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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운동의 이데올로기 연구 : 5.18 광주항쟁과 6.4 천안문운동의 비교

A Study on the Ideology of the Masses Movement

김정한 (Kim, Jung-Han, 정치외교학과 비교정치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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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목적은 한국에서 발생한 1980년 5‧18 광주항쟁과 중국에서 일어난 1989년 6‧4 천안문운동을 비교하여 대중운동의 이데올로기를 분석하는 데 있다. 특정한 이해관계에 기초하여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활동을 전개하는 사회운동과 달리, 우발적인 사건을 통해 대중들이 거리에서 자발적으로 대규모 투쟁을 전개하는 대중운동은 짧은 기간에 폭발적으로 발생한 후 소멸한다. 이런 대중운동의 동학을 잘 보여주는 것은 참여자들의 객관적인 사회적 위치나 이해관계가 아니라 대중들의 이데올로기이다. 현대 맑스주의와 정신분석학...
이 논문의 목적은 한국에서 발생한 1980년 5‧18 광주항쟁과 중국에서 일어난 1989년 6‧4 천안문운동을 비교하여 대중운동의 이데올로기를 분석하는 데 있다. 특정한 이해관계에 기초하여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활동을 전개하는 사회운동과 달리, 우발적인 사건을 통해 대중들이 거리에서 자발적으로 대규모 투쟁을 전개하는 대중운동은 짧은 기간에 폭발적으로 발생한 후 소멸한다. 이런 대중운동의 동학을 잘 보여주는 것은 참여자들의 객관적인 사회적 위치나 이해관계가 아니라 대중들의 이데올로기이다. 현대 맑스주의와 정신분석학에서 이데올로기 개념은 개인이 주체로 구성되는 주체화 과정을 설명하는 주요 용어로 다듬어져왔다. 이데올로기는 사회 현실을 인식/몰인식하는 틀이며, 그에 따라 주체는 자신의 상징적 동일성을 획득하고 특정한 실천 행위를 전개한다. 대중운동의 이데올로기와 관련하여 이 논문의 주요 연구 가설은 두 가지이다. 첫째, 대중운동에서 대중들은 피지배이데올로기나 대항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지배이데올로기를 통해 투쟁을 전개한다. 또한 지배이데올로기에 균열이 일어날 경우에도 자신들의 환상을 적극적으로 투영하여 지배이데올로기를 이상화하고 그것을 문자 그대로 현실화시키려 한다. 이는 지배이데올로기가 단순히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대중들의 욕망과 환상을 통합하고 가공하여 보편화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대중운동은 지배이데올로기와 대립하는 대항이데올로기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지배이데올로기를 통해서 전개된 대중운동이 대항이데올로기를 싹틔우는 이런 역설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이유는 그것이 기존의 상징 질서를 탈구시키는 재현불가능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지배이데올로기는 대중운동을 납득할 수 있도록 재현하는 데 실패할 수밖에 없으며, 이것이 대중운동 이후 지배이데올로기 속에서 발견하지 못하는 주체-위치를 대항이데올로기 속에서 필사적으로 재현하려는 새로운 주체성의 형성을 촉발한다. 이런 과정은 5‧18 광주항쟁과 6‧4 천안문운동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1980년의 한국과 1989년의 중국은 서로 사회 체제가 상이했음에도 불구하고, 광주항쟁과 천안문운동에서 대중들은 똑같이 지배이데올로기를 통해서 투쟁을 전개했다. 즉 광주항쟁에서 대중들의 이데올로기는 반공을 전제하는 자유민주주의였으며, 천안문운동에서 대중들의 이데올로기는 애국적 사회주의였다. 광주항쟁에서 주요 요구는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로 수렴되었으며, 이는 태극기를 들고 애국가를 부르며 간첩 혐의자를 경계하는 실천으로 나타났다. 또한 광주항쟁에서 형성된 항쟁공동체는 대한민국에 대립하는 새로운 국가의 탄생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이상적 보편성을 실현하려는 시도였다. 천안문운동에서는 주요 요구가 ‘반당‧반사회주의적 동란’이라는 규정의 철회였으며, 이는 ‘더 나은 중국’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정치 지도자들과 대화를 모색하고 단식농성을 통해 청원하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또한 천안문운동에서 형성된 천안문광장의 대안공동체는 특히 학생과 노동자의 분열로 인해 광주항쟁에 비해 낮은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대중운동 과정에서 지배이데올로기에 균열이 발생하고, 이는 주체성의 변화로 이어진다. 광주항쟁에서 무장투쟁을 전개한 시민군은 지배이데올로기 내부의 주체-위치에서 일정하게 벗어나는 형제공동체를 구성한다. 이는 가족, 계층, 직업 등 기존의 주체-위치가 규정하는 상징적 동일성에서 벗어나 형제애와 동지애에 기초해 새롭게 형성된 상징적 동일성을 선택하는 모습으로 나타났으며, 그 가장 극적인 형태는 목숨을 걸고 도청을 사수하려는 5월 27일 ‘최후의 밤’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천안문운동에서는 광주항쟁에 필적하는 대안공동체가 형성되지 못했으며, 이는 지배이데올로기의 균열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주체-위치와 상징적 동일성을 유지하는 실천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천안문운동에서 요구한 민주주의는 서구식 민주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였다. 민주주의는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사회주의적 가치에 부합하는 개혁‧개방을 추진하여 사회주의 틀 내에서 자유와 평등의 권리를 실현하려는 것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애국주의의 하위 요소였다. 이 때문에 광주항쟁의 무장투쟁과 달리, 천안문운동에서는 시종일관 비폭력적 방식으로 애국주의를 승인받으려는 시도가 지속되었다. 이는 공산당과 정부에 대한 대중들의 믿음을 반영하고 있었으며, 그만큼 6월 4일 ‘학살의 밤’은 전혀 예상치 못한 충격적 체험이었다. 마지막으로, 대중운동의 이데올로기는 지배이데올로기였지만, 그것은 사후적으로 대항이데올로기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광주항쟁은 1970년대 반독재민주화운동의 대항이데올로기인 자유민주주의의 연장선에 있지만, 1980년대에 자유민주주의에 도전하는 급진적인 사회운동이 등장하고 맑스주의와 사회주의를 내세우는 대항이데올로기가 확산되는 상징적 기원이 되었다. 지배이데올로기를 통해서 전개된 광주항쟁이 대항이데올로기를 배태하는 토양이 되었던 것이다. 천안문운동은 1980년대 신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았지만 당시 그것은 공산당의 주도적 역할을 인정함으로써 사회주의와도 대립적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천안문운동 이후 1990년대에 신계몽주의는 다양하게 분화하면서도 신권위주의와 신자유주의로 수렴되었고, 이는 사회주의에 대립하여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지지하는 대항이데올로기가 현실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천안문운동이 신자유주의의 기원이라는 평가는 여기에서 연유한다. 하지만 중국 사회의 억압성과 폐쇄성으로 인해 자유민주주의적 사회운동은 중국 사회 내부에서 성장할 수 없었고, 해외로 망명한 지식인들의 민주화운동으로만 존속할 수 있었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인과성의 방향은, 대항이데올로기가 기존의 주체를 전환시켜서 대중운동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대중운동이 대항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어 새로운 저항 주체가 형성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록/요약moremore
This thesis aims at analyzing an ideology of the masses movement through comparing the 5‧18 Gwangju Uprising in Korea with the 6‧4 Tiananmen Movement in China. The masses movement in which the masses(the multitude) struggle spontaneously for liberty in the street by accident is character...
This thesis aims at analyzing an ideology of the masses movement through comparing the 5‧18 Gwangju Uprising in Korea with the 6‧4 Tiananmen Movement in China. The masses movement in which the masses(the multitude) struggle spontaneously for liberty in the street by accident is characterized by contingency, temporariness, spontaneousness and unorganization, while the social movement mobilizes its members and supporters systematically, motivated by certain political, economical and social interests. Thus, Individual social positions and interest of participants have limits in analyzing the masses movement. The ideology shows the dynamics of the movement more clearly rather than social strata or individual interests of participants. In the contemporary Marxism and psychoanalysis, the ideology has been conceptualized as a main concept to explain the subjectivation which constitutes individuals as subjects. It is a framework of recognition/misrecognition of a social reality, and the subjects act while obtaining their symbolic identity through the ideology. On the ideology of the masses movement, this thesis frames two main hypotheses. Firstly, the masses movement is developed through the dominant ideology rather than the ideology of dominated or counter-ideology. In this regard, even when disruption the within the dominant ideology becomes deepened, the masses tend to idealize the dominant ideology, and people also try to realize the ideology by projecting their own fantasy. The reason is that the dominant ideology is also a collected, modified, and universalized form of desire and fantasy from the masses. Secondly, the masses movement functions as a driving force of the counter-ideology against the dominant ideology. The reason of paradoxical result--the masses movement which is based on the dominant ideology becomes a driving force for arising counter-ideology--is caused by the fact that the movement is the unrepresentable event, and it leads to a dislocation of the existing symbolic order. The existing dominant ideology inevitably fails to represent the masses movement in a fully understandable manner, and the masses cannot find their subject-position within it after the movement. Consequently, the failure stimulates masses to transform into a new subjectivity so that the masses can find an alternative subject-position through the counter-ideology, and this forms a new subjectivity. This process which have mentioned above appears in the 5‧18 Gwangju Uprising and the 6‧4 Tiananmen Movement. In spite of different socioeconomic systems between Korea in 1980 and China in 1989, the masses of in the both of the movements depended on the dominant ideology. For instance, the liberal democracy which was based on anti-communism was the ideology in Korea, and the patriotic socialism was the one in China. This was proved by their slogans and practical repertoires which were mainly used in the movements. In the case of the Gwangju Uprising, the purpose or demand of the movement were generalized into "protection of liberal democracy", and the predominant practical forms were raising the Tae-Guk-Gi(the national flag), singing the Korean national anthem, and seeking out the spies of North Korea. Moreover, the alternative resistance community which was organized in the mid of the uprising also tended to defense the idealistic common value of "the republic of Korea" rather than to construct a new independent nation-state which against existing one. On the other hand, in the case of Tiananmen Movement, the participants attempted to clarify that the purpose of their movement was not for "anti-communist party/anti-socialist turmoil", but for "better China". Therefore, the participants continuously tried to communicate with political leaders in China, so they peacefully petitioned their demands to the government through hunger strike. However, compare to the case of Gwangju uprising, the political condition of the Tiananmen Movement stayed in low level because of the split between student participants and working class. However, through the masses movement, individual participants experienced a disruption within the dominant ideology. The experience of disruption inevitably changed the individual subjectivity of the masses. In the Gwangju uprising case, the civil militia who were involved in militarized struggles, established a fraternity community. Therefore, beyond social strata which were defined by one’s social status such as family, class, and job, each of the community members chose their new symbolic identity which was based on their fraternity and comradeship. The most dramatic example of changing individual subjectivity was "The last night" on May 27 which the civil militia defended the provincial office in Gwangju to the death. On the other hand, in the Tiananmen Movement, there was no alternative community as like the case of Gwangju uprising. Therefore, even though there was a disruption within the dominant ideology, it did not go further to change the subjectivity of individual participants. Consequently, the subject-position and social identity of the participants, and their activity were remained and maintained during the Tiananmen Movement period. In this regard, the democracy what the participants demanded was not a westernized democracy, but a socialistic democracy. Moreover, what the participants really wanted was to realize rights of freedom and equality within the socialist system, so in order to reach the goal, they demanded eradicating corruption, implementing economic reforms and opening policies without violating socialist values and thoughts. In this sense, the democracy was a sub-factor of patriotism in the Tiananmen Movement case. Therefore, as oppose to the case of Gwangju uprising, the Tiananmen Movement continued in non-violent manner to obtain recognition of their patriotism. The fundamental difference between the Tiananmen and the Gwangju shows that the students and residents in Beijing believed in their government and communist party. Thus, "The night of the massacre" on June 4 was unexpected disaster to all of them. Finally, even though the ideology of the masses movement was the dominant ideology at the beginning of the movement, it worked as a source of counter-ideology afterward. The ideology of the Gwangju Uprising was on extension of liberal democracy, and it functioned as the counter-ideology of anti-dictatorship democratic movement in the 1970s. However, in 1980s, it became a symbolic driving force to generate the counter-ideologies which was challenging against liberal democracy in Korean society such as Marxism, socialism, and radical social movement. On the other hand, even though the neo-enlightenment inspired the Tiananmen Movement in 1980s, it accepted the leading role of Chinese Communist Party, so it did not really challenge against socialistic values in China. It is the reason why the Tiananmen Movement was regarded as an origin of neo-liberalism. However, social movements for liberal democracy could not grow up within Chinese society because of political oppression and coercion. They just have subsisted in abroad democratization movement for Chinese by intellectuals in exile. In conclusion, in the perspective of historical causality, it is not a counter-ideology which transforms existing subjects into resistant subjects for the masses movement, but the masses movement itself provides a chance to expand the counter-ideology, and through the procedure, new resistant subjects can be formed.