것.” 이것은 작업가설의 첫 번째에 해당하는 것을 규명하기 위함이며, 뒤를 이어 그는 좋은 삶과 배려 그리고 의무에 이르기까지를 살피면서, 윤리적 목적이 도덕규범의 시험을 거쳐야 함을 논증한다. 이렇게 시험을 거친 규범은 정당한 것으로 간주되지만, 구체적인 현실 맥락에서 실현될 때, 난관에 부딪힌다. 바로 갈등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것이 세 번째 작업가설을 규명하는 작업에서 다루어진다. 이렇게 해서 리꾀르의 윤리적 주체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리꾀르는 그것을 ‘책임짐으로서의 주체’라고 명명한다. 이 책임짐의 주체로서의 윤리적 주체는 스스로의 행위의 결과물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자기의 과거의 행위에 대한 빚에도 책임있다. 만약 리꾀르가 윤리적 주체의 상(像)을 일견 해석학적 순환의 틀 내에서 구현하고 있다면, 그것은 매개를 통해 그 자기성에 매번 다가가지만 끝내 도달하지 못하는 것으로서의 수렴점이 바로 그 윤리적 주체라는 것이 된다. 리꾀르 자신도 말하다시피, 해석의 과정은 끝없는 잔여를 남기는 것이며, 주체의 상은 맨 마지막에야 잡힐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해석학적 특징을 띄고 있는 리꾀르적 주체의 윤리적 모습을 ‘잔여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이데거의 현존재는 어떤 성격을 부여받을 수 있는가? 아니, 그 ‘현존재는 주체인가?’ 우리는 이 물음에 적극적으로 답해보고자 한다. 현존재는 실존론적으로 세계-내-존재로서 ‘거기에(Da) 있음(Sein)’이다. 이때 문제 되는 ‘거기에’는 이 세계-내-존재가 어떤 공간성을 열어 밝히면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존재는 따라서 그 규정성에 있어서 본래적으로 ‘거기에’ 열어밝혀져 있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거기에’ 존재하는 현존재의 개시성을 두 부분으로 나눈다. 즉, ⑴‘거기에’의 실존론적 구성. 이 구성에서는 처해 있음(Befindlichkeit)과 이해(Verstehn)와 말(Rede)이 다루어진다. ⑵‘거기에’의 일상적 존재와 현존재의 빠져 있음(Verfallenheit). 우리는 이제 현존재의 기초적 존재론적 성격으로서 실존성, 현사실성, 빠져있음이 하나의 동근원성(Gleichursprünglichkeit) 안에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동근원성은 어떻게 특징지을 수 있는가? 그런데 이때 현존재는 고립적인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을 넘어서’, ‘자기를-앞질러-있음’이란 고립된 주체의 형상을 띄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이미 세계-내-존재로서 내던져져 있다는 것을 지시한다. 이것이 염려다. 이 염려는 그 구성상 곁에 있음과 함께 있음이 포함되는 바, 전자의 경우 그것은 세계내부적 존재자에 대한 배려가 되며, 후자의 경우 그것은 공동현존재로서 현존재가 타인에 대해 심려하는 것이 된다. 여기서 우리는 염려가 실존성, 현사실성, 빠져 있음의 동근원성을 통일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근본계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현존재의 근본구성틀은 염려다. 그렇다면, 현존재는 주체인가? 우리는 여기에 제한을 단 긍정명제를 제출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탈자적 본질로서의 염려가 실존이라는 본질규정으로서 현존재를 구성한다면, 그것은 또한 주체나 실체의 근대적 표상과는 다른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존재의 본질은 실존이며 실존으로서 현존재는 인간이다. 현존재가 이런 의미로 이해되는 한 현존재는 곧 주체이다. 현존재의 본질이 실존이며 이런 한에서 그것이 주체라면, 현존재는 전통적인 주체성과는 다른 특성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의식이 아니며, 차라리 그 전에 이미 그것을 기초지우는 어떤 ‘자리’다. 그것은 또한 염려 구조 분석을 통해 우리가 보았듯이 불안을 통해 개별화된 현존재의 본래적 양태며, 이때 존재는 현존재를 통해 드러난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염려라는 근본구성틀이 현존재, 즉 인간 주체의 어떤 면모를 드러내는가 하는 것을 물어 볼 수 있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염려는 단순히 심리적인 단일성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론적인 규정이며, 모든 심리적 규정에 앞서서 현존재를 틀지우는 것이다. 그렇다면, 염려에 도대체 어떤 윤리적 함의가 있단 말인가? 종래의 많은 논자들에 의해 하이데거의 염려 개념은 ‘이기주의’와 ‘전체주의’라는 혐의를 받아왔다. 왜냐하면, 결정적으로 염려는 바로 ‘자기염려’이며, 그것은 타자의 존재를 간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혐의는 참으로 옳은가? 우리가 현존재의 근본구성틀로서 염려를 말한다는 것은 이미 현존재가 자신의 본질계기로서 자기를-앞질러-있음이라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 실존성의 실존은 ‘Ex-istenz’, 즉 ‘자기 밖에 서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탈자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탈자성으로서의 현존재란 이미 자기성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타자에의 심려와 다른 사물에의 배려로 뻗어 나간다는 것을 함께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리꾀르에 있어서 하이데거의 현존재는 어떤 양상을 띄게 되는 것인가? 리꾀르는 현존재의 특성을 순환성으로 규정한다. 우리는 이 순환성이라는 테제로부터 하이데거 현존재와 리꾀르 윤리적 주체의 연관성을 파악할 수 있으며, 하이데거 현존재의 윤리적 성격을 적극적으로 받아 앉을 수 있다. 첫째, 리꾀르의 윤리학에서 삼중구조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상호성(reciprocity)과 타자성(alterity)이라는 원칙이다. 이러한 원칙은 실천적 평면에서 바로 배려(solicitude)와 대화적 구조라는 개념으로 형상화된다. 이에, 우리는 앞서 하이데거의 염려가 그 실천적 현실화의 최전방에 심려와 배려를 배치하였다는 것을 상기할 수 있다. 우리는 리꾀르의 윤리적 주체와 하이데거의 염려의 윤리적 주체 가능성이 조우하는 첫 번째 지점으로 이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하이데거의 염려와 리꾀르의 윤리적 목적이라는 층위를 결정하는 하나의 요소가 있는바, 그것은 현존재의 이중상황, 즉 실존과 존재의 순환이다. 이 순환은 리꾀르가 언급했다시피, 주체를 생성시킨다. 이 주체는 리꾀르적 의미의 윤리적 주체이면서 잔여적 주체며, 실존과 존재, 윤리와 존재 간의 순환 속에서 탄생하는 바다. 셋째, 리꾀르의 윤리적 목적과 하이데거의 염려가 함께 함축하고 있는 것은 바로 상호성과 타자성이다. 전자의 경우 이 요소를 적극적으로 끌어안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그런데, 이것이 가능성이 될 수 있는 상황은 리꾀르의 윤리학에서 제대로 그 상이 잡히는 것이 아닌가? 다시 말해, 염려의 윤리적 가능성은 스스로의 유아론을 실천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적극적인 계기를 바로, 이 윤리적 목적에 두어야 하는 것이다. 단지, 자신의 가능성으로서 죽음 앞에 선 현존재는 타자성을 현실화하지 못한다. 그 유한성 안에서 공동현존재로서의 타자들을 확장된 타자성으로서의 정의 안에서 만날 때에만 현존재의 윤리적 주체는 가능성만이 아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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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the predominance of Descartes and German idealism, the problem of the subject has been radically exposed. It is the crisis of the Cogito as clear and distinct intuition, but this has led that the reason has refused itself as guarantee on scholarship. Though Is the problem of the subject di...
After the predominance of Descartes and German idealism, the problem of the subject has been radically exposed. It is the crisis of the Cogito as clear and distinct intuition, but this has led that the reason has refused itself as guarantee on scholarship. Though Is the problem of the subject disappeared? Ricoeur and Heidegger don''t renounce thoroughly the subject(ivity) through the renouncement of subject. On Heidegger, the philosophy of subjectivity is also the object of the criticism, but he founds again Dasein. Ricoeur tries to establish the various figures of that subject abandoning the substantial attribution. Ricoeur named to the last three chapter of his work, Oneself As Another ''a little ethics''. Here, Ricouer tries to research the relation between the two, duty and aim under the following working hypothesis. ⑴ the primacy of ethics over morality, ⑵ the necessity of the ethical aim to pass through the sieve of the norm, and ⑶ the legitimacy recourse by the norm to the aim whenever the norm leads to impasse in practice. This relation is called ''complementary and subordinative'' by him. To demonstrate this relation Ricoeur regards hypothetically the ethical aim as this following; aiming at the ''good life'' with and for others, in just institutions. It is for inquiring the first which is corresponded to the working hypothesis and next observing from the ''good life'' and solicitude to duty, he demonstrates the ethical aim has to pass through the moral norm. This rule which passes the sieve is regarded as reasonable but runs into a brick wall when it is realized in the context of the real. The very state of conflict is occurred. This situation will be treated in the search for inquiring the third working hypothesis. This leads the Ricoeur''s ethical subject revealed in the concrete. He names to that the ''subject as imputability''. This subject has a responsibility not only as the result of his behaviour but as the debt of his past acting. If Ricoeur embodied the figure of ethical subject in the hermeneutic circle, It was the very ethical subject that the convergent point which thorough a mediation approaches the self but couldn''t reach. As he said, the procedure of hermeneutic remains a endless residue and the figure of subject can be seized in the last analysis. We can call this Ricoeur''s subject who has a peculiarity like this ''residual''. Now, what peculiarity can be given to Heidegger''s Dasein? In other words, we can ask that ''Is Dasein subject?''. We tries to answer this question actively. Dasein is existentially ''there(Da) being(sein)'' as being-in-the-world(In-der-Welt-Sein). Here, the problem , ''there'' means this being-in-the-world exists disclosing a certain extensity. Hence Dasein is disclosed ''there'' authentically in the relation to the determination. Heidegger divides the disclosedness of Dasein which exists ''there'' into two part; ⑴ existential components of ''there''. In this component he treats ''Befindlichkeit'', ''Verstehn'', and ''Rede'', ⑵ daily existence of ''there'' and ''Verfallenheit'' of Dasein. Now we can recognize ''Existenzialitat'', ''Faktizitat'' and ''Verfindlichkeit'' are in a ''Gleichursprunglichkeit''. If so, how can this Gleichursprunglichkeit be characterized? Yet, in this respect Dasein is not isolative. Namely it is not a kind of isolative configuration of subject. It already refers to a ''Geworfenheit'' as ''Being-in-the-world''. This is ''Sorge''. ''Sorge'' implies ''Besorge'' and ''Fursorge''. The later is that Dasein as Mitdasein cares about the others. Here, we understand Sorge is a fundamental moment can be possible the unity of the three components; Sorge is a fundamental frame of Dasein. Yet Is Dasein subject? We can propose restrictively an affirmative proposition. In other words If Sorge as ''ekstatisch'' nature constitutes Dasein as existentiality, that is also a different thing to the modern representation of the subject or substance. None the less essence of Dasein is existence so that Dasein as existence is human-being. Dasein is subject as far as it is understood like this. If the nature of Dasein is existence and so that is subject, Dasein must has a peculiarity different from traditional subject. It isn''t consciousness rather a ''place'' which make a foundation of that consciousness. And also as we has seen, it is an authentic aspect of Dasein individualize through the ''Angst'', then Being is revealed by Dasein. Now we can here ask what aspect of subjectivity of human-being, Dasein is revealed by Sorge. According to Heidegger, Sorge isn''t defined simply as psychological unicity. It is ontological definition and make a framework Dasein before whole psychological reference. So then what ethical implication is in Sorge? Recently many of researcher have had suspicions Heidegger''s ''Sorge'' to ''egoism'' and ''totalitarianism'' since definitely Sorge has been ''Selbst-Sorge'' and has overlooked the others. But is this suspicion right? That we say Sorge as fundamental framework of Dasein already pass itself ahead as essential moment of itself. Since the existentiality of existence means ''Ex-istenz'' that is ''standing-out-of-itself''. This is ''ekstatisch''. So Dasein as ''ekstatisch'' already means a self and furthermore extents to Fursorge on the others and Besorge on the other things. If so, what aspect has the Heidegge''s Dasein in relation to Ricoeur. Ricoeur determines the peculiarity of Dasein upon the ''circularity''. We can apprehend the relation between Heidegger''s Dasein and Ricoeur''s ethical subject with this thesis, circularity and accomodate actively the ethical character of Dasein. First, In Ricoeur''s ethics what the threefold can be possible is the principles, reciprocity and alterity. These principles are configured a solicitude on the practical plane. At this point we can remember that Heidegger''s Sorge arranged Fuursorge and Besorge in forefront of practicaal realization. We can refer it as the first place Ricoeur''s ethical subject and Heidegger''s Sorge encounter. Second, there is an element which determine the strayers, of Heidegger''s Sorge and of Ricoeur''s ethical aim, that is the very circularity of existence and being. As Ricoeur said, this circularity generates the subject. The subject is ethical and residual subject, that is born in circularity of existence and being, ethic and being. Third, It is reciprocity and alterity that both Ricoeur''s ethical aim and Heidegger''s Sorge imply. In the case of the former hold actively these principles but the later not. Yet isn''t be characterized the possibility of these in Ricoeur''s ethics? In other words It is that the ethical possibility of Sorge must posit on this ethical aim by which escape practically from solipsism itself as active moment. Dasein stands in front of the death with its possibility can''t realize the alterity. In that mortality only when meet the others expanded as Mitdasein in just, the ethical subject of Dasein is not just the possibility any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