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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시의 ''타자-되기''의 욕망 연구 : A Study on the Desire of ''Becoming-Other'' in the Kim Soo Young''s Poetry

  • 발행기관 서강대학교 대학원
  • 지도교수 김승희
  • 발행년도 2006
  • 학위수여년월 200608
  • 학위명 석사
  • 학과 및 전공 국어국문
  • 식별자(기타) 000000103075
  • 본문언어 한국어

초록/요약

본고는 김수영의 시를 ‘되기/생성becoming’의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되기의 관점에서 텍스트를 바라본다는 것은 먼저, 텍스트 속에서 생산된 다양한 기호들signs을 ‘비표상’적인 것으로 사유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비표상적인 기호들이 텍스트가 ‘생산하는 욕망’이라는 관점에서 김수영의 시를 이해 하고자 하는 것이다. 근대적인 표상(表象)re-prseacute;sentation 개념은 근대적인 주체의 ‘보편화의 기능과 개별화의 기능’에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이러한 표상활동 속에서 주체는 ‘차이’를 보지 못하며, ‘차이란 동일적인 표상에 종속되지 않은 채로는 사유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따라서 모든 차이는 동일적인 표상으로 환원된다. 마찬가지로 문학 연구에서 미메시스mimesis는 ‘재현의 모델’에 기댄다. 그러나 들뢰즈에 따르면 재현의 모델은 언어에서 ‘분리된 기호들의 체계로 외부 세계를 가정’하는 하나의 ‘초월’론적 관점이다. 들뢰즈에 따르면 현재하는 세계가 존재하고 그 다음 그것을 재현하는 언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세계나 우주는 의미작용이나 ‘기호작용semiosis’의 내재적 평면plane of immanence이다. 즉 삶 전체에 걸쳐서 기호들과 암호들codes가 존재한다. 또 기호들은 재현적이고 표현적이기 이전에, 강밀도적intensive이다. 따라서 언어의 체계나 기호의 체계는 이러한 강도적인 투자가 과도하게-코드화over-coded됨으로써 생겨난 결과들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런 ‘과도한 코드화’의 과정은 사회적 기계들과 ‘인간’을 생산한다. 그래서 의사 소통이나 재현 이전에 강도적인 기호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텍스트에 나타나는 강도적인 기호들은 왜곡된 재현이 아니라, ‘측정되지 않는 순수 생성, 미친 듯이 움직이는 생성devenir-fou’이다. 이처럼 되기란 표상의 관점에 반(反)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들뢰즈와 가타리에 따르면 ‘되기’란 타자의 신체적 감응affect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속도와 힘을 나의 신체에 부여하는 것이며, 그러한 속도와 힘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강밀도intensity의 분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되기는 ‘욕망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들뢰즈와 가타리는 고정된 ‘주체’나 ‘실체’와 같은 고정적인 동일성을 유지하는 존재가 아니라 부단히 생성하는 존재를 사유하였다. 저자들에 따르면 개체란 ‘기관 없는 몸체corps sans organs’이다. 따라서 개체들은 인칭이나 주체, 실체의 양태와는 전혀 상이한 개체화의 양태인 ‘이것임’thisness, heccéité이라는 개체화의 원리를 가지고 있다. ‘이것임’이라는 개체화는 언제나 ‘중간’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선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리좀’을 이룰 수 있다. 따라서 개체들은 이 ‘이것임’이라는 개체화의 원리에 의해 다양한 몸체로 변양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되기는 유기체적 조직화의 원리와 반대로, 유기체의 확장과 기관들의 조직화 이전의 강렬한 자유로운 신체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생성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되기가 ‘욕망의 과정’이라는 것은 조직화된 오이디푸스 질서에서 끊임없이 유기체화 되기 이전으로 탈주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되기의 관점에서 김수영의 시를 이해 한다는 것은 텍스트에서 생산되는 언표들을 비표상적이고 생산적인 욕망의 관점에서 이해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되기’의 양상은 김수영 텍스트에서 기존의 사회체제에서 공고히 결정된 언어적인 규범이나 사회적 통념, 그리고 억압적인 사회적 질서와 같은 거대한 오이디푸스적 체제에서 벗어나고 탈주하고자하는 욕망을 표현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기존의 연구의 시각에서는 대부분 재현론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관점에서 김수영 시 텍스트에 나타나는 인간이나 자연물에 관한 모티프들을 인간적인 무력의식, 인간적 소외의식을 찾아내었다. 따라서 텍스트에 드러난 비표상적인 것들의 가치를 평가 절하 했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기존의 연구 시각에서 평가 절하되어 왔던 비표상적인 것들을 긍정적인 것으로 재고하고자 한다. 김수영 시 텍스트에 나타나는 주체는 분열된 주체이자, ‘이것임’의 개체성을 지니는 주체이다. 김수영 후기시에 집중적으로 드러나는 이러한 주체의 분열을 기존 연구에서는 ‘소시민적 내면성으로의 회귀’, 혹은 ‘정치적 의식의 퇴행’ 등으로 지적 되어 왔다. 그러나 김수영 시에 나타나는 어조의 분열, 언표énoncé 주체의 분열은 기존의 규범적 질서를 해체하고 탈주하고자 하는 전위적 실험의 전략이다. 먼저 김수영 초기시에 나타난 어조의 분열은 대체로 언표 행위 주체의 확신과 회의 사이의 불일치에서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후기시에 나타나는 어조의분열은 언표 주체와 타자 사이에 벌어지는 힘의 차이에 대한 고민을 표현하는데 관심을 보인다. 이러한 텍스트에서 언표의 주체는 부단히 자신의 수동적인 위치를 소거하면서 주인으로서의 능동적인 위상을 회복해 간다. 이러한 과정에서 어조의 분열은 의미를 생성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언어적 질서의 규범을 위반함으로써 규범적인 의미 영역을 해체시키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어조의 분열에서 텍스트에서 부여된 ‘힘과 몸’에 대한 재인식을 확인할 수 있다. 김수영에게 있어 힘과 몸은 근대적 이성을 대신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는 근대적 이성 중심주의에 대한 회의와 부정을 나타내는 탈근대적인 사유였다 할 수 있다. 한편 김수영 시에서 언표의 주체는 언표 행위의 주체와 언표 내용의 주체로 이중화된다. 즉 ‘주체의 이중화double’가 생겨난다. 김수영 시에서 나타나는 언표 주체의 분열은 언표 행위와 언표 내용의 주체가 질서의 집단적 배치에 순응하는 주체가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켜 기존의 질서에 배반의 선을 긋는 주체였다. 이는 언표 행위의 주체가 지배적 질서에 포섭된 언표 내용의 주체와 끊임없는 불화를 일으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 중에 ‘이것임’thisness, hecceicute;itheacute;에 해당하는 특이한 개체성인 ‘우리’라는 언표가 생성된다. 이 ‘우리’라는 언표 내용의 주체는 누구라고 정체성을 부여하기 할 수 없는 고정된 정체성을 찾기 어려운 특개성singulaity을 지닌 주체들이다. 이러한 특이한 주체는 사회에 일정한 사건들을 계열화하는 통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지배적 질서에 포획된 언표 내용의 주체와 반동일시를 일으키는 주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비인칭적인 주체는 기존 사회의 지배적 질서와 통념에 대한 치열한 저항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본고에서는 김수영 시에 나타난 언표 내용 주체의 분열을 고찰하였다. 김수영 시에서 5. 16 이후에 창작된 ‘신귀거래 연작’은 언표 내용의 분열로 인해 정치적 의식의 퇴행이라 평가되어 왔다. 그러나 이는 언표 내용의 분열을 단선적인 진화의 관점에서 퇴행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이를 ‘집단적 주체화가 되려는 욕망’을 표현한 것으로 보았다. 집단적 주체는 명령의 수직적 위계들이나 역할의 전통적인 수평적 분배 그 어느 것도 강화시키고자 하지 않고, 단지 집단이나 제도의 다양한 수준들 사이에 비전통적이고 횡단적인 관계들을 수립한다. 김수영 시 텍스트에 나타나는 언표 내용 주체의 분열은 비인간적인 언표들까지도 텍스트에 수용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이를 통해 가족이라는 사회적 질서가 수평적으로 해체되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언표 내용 주체의 분열은 전통적인 시학에서 텍스트를 창조하는 저자라는 관념까지도 해체하는 집단적 주체라 할 수 있다. 가족이나 사회 또는 국가라는 억압적 질서를 해체할 수 있는 전략이나 수단은 쉽게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오이디푸스화하는 세계 속에서의 문제는 어떻게 출구를 찾을 것인가이다. 혹은 들뢰즈와 가타리의 표현을 사용한다면 어떻게 ‘탈주선line de fuite’을 찾을 것인가가 될 수밖에 없다. 김수영 텍스트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주체의 분열과 되기는 그러한 탈주선 찾기의 모험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김수영 시에 나타나는 다양한 되기의 양상 중에서 곤충-되기, 새-되기, 풀․ 뿌리-되기의 양상을 살폈다. 먼저 곤충-되기는 아버지와 아내와 관련된 텍스트이다. 김수영 텍스트에서 드러난 아버지에 대한 태도는 김수영의 전통에 대한 갈등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그것은 전통을 지배하느냐, 혹은 전통과 결연을 맺어 탈주선을 찾느냐 하는 갈등을 보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되기의 텍스트는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편력의 역사’만을 가지고 돌아가신 아버지와 달리 어떻게 하면 근대화의 물결에 희생당하지 않고 출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주체의 욕망이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후기시에서의 거미-되기는 언표 내용의 주체가 거미-되기를 통해 아내로 대변되는 자본주의 질서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출구를 모색하고 있다. 한편 김수영 텍스트에서 새-되기는 오이디푸스적 체제를 벗어나 비상하려는 욕망의 움직임과 체제를 전복시키고자 하는 욕망의 표현이다. 체제의 저편을 향한 갈망과 전복을 향한 갈망 사이에는 더욱 거대해진 억압의 강도를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후기시의 되기를 대변하는 풀, 뿌리-되기의 양상은 체제를 전복할 수 있는 에너지의 원천을 확인할 수 있다. 외국인 여성이나 풀과 같은 소수적인 것과의 결연은 체제를 전복시킬 수 있는 저항적 에너지의 근원임을 풀, 뿌리-되기의 양상에서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김수영은 자본주의 사회와 억압적인 군사 독재적인 국가에서 소외된 내면만을 재현한 시인이 아니었다. 그의 텍스트에는 곤충, 풀, 뿌리, 새-되기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체제를 전복하거나 그곳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꿈꾸었던 흔적들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결핍으로 인한 현실도피적인 욕망이 아니라 기존의 사회를 해체하고자하는 전복적인 욕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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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요약

This study focuses on ''Becoming'' appeared in Kim Soo young''s poetry. Studying the text from the view of ''becoming'', at first, means thinking of various signs produced in the text as ''non-presentative''. Secondly it is the way to understand Kim Soo Young''s poetry as ''producing-desire'' from the text. The concept of modern re-presentation is connected with ''functions of generation and individualization''. The subject cannot understands ''differences'' in the activity of representation, and the ''differences'' can''t be thought without including in the identical representation. Consequently, all ''differences'' are reduced to the one identical representation. At the same thing, a conception of mimesis is based on ''the model of representation''. but Deleuze says that ''the model of representation'' is a view of transcendency, to suppose outside world as a system of divided signs. According him, language which represents world doesn''t exist after present world exists. But the world or outer space is the plane of immanence of signification or ''semiosis''. That means that in the whole life, the signs and codes exist. Also the signs are previously intensive rather than re-presentative and expressive. The system of language or the system of the sign are the effects resulted from becoming over-coded by intensive investor transition. And ultimately the process of ''over-coding'' produces the social machines and ''human beings''. So before the communications and re-presentaion works, the intensive signs exist. Therefore, the intensive signs in the text is not the re-presentation which is distorted, but the pure creation of ''devenir-fou''. Like this, the concept of ''becoming'' is in opposite to re-presentation. Deleuze and Guattari say that ''becoming'' endows my body with the speed and force which can make a physical affect of the other and make the distribution of intensity which can achieve such a speed and power. In this sense, ''becoming'' can be called ''a process of desire''. Deleuze and Guattari like this, speculated the continuously producing existence not the existence of maintaining identity such as ''subject'' or ''reality''. They thought object is the ''corps sans organs''. So objects have the theory of individualization of ''thisness, hecceite'', and this is unequal to the mode of reality. The individualization of ''thisness, hecceite'' is always in the middle. Because this is made up of lines, it can attain resome. According to the theory, objects is able to change into various bodies. So opposed to the theory of the organic organization, it is a creation flowing to the direction of pursuing liberal body before the organization and extension of organs. It means the process of escape endlessly to the state of not being organic that ''Becoming'' is the process of desire in the Oedipus order. Understanding Kim Soo young''s poetry in the view of ''becoming'' means understanding enonces in the view of desire which is non representative and productive. And the mode of ''becoming'' shown in his poetry is likely to express the desire of escaping from the Oedipus system like the suppressing social orders, linguistic laws, and socially accepted ideas. In the previous theses, his poetry is studied from the point of representative and humanistic. So researchers found out the consciousness of inability or estrangement from the motives about men and nature. Naturally they devaluated the non representatives in the text. But in this thesis, I want to reconsider the non representatives devaluated in the text as positive. The subject of Kim Soo young''s poetry is splitted one and the one which has the individuality of ''thisness, hecceite''. In the privous theses, the split of subject seen in his latter poetry is pointed out as ''returning to internality of petits'' or ''regression of political consciousness'', but the split of tones and the subject of enonce is a strategy of avant-garde examination which is willing to deconstruct previous normative order and escape from it. It is not easy to find a strategy or a method which can deconstruct suppressing order such as family, society and nation. So what matters is how we find the exit in the world of being Oedipus. It can be said that acconrding to Deleuze and Guattari, how we find the ''line de fuite''? Various split and becoming of the subject in Kim Soo young''s poetry is adventure of finding such an ''line de fu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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